‘분노한 시민들’은 누구인가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8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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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梁性佑의원 사건… ‘응징’했다는 시민의 정체는 경찰과 언론일 수도

그가 서울 양천甲구에서 국회원에 당선됐을 때, 일간지 여성지 할 것 없이 당시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은 ‘詩人의원 탄생’이라는 큰 제목으로 그를 격려했다. 전국구의원 감투를 하사받은 이른바 계관시인들과 달리 양서우 시인은 순전히 자력으로 금배지를 따냈기 때문에 당선되자마자《겨울공화국》으로 상징되는 그의 암울했던 과거와 더불어 매스컴의 초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언론에 의해 일약 스타가 됐던 그가 요즘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 언론으로부터 혹독한 ‘벌’을 받고 있다. 불법주차 문제로 자신의 승용차 운전사와 격한 시비를 벌이던 교통의경의 뺨을 때린 사건이 “특권의식에 市民이 분노했다”는 등으로 크게 보도되면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양의원은 이 사건과 관련, 폭행 및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검찰에 입건돼 있으며 사건보도 기사가 나간 이후로도 사설, 칼럼 등을 통해 ‘단세포적 우월감 또는 특권의식에 중독된 한심스런 폭력의원’ 등으로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상당부분 왜곡된 형태로 전해졌다는 사실이 양측 당사자의 증언과 경찰조사내용, 그리고 목격자들의 얘기로 확인되고 있다. 양의원측에서는 시비유발, 운전사 폭행경위 등을 자체조사한 결과 오히려 ‘고의적인 목적성’이 엿보인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경찰측 얘기만으로 대서특필한 언론보도

 서울 상계동의 金一文씨(32ㆍ회사원)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평소 좋게 생각했던 의원이 품위를 잃은 데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시민들이 운전사를 그렇게까지 집단폭행했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항의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이라며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은 것같다고 말했다.

 이 사건이 처음 보도된 것은 일요일인 지난 10월29일 오후 4시 MBC뉴스. 사건이 일어난지 1시간30분쯤 뒤였다. 양의원측에서는 “경찰이 부른 것같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당시 MBC기자들은 시민들의 제보전화가 10여차례 잇따라 걸려와 방송국에서 5분정도 거리인 영등포 신세계백화점 부근 현장으로 급히 출동했다고 밝혔다. 어쨌든 방송기자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은 끝나 누군가에 의해 대파된 양의원의 승용차가 영등포결찰서 안에 옮겨져 있었고 차안에는 옷이 찢기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운전사가 쓰러져 있었다.

 기자들은 이 장면과 함께 때마침 사과해명차 서장실을 방문하고 있던 양의원의 모습을 담아 보도하고 이를 9시뉴스에도 계속 내보냈다. 석간신문의 일요당직기자들은 이 방송뉴스가 나간 이후 경찰서에 도착, 취재한 사실이 교통계와 형사계 당직반 직원들을 통해 확인됐다. 이처럼 취재 취재기자가 없었던 당연한 결과로 사건당일 방송뉴스와 다음날 석간신문의 어디에서도 양의원 일행과 교통의경들의 시비, ‘분노한 시민들의 집단폭행’ 등을 지켜본 목격자 증언부분은 한 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들 언론은 ‘경찰에 따르면’과 같은 뉴스출처도 밝히지 않음으로써 시민도 경찰도 아닌 기자 자신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의 전과정을 따라다니며 확인하고 쓴 것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영등포경찰서의 金모형사는 양의원 사건해 대해 묻자 “신문에 난 그대로”라며 언론의 보도가 경찰측의 조사내용과 일치하고 있음을 비치면서 “요새 시민들이 어디 국회의원을 신임하느냐.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다. 시민들이 안봤다면 그××(양의원), 자기가 경찰을 두들겨 팬 사실도 부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의원은 “경찰의 뺨을 때린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이지만 왜곡보도로 인한 ‘여론재판’은 참을 수가 없다”며 일부 언론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그는 “언론이 한 의원을 완전히 죽이고 있다. 나에게 사실 한번 확인하지 않고 경찰의 일방적인 얘기, 그것도 경찰 공식입장이 아니라 교통계 직원들이 흘려준 내용을 무조건 갈겨 쓴 기자들의 언론정신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또 “많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겨울공화국》을 ‘오리발공화국’으로 모독한 사람들은 내가 감옥에 있을 때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면 해당 언론(인)에 대한 그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 확인은 이제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장을 가장 가까운 데서 지켜보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사건의 시작과 끝을 얘기해 줄 수 있는 주변 노점상 등 시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꽉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 불려가 진술을 하고 나온 사람들은 또한 약속이나 한 듯 ‘녹음기’가 돼 있었다. 양의원측은 “경찰이 전국노점연합회 영등포지회를 통해 이미 압력을 넣었으며 주변을 수시로 돌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현장주변 노점상 등 목격자들 일체 함구

 태엽을 감아 작동시키는 장난감을 팔고 있는 한 청년에게 지난 일요일의 사건을 보았느냐고 기자가 묻는 그는 금방 안색이 변하면서 “모른다”며 돌아섰다. 모조 액세서리를 파는 40대 남자는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걸 왜 자꾸 묻느냐”며 “그날 이후 경찰들도 자꾸 오고…. 귀찮아 죽겠다”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경찰에서 진술하지 않은 다수의 순수(?) 목격자들의 증언을 들을 수 없는 실정이 아쉽긴 하나 양쪽 당사자들의 주장과 경찰의 조사내용, 중간적인 입장이나마 일부 목격자의 얘기 등을 종합, 사건의 전체저긴 윤곽을 그려볼 수는 있다. 특히 어느 쪽에서도 확인이 안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엔 ‘사실’로 보도된, 그날의 일들을 되짚어보기란 어렵지 않다.

 10월29일 낮 12시10분쯤 서울 영등포시장 로터리 중앙예식장앞. 지역구 당원의 집안 결혼식 주례를 맡은 양의원이 서울1누 8989호 자신의 콩코드 승용차에서 내린 뒤 운전사 韓俊淇(37)씨는 앞서 온 다른 차들처럼 편도3차선 도로의 3차선에 불법주차했다(이곳 상인들은 “일요일이면 로터리일대가 예식장하객 등으로 많은 인파와 차량들이 붐비는데 유료주차장은 턱없이 부족해 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이나 단속하는 경찰이나 모두 홍역을 치른다”고 말했다).

 차안에 있던 韓씨에게 교통정리를 하던 梁承俊의경(23)이 다가왔다. 梁의경은 앞의 차들을 가리키며 “주차위반통고장을 다 붙였습니다. 국회출입차량같은데 통고장을 붙이기도 뭣하니 다른 곳으로 차를 빼주십시오”라고 韓씨에게 말했다. 韓씨가 웃으며 “미안하다. 의원님이 곧 나오시니까 안된다. 곤란하면 하나 붙여라”라고 말하자 梁의경은 ‘처리할 능력이 있으니까 그러겠지’라는 생각에서 ‘안심하고’ 큼지막한 주차위반통고장을 앞유리창에 붙였다는 것. 그러나 양의원 일행은 결혼식이 끝나 지구당 사무실로 돌아갔다가 2시간 후 같은 장소에서 예정된 또 한번의 주례를 위해 오후 2시5분쯤 이곳에 도착, 韓씨는 다시 불법주차를 했다.

 사건은 2시25분쯤 벌어졌다. 韓씨는 양의원이 나올 시간에 맞춰 차를 3차선에서 2차선으로 “3분의1 가량”나와 대기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가만히 서있던” 崔盛旭의경(23)이 양의원과 鄭落俊비서가 나타나는 것과 동시에 다가와 차의 앞문을 잡고 “차를 왜 여기다 세우느냐”며 주차위반을 지적했다.

 이때 韓씨가 “보다시피 의원님이 저기 나오시는데 곧 가겠다”고 말하자마자 崔의경이 “국회의원이면 답니까?”라고 인도의 행인들을 향해 소리쳤다는 것. 양의원이 차에 탄 이후로도 시비가 계속되자 당황한 韓씨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냐”며 “조금 전에도 너희들과 다투기 싫어 딱지를 붙이라고까지 했는데 왜 또 못가게 시비를 거는 거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崔의경은 韓씨가 먼저 “야 이×××야, 한번 통고장 떼면 됐지 무슨×××이냐”라며 다짜고짜 욕설부터 해 참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쨌거나 사태는 급속히 악화, 韓씨가 “경찰서에 가서 얘기해야겠다”며 崔의경의 명찰을 뜯으려 하고 崔의경은 韓씨의 넥타이를 잡아 몸싸움을 벌이면서 순식간에 엉망으로 뒤엉켜버렸다. 韓씨의 말로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머리에 턱을 부딪힌 崔의경의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는 것. 鄭비서가 이들을 말리려 애를 쓸 때에 인근 교통초소에서 달려온 梁의경은 “말릴 생각은 안한 채” ‘순돌하나, 순둘둘’ 등의 암호를 쓰며 급하게 어디론가 무전을 치는 모습이 鄭비서에게 비쳤다. 구경꾼들은 자꾸 불어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이면 다냐”에 뺨 한대씩

 그때까지 차안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의원이 문을 열고 나왔다. “왜들 이러는 거야”라며 그만둘 것을 종용하자 梁의경이 또 “국회의원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행인들을 향해 외쳤다는 것. 이 순간 “건방진 놈들” 하는 호통과 함께 양의원이 崔, 梁의경의 뺨을 한차례씩 때렸다. 양의원은 다음날 평민당 기자실에서 사건경위서를 통해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나의 손길이 의경의 얼굴을 스친 것”이라고 궁색한 해명을 했으나 이 말이 도리어 ‘공인의 거짓말’이라는 등 신문의 가십감이 돼버리자 곧 “때리긴 때렸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韓씨의 머리가 아니라 양의원의 주먹에 맞았다고 주장하는 崔의경은 윗앞니 중 왼쪽니가 조금 흔들리고 오른쪽니의 치관이 약간 깨지는 부상을 입고 영등포서 뒤 원일의원에서, 이날 차의 보닛 위에 올라타고 가다 길바닥으로 떨어져 손을 삔 梁의경과 함께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담당치과의사인 李大昇씨는 “의사와 환자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崔의경의 부상정도 등 치료소견에 대해 밝히기를 거부했다. 일부 언론은 양의원의 폭행으로 의경의 앞니 2개가 부러졌다고 보도했다.

 경찰에서 진술한 현장주변 상인 姜모씨는 당시 구경꾼들 중 한 여자가 “양천구 양성우의원이다”라고 말하자 군중들 사이에서 “국회의원이 경찰을 때릴 수 있느냐. 사과하라”는 한두사람의 항의가 나왔고 다른 한편에선 “젊은 사람들이 너무한다. 국회의원한테 그러면 되느냐”며 의경들을 나무라는 소리도 있었다는 것. 수십명의 구경꾼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사태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자 양의원과 鄭비서는 자리를 피해 근처 ‘칠성제화 영등포지점’으로 들어가 鄭東秀영등포서장과 통화했다.

 이때 밖에서는 ‘난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운전사 韓씨가 누군지 모를 사람들(언론 보도에 따르면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무수히 얻어맞고 있었던 것이다. 韓씨에 따르면 양의원이 떠난 뒤 차를 못가게 가로막으며 보닛 위에 올라 탄 梁의경과 韓奉燮의경(23), 그리고 또 한 의경(그러나 의경들은 민간인 2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등을 태운 채 “그러면 경찰서로 가자”며 차를 출발시켰다는 것.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韓씨가 의경들을 매단 채 도주하려다 시민들에게 잡혀 뭇매를 맞았다고 보도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어디로 실종됐나

 그러나 韓씨는 맞은 편 도로의 차량들이 밀리자 경찰서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지 못하고 신세계백화점 출구 쪽을 우회전, 차를 정지시켰다. 그 순간 뒤를 따라온 일단의 청년들이 차를 부수더니 “끌어내 죽여라” 등의 고함과 함께 주먹과 발로 韓씨를 마구 때렸다는 것. 韓씨는 경황중에도 “구원을 요청하려고 주위를 살폈으나 그래줄 만한 여자나 양복입은 남자가 한명도 보이지 않아 잘못하면 여기서 맞아 죽겠구나 하는 절망감이 엄습했다”며 당시의 공포분위기를 말했다. 아니나다를까 韓씨는 그중 한 청년으로부터 “무전기로 보이는 물건으로 왼쪽귀 뒷부분을 내리찍히면서 그만 정신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 목격하고 경찰에서도 진술한 백화점 주차요원 梁京模(30)씨는 韓씨를 폭행한 수십명의 사람들에 대해 “시민인지 경찰인지 구별할 수는 없다. 다만 젊은 사람들이 많았고 양복입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 폭행자에 대한 양의원측의 수사요구에 “당시 주변에 많았던 ‘결혼식 하객’들이 주로 폭행에 가담했을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이들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碇東秀서장은 야당국회의원의 품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로상에서 시비를 유발하고 사복경찰이 韓씨를 폭행했다는 양의원측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오히려 우리 경찰이 구출하지 않았다면 韓씨는 시민들에게 몰매를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의 그런 주장에는 몇가지 의혹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우선 결혼식에 참석하는 남자 하객들은 주로 양복을 입는다. 그리고 ‘분노한 시민들’을 목격했어야 하는 현장주변의 노점상들은 거개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이 귀찮아서. 혹은 두려워서 침묵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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