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 박권상 (주필) ()
  • 승인 198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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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榮辱이 교차된 80년대가 저물고 있다. 아마도 희망과 도약을 기약하는 90년대가 우리 앞에 다가서고 있다. ‘아마도’라고 단서를 붙인 것은, 우리가 우리 앞에 밀어닥치는 시련과 도전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다면 장밋빛 未來像을 기대해도 좋다는 그런 조심스런 낙관론을 말하려는 것이다.

 분명히 80年代는 절망과 암흑의 시기인 동시에, 어둠을 헤치고 절망을 딛고 일어선 빛과 희망의 시기였다. 유신독재의 기둥이 무너진 후 구민이 스스로 主人이 될 뻔한 찰나 軍部쿠데타의 발발로 국민主權이 참탈당한 지 7년. 수백명의 광주시민이 自由와 民主主義를 요구하며 軍部통치에 반대하다가 쓰러졌고 수천명의 民主人士가 獄苦를 치렀다. 정치인, 관리, 언론인, 교수, 교원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쫓겨나 길거리를 헤매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무서운 군사독재도 모든 사람을 언제까지나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나 시대의 큰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自由를 찾고 正義를 좇는 시민의 몸부림을 끝내 짓누를 수 있는 힘이 없었다.

正統性是非 극복

 결국, 저 위대한 6月抗爭으로 全斗煥씨의 독재체제는 손을 들고 말았다. 4ㆍ19와 마찬가지로 6ㆍ29는 국민의 양심, 민족의 용기가 싸워 이긴 歷史的 快擧였다.

 盧泰愚씨의 6ㆍ29선언은 全씨의 이른바 제5공화국이 무너지고 새 공화국으로 가는 분수령을 이루었다. 이로써 국민은 정부선택권을 되찾았고, 그 결과로 노태우대통령 정부가 태어났다. 과반수 유권자가 야당을 지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自殺的인 야당간의 분열은 ‘5共’후계세력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역사의 해학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이 있다. 盧씨는 선거기간, 5共非理를 파헤치는 데 “聖域이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였고, 또한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임명한 민주화합추진위원회는 ‘光州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였다. 비록 36.6%의 지지에 그쳤지만, 그는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정통성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임은 인정하지만, 5공청산을 취임초기에 단호하고 깨끗이, 그리고 용기있게 단행했었던들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럼으로써 욕된 과거에 종지부를 찍고 새 시대의 문을 열었어야 한다고 믿고 싶다.

 6共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가까워온다. 5共청산을 더욱 소리높여 외쳤던 야3당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지도 1년반이 넘었다. 그럼에도, 90년대의 문턱에 들어선 오늘까지 아직도 5공청산, 광주문제로 정치가 시끄럽고 사회가 어지럽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과 시대의 정신을 꿰뚫어보는 與野지도자들의 통찰력과 여기에 입각한 결단력이요, 용기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 역시 自由와 民主化라는 시대정신을 타고 우리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70년간 소련을, 그리고 戰後 45년간 東歐圈을 지배한 共産主義體制가 자체 모순으로 붕괴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가 非인간적이고 非능률적인 낡은 체제를 축출하고 있다. 一黨獨裁가 다원적인 민주주의로 탈바꿈하고 권력이 계획하고 명령하는 그런 통제경제가 인간의 창의력과 경쟁심리를 조장하는 시장경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獨善이 빚어낸 ‘惡의 帝國’이 종언을 고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권에서 세차게 일고 있는 자유의 바람은 조만간 스탈린주의체제하의 북한에까지 파급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自然의 勢요, 歷史의 흐름이 아니겠는가.

 이제, 밖으로는 자유와 평화에 기초한 민족의 재결합을 능동적으로 준비, 선도할 수 있는 90년대가 눈앞에 다가서고 있다. 안으로는 30년 만에 地方自治制를 부활하여 명실상부하게 民主主義體制를 정착시킬 당면과제가 있다.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어려움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특히 ‘과거청산’ 문제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고 힘을 분산시킬 틈이 없다.

 서둘러 분명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 그렇다고 “5공청산은 물건너갔다”라든가 광주문제는 “보상금지불로 끝낸다”는 등, 그런 안이한 사고방식으로 얼버무릴 수는 없다. 분명히 2백여명이 죽고 훨씬 많은 시민이 다쳤으며, 청문회를 통해 계엄군의 ‘과잉진압’이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 당시 군지휘관 입으로 밝혀졌다.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고 규정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으로 또는 도의적으로 광주의 비극적 사태에 단 한 사람도 책임지울 수 없다는 논리가 어떻게 통할 수 있겠는가.

 

욕된 과거 깨끗이 청산해야

 얼마전 <中央日報>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91.5%의 응답자가 5共非理가 청산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고, 77.4%가 광주사태의 진상 규명이 미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5共非理는 반드시 청산해야 하고(56.4%), 5공핵심인사에 대해서도 사법처리(27.7%) 또는 공직사퇴(23%) 사법처리 후 정치적 사면(32.3%) 등 어떤 형태로든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여론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우리 지도자들이 용기있게 단안을 내려야 할 순간이다. 정치에는 으레 상대가 있고 민주주의는 ‘妥協의 원칙’이다. 따라서 與野는 5공청산문제를 대화로써 슬기롭게 풀어가야겠지만, 경계할 것은 민주주의란 ‘타협의 원칙’이지 ‘원칙의 타협’은 아니라는 것이다. 5공비리나 ‘광주사태’ 처리에 있어 자유와 정의의 원칙을 위배하고 국민여론을 무시한 어떤 원칙의 타협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거듭 강조하고 싶다. 어둡고 욕된 과거를 깨끗이 매듭지어 과거지사에 발목이 잡혀 左顧右眄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도덕적 용기가 어느 때보다도 절박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긴 세월을 낭비하였다. 이제 그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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