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마약과 붓의 大戰爭
  • 여운정 기자 ()
  • 승인 1989.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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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올들어 記者 12명이 마약밀매조직에 의해 被殺

 “기자들을 박멸하라.” 20세기 초 독일황제 카이제르가 토했던 毒舌을 상기시키는 살벌한 상황이 바로 자금 세계최대 코카인집산지인 콜롬비아에서 재현되고 있다. 최근들어 격화일로의 마약전쟁이 전개되고 있는 콜롬비아에서는 지난 8월부터 정부당국이 마약단속을 강화하자 밀매조직의 테러가 극성을 떨면서 숱한 사람들이 비명에 가고 있다. 단속의 고삐를 바

짝 조이자 적잖이 피해를 보게 된 마약밀매조직들은 무제한 전면전을 선언, 그 통에 금년에만도 12명의 언론인이 무장조직에 의해 살해당함으로써 筆鋒으로 불의에 대항하고 있는 많은 기자들이 이들 마약단의 주요 ‘박멸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은 지난 10월16일 수도 보고타 북방에 위치한 부카라만가市의 <반과르디아 리베랄> 신문사 사무실 폭파사건이다. 그보다 이틀 전에는 코르도바의 한 방송국 기자가 두 괴한으로부터 피살당했으며 이에 앞서 10일 하루 동안엔 콜롬비아 최대 마약도시인 메델린시의 두 곳에서 언론인 3명이 피살당해 나흘 사이에 4명의 언론인이 숨진 최다 피해를 기록했다. 이날 피살된 언론인은 전직 상원의원으로 정치문제를 주로 취급하는 地方紙를 발행해 온 로베르토 사라스티씨, 또 평소 마약퇴치에 강경한 논조를 펼쳐 밀매조직으로부터 수차례 경고를 받아오던 보고타의 유력일간지 <엘 에스펙타도르> 메델린 지국의 두 기자였다.

 

마약조직 · 게릴라들의 공격대상

 콜롬비아 적십자사는 지난달 사태의 중대성을 의식해 월례토론회의 주제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자들’이란 시의적절한 의제를 택했으나 이 계획은 돌연 취소돼버렸다.

 콜롬비아의 ‘마약전쟁‘은 지난 8월18일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루이스 카를로스 갈란 상원의원의 피살사건이 촉발제가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강경입장으로 급선회한 비르질리오 바르코 대통령이 마약카르텔에 대해 ‘마약전쟁’을 선포하자 바로 이틀 후 메델린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 폭파사건이 발생했는데, 사건직후 이 나라 최대 마약조직 메델린카르텔의 살인부대인 ‘引渡대상자’라는 무장조직 이름으로, 자신들을 건드리는 기자들은 무조건 공격대상이라는 내용의 협박편지가 현장에서 발견됐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마약퇴치 기사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던 <엘 에스펙타도르>신문사가 들어 있는 건물이 폭파돼 2백50만달러의 재산피해를 냈다. 사건이 일어나자 이 신문의 발행인 페르난도 카노 부스케에츠씨는 “코카인 카르텔의 보복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惡의 뿌리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맞서 싸울 것”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엘 티엠포>와 함께 콜롬비아 최대 권위지인 이 신문의 창설자이자 현 발행인의 아버지 귈레르모 카노씨 역시 강경입장때문에 지난 86년 마약밀매조직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社運까지 걸어가며 싸우고 있는 <엘 에스펙타도르>는 결코 몰리기만 하는 처지는 아니다. 독자들의 성원은 말할 것 없고 해외에서도 지원의 손길이 줄을 잇고 있다. 국제신문 발행인협회 회원들은 1백만달러의 지원금을 내놓기로 했으며 콜롬비아 언론을 돕기 위한 국제적 조치도 강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죽음도 불사하겠다”

 비장한 용기로 마약퇴치를 주장하는 ‘붓의 戰士’들이 무장괴한들의 準군사적 표적이 된 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 나온 보고타언론인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은 언론인들이 49명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건도 범인이 체포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콜롬비아기자협회 부회장인 크리수토발 곤잘레스씨는 “이 나라야말로 세계 어느 나라보다 언론이 위협받고 있는 곳”이라며 개탄하고 있다.

 언론인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세력은 비단 이들 마약조직뿐만이 아니다. 中南美 많은 나라가 그렇듯이 콜롬비아는 좌우익 게릴라문제로도 골치를 썩이고 있다. 현재 모두 4개파 5만명으로 추산되는 게릴라들의 테러가 곳곳에서 들끓는 복잡한 內政 속에서 간혹 용기있게 어느 편에 가담하는 언론인들은 틀림없이 이들 게릴라의 조준의 대상에 오르게 된다. 이처럼 갖가지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신문사들은 일단의 군인들과 군용견들까지 동원해 경호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특히 비판의 목소리가 큰 기자들은 은밀한 거처를 마련하거나 경호원을 두어 신변보호를 하고 있다.

 지난해 콜롬비아가 코카인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25억~30억달러로 이 나라 총수출액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수치가 말해주듯 코카인은 콜롬비아경제의 젖줄이면서 ‘필요악’과 같은 존재다. 그러나 마약밀매는 금세기 최악의 국제범죄란 점에서 전세계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악과 맞서 싸우는 콜롬비아의 언론들은 바로 ‘자유롭고 책임있는 언론’을 수호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책임 있는 언론’을 실천하는 일이 곧 ‘국민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깊이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 언론인들의 수난은 난마처럼 얽혀있는 악의 넝쿨을 뿌리뽑는 데 결코 헛된 희생으로 끝나지는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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