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和解 · 統一노력 돕겠다"
  • (정리 = 국내 뉴스부) ()
  • 승인 1989.11.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本紙초청으로 訪韓한 브란트 前 西獨수상, 盧泰愚대통령과 회견

본지 창간기념 초청으로 지난 24일 訪韓한 빌리 브란트 前 西獨 수상은 25일 낮 청와대로 盧泰愚 대통령을 예방, 1시간 30분 동안 요담했다. 오찬을 겸한 이날의 요담에서는 분단국지도자들의 統一觀 및 국제정세에 관한 매우 함축성있는 대화가 오갔다. 다음은 대담요지이다.

 盧대통령 : 베를린의 自由를 지켰고, 오늘날 번영과 평화를 누리는 독일을 만든 존경하는 지도자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브란트 수상의 東方정책은 동 · 서독 간의 화해뿐만 아니라 유럽, 나아가 전 세계의 平和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브란트 前 수상 : 한국을 처음 방문하게 되어 기쁘고 더욱이 한국이 이렇게 민주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오게 되어 행복하게 느낍니다. 저는 한국 국민이 그동안 이룩한 발전과 서울올림픽의 성공, 민주주의에의 훌륭한 성취에 대해서 한국 국민에게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세계적으로 큰 변화의 시기인 동시에 새로운 도전이 충만한 시기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남북으로 갈라진 韓半島에 화해와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대통령 : 권위있고 의욕적인 《시사저널》의 창간을 격려하기 위해 오셨다니 고마운 일이군요.

 브란트 : 지난 5월, 베를린서 열린 IPI회의에서 《시사저널》의 朴權相 주필한테 설득되어 초청을 수락하게 됐습니다.

 대통령 :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가을에 오시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 모든 국민들도 수확의 계절이 되어 마음이 풍요로운 때입니다. 지금 특히 유럽은 세기적인 변화를 맞고 있는 것 같습니다. 戰後 힘에 의해 강제적으로 통합되었던 동유럽은 分裂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택한 서유럽은 EC를 중심으로 강한 통합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브란트 : 한국의 가을날씨가 이렇게 좋은 줄은 몰랐습니다. 좀더 춥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바로 지난 주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 書記長을 만났습니다. 소련지도자와의 만남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곳의 날씨는 매우 추웠습니다.

 대통령 :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改革)와 글라스노스트 (開放)는 소련 내부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민족국가의 민족문제가 연방으로부터의 이탈 요구까지 분출시키고 있습니다. 국민의 높아진 기대는 계획경제가 담당할 수 없는 경제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改革에 비해  당과 군, 정부관료 안의 보수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브란트 : 그 말씀을 드리기 전에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만나기 전날 그의 側近과 만났던 이야기를 먼저 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의 말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과 소련의 관계가 促進될 것을 대단히 희망하고 있으며 한국문제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또 그는 한국사정에 대해서도 매우 정통했고 내가 한국에 간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平壤이 매우 큰 불평을 하고 있지만 소련은 韓 · 蘇관계의 개선이 두 나라의 이익이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나의 만남은 이번이 네 번째 였습니다. 私的으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개혁이 성공할 지에 대해서 나는 지금 확신을 할 수는 없습니다. 소련의 겨울철의 식량문제도 당장 큰 문제이고, 경제가 큰 어려움을 맞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르바초프 자신은 소련이 연방국가인 만큼 각 민족의 獨自性을 높여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발틱 3개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들에게 自決을 주게 되면 정부나 보수집단, 다수국민인 슬라브민족의 반발이 크지 않겠습니까. 고르바초프도 민족문제가 대단히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같이 공산당과 관료의 보수성이 그 어려움을 더해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국내적인 문제에 비해 東유럽국가의 자율확대에 대해서는 동정적이고 신경을 덜 쓰는 입장이었습니다. 軍縮문제만해도 군을 줄일 경우 대령이나 장군들이 자신들의 장래에 의구심을 갖고 동요하게 됩니다. 군축으로 예산이 삭감되기보다는 직업을 잃게 되는 군인들의 보상책을 강구하는 예산이 더 커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대통령 : 동유럽사회주의국가들이 冷戰의 블록으로부터 이탈하고, 서유럽국가들이 통합으로 나아가는 큰 흐름이 자유와 민주주의, 인류의 번영이라는 측면에서 고무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예기치 않게 혼돈과 위기로 연결될 경우 유럽뿐 아니라 세계의 장래에 큰 불안 요인을 몰고 올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브란트 : 동유럽국가의 이탈은 역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련내의 변화가 폭발하면 그것은 위기로 연결될 위험이 클 것입니다. 동유럽의 이탈보다는 그것이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유럽공동체가 1992년 단일시장으로 경제적 통합을 이루면서 유럽의 통합 움직임은 더욱 加速化될 것입니다. 유럽共同體가 통화 · 稅制 · 福祉 등 내실있는 통합을 이루는 데 약 10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면 서기 2000년에 가까워지면서 정치적 통합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대통령 : 1981년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서울을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했지요. 나는 그 뒤 각국의 협조에 감사하기 위해 세계각국을 순방했고 뮌헨과 본을 그때 방문했습니다. ‘라인강의 기적’은 우리 국민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하는 데 정신적으로 크게 고무 했습니다. 나의 조크로 들어주십시오. 나는 독일에서 만난 분들께 ‘라인강 기적’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성실하고 정직한 독일사람들도 80%만 이야기하고 20%는 이야기 안해주는 것같아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들 독일 지도자들에게 “내가 더 물어본다 해도 정말 비결은 안가르쳐 줄테니…. 라인강에게 라인강의 기적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겠다”고 했습니다. (웃음)

 브란트 : 그에 대해 두가지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2차대전 후 독일점령국들이 미련하게 독일산업을 해체해서 공장을 뜯어갔습니다. 독일은 새 공장을 지어야 했습니다. 새 공장의 새 제품이 낡은 공장제품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었지요. 둘째는 소련이 점령해오니 知的으로 우수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西獨으로 넘어와 西獨발전에 良質의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대통령 : 그때 그분들은 이러한 비결은 내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웃음) 우리의 경우에도 수백만명의 우수한 인력이 38線을 넘어 南으로 내려왔고, 6 · 25전쟁으로 그나마 빈약하던 산업시설들도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공장을 짓고 새로이 산업국가를 만들어야했습니다.

 브란트 : 담배를 피워도 되겠습니까 ?

 대통령 : 얼마든지 피우십시오.

 브란트 : 내가 여기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는 내 아내에게는 절대로 하지 말아 주십시오.(웃음) 어제 집을 떠나면서 내 아내에게 “먼 나라에 다녀오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내는 이말에 대해 한국은 먼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울올림픽으로 한국은 ‘우리 안방에 들어 온 나라’라는 것입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을 유치할 때 나는 西베를린의 시장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西베를린에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나는 베를린이 분단된 도시로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뮌헨으로 하도록 했습니다. 서울올림픽이 분단된 땅에서 열려, 전세계가 한국에 대해 애정을 갖게 하는 심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그것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 우리가 올림픽의 유치를 결정한 것은 이 분단된 나라 - 세계에서 가장 밀집한 군사력이 대치해 있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와 和合을 심어야겠다는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화합과 평화에 대한 確信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세계를 맞기 위해 열심히 일해 나라의 한 차원 높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경제의 발전도 가속화되었고 민족의 긍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특히 소중한 것은 권위주의의 모든 요소를 벗어던지고 세계 누구에게도 떳떳한 민주국가를 만드는 데 온 국민이 뜻을 모았다는 점입니다. 남과 북이 대결하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 민주주의를 짧은 시일내에 여는 데에는 어려움과 진통이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울올림픽으로 백가지를 얻은 것보다 더 큰 한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동포인 北韓이 끝내 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북한이 개방된다면 경직된 체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따라서 개방을, 곧 그들 체제 붕괴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 스스로가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브란트 : 뮌헨올림픽에 東獨이 와서 경기를 했을 때 西獨국민들이 박수를 치고 응원을 했고, 東獨이 이기면 西獨국민이 이긴 것처럼 함께 기뻐했습니다. 東 · 西獨에서 지금 인적 · 물적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독일은 분단의 고통이 없어진 것은 아니나, 그것을 극복해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대통령 : 이번 미국방문을 동해 나는 韓 · 美정상회담을 하고, 美의회 상하양원합동회의 연설을 하고, 많은 언론인이나 각계의 지도자를 무수히 만났습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일부에서는 진실이 아닌 것을 미국의 朝野에 전파하는일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바로 보고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주었습니다.

 브란트 : 東北亞지역에서의 군사력 유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어떻다고 느꼈습니까.

 대통령 : 西獨에 주둔하고 있는 美軍이나 東獨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군에 대해서도 보는 시각이 여러가지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西獨에서의 美軍은 集團安保체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東北亞의 美軍은 미국과 주둔하고 있는 나라, 그 양국간의 조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美軍은 北韓의 전쟁도발을 억제하겠다는 우리의 이익에도 합치하고, 東北亞의 세력균형을 위한 미국의 이익에도 일치하는 것입니다. 미국내에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의 累增으로 국방비를 감축해야 하고 해외주둔 미군의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민이나 미국민의 대다수는 韓 · 美안보체제의 유지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나의 이번 訪美의 결론도 그것을 재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의 여론도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가지 부탁할 것은 南北이 화해를 이루고 한국이 統一의 길로 나가는 데 성원을 아끼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국민 누구 한사람이라도 피를 흘리거나 희생됨이 없이 남과 북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고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통일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나는 南北이 대결하고 적대하는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서로를 잘 살게 하는 협력의 관계로 나아가도록 모든 정책과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갈라진 南北은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바탕 위에서 民族共同體를 형성해나가야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정책과 노력에 대해 브란트 수상의 아낌없는 이해와 성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브란트 : 한국의 통일노력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나의 가능한 협조를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盧대통령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노력이 힘을 가지고 성공하시기를 빕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