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고개드는 학원프라치是非
  • 정기수 기자 ()
  • 승인 1989.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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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정권 초기의 YTP, 5共시절의 녹화사업에서 6共으로 ‘계승’된 학원사찰의 검은 그림자. 최근 발생한 3건의 사례를 통해 그 진상을 알아본다

사례1 : 薛仁鍾군

 올해 20세로 동양공전 공업화학과 2학년인 薛군은 연세대를 기웃거리다 지난 10월4일 중앙도서관 2층 참고열람실에서 신학과 1학년 宋聖一(학번 8940033)군의 학생증과 도서관 출입 대출증을 주워(혹은 훔쳐) 연대생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薛군은 학생회관내 총학생회실과 같은 층에 있는 서클(요즘 학생들은 ‘동아리’라고 부른다) 인 ‘만화사랑’에 신학과 89학번 손성일(학번 8930043)이란 이름으로 가입했다.

 ‘만화사랑’은 李韓烈군이 활동한 곳으로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데 5공화국 얘기를 시리즈 만화로 엮는 등 시국풍자 만화를 많이 그려내 “대중작업을 효과적으로 잘하는 동네” 로 운동권에서 평가받고 있고 그 만큼 당국의 날카로운 주시를 받아온 서클이다.

 薛군은 입회원의 ‘입회동기’란에 “만화에 관심이 많고 만화를 그려봄으로써 인간의 침착성과 미래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라고 적었다. 또 ‘만화에 대한 견해와 좋아하는 만화(가)’란에는 “만화는 순수한 만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만화도 있다. 예)불량만화 등등. 만화가로서는 이현세씨가 만화를 잘 그리는 것 같다. 멋있고, 박력감 있는 만화” 라고 밝혔다.

 이 서클의 회원인 鄭玹(간호2)양에 따르면 이 부분에서 이미 薛군은 “수준미달로 의심을 받아” 입회 첫날부터 회원들의 감시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薛군은 연고제 전시회 준비관계로 바쁜 회원들과 함께, 입회한 그날부터 사흘간 연속 “신입회원답지 않게” 밤샘작업을 했다. 이후 薛군은 가방도 없이 학교에 오고 대개 수업이 있는 오전에도 계속 동아리방(서클룸)에 남아 있었으며 1학기 학점얘기가 나왔을 때 영어I과목에서 A제로(이학교는 학점의 각 등급에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3분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를 받았다고 말하는 등 가짜학생임을 회원들에게 결정적으로 보여주었다.

 鄭양은 薛군이 “선배들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자꾸만 알려고 하는가 하면 나중엔 선배들의 가방까지 뒤져 경고를 당한 적이 있으며 동아리 낙서장이나 메모판의 남의 글들을 자꾸 눈여겨보려 했다”며 이때부터 薛군이 단순한 가짜가 아니고 프락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회장 李珠植군 (21, 응용통계3 · 구속)을 비롯한 회원들이 갖게 됐다고 말했다.

 薛군은 또 “노동자를 위해 살겠다. 조국통일 이룩하자” 등의 낙서를 하고 “아버지가 목사이니 나도 목사가 되어 평양에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 잃어버린 학생증의 주인인 宋군의 아버지는 실제로 목사임이 나중에 확인됐다. 본격조사에 나선 회장 李珠植등은 신학과사무실에서 학적부를 조회, 薛군이 가짜학생임을 밝혀냈으나 그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11일 이후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薛군은 연고제 마지막 날, 그에겐 운명의 날이 된 14일에 축제분위기로 들떠 있는 학생들과 동아리방에서 맞닥뜨렸다.

 그는 학생들의 추궁에 처음엔 “단지 만화에 관심이 있어서 대출증을 위조해 서클에 가입한 것”이라며 프락치행위를 한사코 부인했다. 학생 6명이 “말로 해선 안될 놈”이라며 방을 옮겨 윽박지르고 고대생 3명도 합세, 각목으로 구타를 시작하자, 그는 지난 7월말 고교 동창 朴모(20 · 회사원)군의 소개로 안기부 직원 심현순(여 · 35세 가량)씨를 영등포 ‘푸른섬’다방에서 만나 프락치행위를 제의받고 승락했다”고 진술했다는 것.

 薛군은 계속된 학생들의 취조에 “총학생회와 특히 홍보부장, ‘만화사랑’회장 李珠植군 등을 감시하러 왔다”고 ‘자백’한 것으로 학생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튿날 학생들이 자술서를 받기 전에 매에 못이겨 숨진 시체로 발견됐다.

 

사례2 : 黃成元군

 경기도 고양중학교 3학년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19세의 黃군은 지난 10웬9일 한양대에서 집회를 구경하던 중 프락치혐의로 붙들렸다. 학생들의 권유로 21일 기독교회관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양심선언을 한 黃군은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지난 3월 초순쯤에 동네(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차치기(카스테레오 절도)를 하다 방범한테 걸려 서부경찰서로 연행됐다. 형사계 金모 형사가 진술서를 보더니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주며 ‘내가 시키는 대로만하면 이번 일은 눈감아주고 나중에 직업도 알선해주겠다’고 약속, 이를 수락하자 청량리에 있는 ‘대림공사’(학생들은 안기부로 추측)로 데려갔다.

 대림공사에서 받은 교육과 지령은 ‘첫째,(잡힐 경우)죽어도 입을 불지 않는다. 둘째, 만약 불게 되면 후에 집안에 나쁜 일이 있을 것이다. 한양대 임종석군과 학생회관의 동태를 파악하고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4월 초순부터 거의 매일 보고하다시피 했다. 급할 땐 전화로 하고, 보통 아침 10시에 대림공사의 서종국씨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고 저녁 6시쯤 들어가 보고했다.

 같이 활동한 사람은 15명이었다. 6월30일 임종석씨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고 한양대 주변에서 임씨를 찾았으나 실패하고 대신 교실에 숨어 있는 학생들을 발견하고 서씨에게 보고, 전원 연행케 했다.”

 학생들은 이상의 내용외에 黃군이 프락치활동에 대한 대가로 지금까지 모두 2백여만원을 받은 사실도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黃군은 앞의 薛군과 마찬가지로 처음 가짜대학생 행세를 하며 전대협의장 林鍾哲군의 서클인 ‘소리개벽’에 가입했다. 그러나 서클활동엔 관심이 없는 대신 회원들을 통해 총학생회간부들과 가깝게 지내는 데 주로 열중했다는 것. 그러다 어느날 테이프나 책 등을 훔치는 것이 적발돼 의심을 받기 시작하자, 서클에서 발을 뗐다.   黃군은 자신의 정체가 탄로난 사실을 대림공사에 알려 “당분간 쉬라”는 말을 듣고 7월 초부터 9월 말까지 집에서 놀았다. 9월30일 대림공사 경리의 전화를 받고 다시 ‘회사’에 출근, 서씨로부터 “학생들이 너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서클에는 나가지 말고 학생회관을 무대로 동태를 파악, 보고하라”는 명을 받았다.

 黃군온 활동재개 후 ‘소리개벽’회원들의 눈을 피해 다니느라 “별다른 ‘꺼리’를 줍지 못하다” 끝내 잡혀 양심선언까지 했으나 아버지와 함께 온 경찰에 의해 신병이 ‘탈환’된 직후 자신의 프락치 행위에 대한 진술을 “학생들의 폭력이 무서워 허위 자백한 것”이라고 번복했다.

 

사례 3 : 金泰洙군

 “경찰프락치로 오인돼 나도 각목구타를 당했다.” 지난 10월19일 각 언론들은 이같은 제목으로 ‘프락치 시비로 인한 학내폭력사건 속보’를 알렸다. 釜山-蔚山지역 총학생회협의회(부울총협) 前선전국장인 부산외대 국문과 3년  金泰洙(26)군이 연대생의 薛군 폭행치사사건이 보도(18일) 된 직후 뒤늦게 3개월여 전의 일을 검찰에 고발한 것.

 金군은 이어 일주일 뒤인 26일 오전에 부산시 사하구 괴정동 자신의 집 2층 베란다에 서 ‘결백’을 주장하며 미량의 농약을 마시고 투신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으나 정원수에 걸려 생명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었다. 金군의 가족은 이날 “부울총협측이 연대 사건이 터지자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나의 프락치조작 사건을 홀리고 30여년 동안 묵묵히 경찰에 근무한 우리 아버님과 나의 명예를 짓밟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金군의 유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덕분에 일부 학생들만 알고 묻혀 버렸을 金군사건이 일반에 조금이나마 알려지는 결과가 됐다.

 프락치혐의로 1학기 내내 동료들인 부울총협 집행국 간부들에 의해 극비추적을 받아온 金군은 지난 7월5일 프락치 색출을 위해 구성된 ‘조직검열위원회’에서 다음과 같이 자백했다고 부울총협이 최근 펴낸 <학생운동 탄압음모 밀정 김태수 조사보고서>는 주장하고 있다.   “나는 85년부터 안기부의 지시를 받고 활동한 프락치였다. 첫 공작으로 그해 노동자야학인 ‘심평’야학조직을 파괴시켰으며 각 학교별 프락치활동자들과 함께 세부교육을 받았다. 그후 군에 입대,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 정보사찰업무를 보았다.

 복학한 뒤인 지난해 현재 부산시경 공안분실(일명 해양기지개발공사)에서 학원담당 형사로 있는 아버지의 협조요청을 받아 들여 좀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1학기 중 시위가 있을 때엔 맨 앞장에 서서 열심히 싸우는 등 꾸준히 신임을 쌓아 科학술부장을 거쳐 총학생회 조국통일촉진투쟁위원장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후 7월 자천반 타천반으로 부울총협에 들어오게 됐다. 선전국장으로 일하면서 집행국 전

간부의 동향보고 및 사상의식, 독서중인 책, 각종 회의록, 문건 등을 보고했다.

 정보연락은 주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진행됐고 전화연락을 취한 후 주 2회 접선했다. 특별한 사항이 있을 때는 암호(성악산, 코드번호 107)를 댄 뒤 전화했다. 정보제공의 대가로 매월 20만원 상당의 용돈을 받았으며 해외유학 및 취업보장이 확실하다는 약속을 받았다.”

 부울총협은 이같은 金군의 자백이 “청문회방식을 통해 얻어진 것” 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金군은 학생들이 “프락치활동을 시인하라”며 자신을 각목으로 무차별 구타했다고 3개월이 지난 지금 검찰에서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金군을 프락치로 지목, 신문을 벌이게 된 증거로 지난 3월2일 金군이 집행국 차장의 가방을 뒤지다 들킨 점, 비공개문건의 출처 및 인쇄소 소재 파악에 金군이 유난히 관심을 집중시켜온 점, 중요인물이 방문하거나 비공개자료가 들어올 때마다 金군이 선전국 일을 제쳐두고 얘기를 엿듣는다든지 의식적으로 접근해 자료를 무조건 복사한점 등을 들고 있다.

 金군은 이 보고서에 자필로 “비록 프락치였지만 나 자신이 인간도 뭣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믿겠습니까만, 아무리 프락치활동이라고 해도 근 반년을 지내면서 정이 든 사람은 많습니다…” 라고 심정을 밝힌 자술서를 남기고 있다.

 

“검거→자백→번복→폭행수사의 프로그램”

 이상 최근에 논란을 빚은 3건의 프락치 사례는 사건의 전개양상이 모두 공통점을 지니면서 과거의 비슷한 사례와도 그 흐름을 같이 한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프락치 검거→자백→번복→학내폭력 행사자 수사의 순서가 이번에도 예외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NCC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예정된 프로그램에 학생들이 말려들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며 프락치혐의자에 대한 학생들의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프락치와 관련된 사건으로 오히려 ‘역습’을 당해 학생운동이 큰 타격을 받았던 대표적 사례는 지난 84년 9월 서울대에서 일어난 4차례의 가짜대학생 프락치 감금폭행사건이다. 당시, 서울대복학생협의회 회장이었던 柳時敏(30 · 현 李海瓚의원보좌관) 씨와 학도호국단 간부 등 학생 9명은 가짜대학생 행세를 하다 적발된 재수생 등 외부인 4명을 프락치 혐의로 붙잡아 취조하다 경찰에 넘겨 처벌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경찰은 학생들이 자체신문과정에서 이들을 감금, 폭행한 혐의로 柳씨 등을 구속했으며 총학생회 부활을 추진하던 학생들이 대거 제적되는 사태로 이 사건은 결말이 나고 말았다.

 이번 사건들에서도 결과는 아주 흡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薛군사건의 경우에는 사망이라는 치명타 속에 폭행가담자 9명이 모두 구속되면서 ‘총학생회와는 무관’으로 수사결론이 나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었나. 그러나 薛군사건과 관련 경찰은 프락치 자백추궁에 참여한 한 학생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다른 학생 6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부산시경도 金泰洙군의 고소사건을 본격수사, 감금폭행혐의로 한 학생을 구속하고 다른 부울총협 간부 30명의 검거에 나섰다.

 ‘프락치’ 3명을 잡으려다 학생운동 간부급 47명이 무더기로 구속될 상황에 이른 것이다.

 

“엄존하는 학원사찰이 폭력원인 제공”

 프락치 혐의자들에 대한 경찰의 수사는 폭력학생 검거 선풍과는 대조적으로 전무한 상태이다. 부산시경은 “金군이 조사과정에서 프락치임을 자인하는 자술서를 작성한 적이 없는 것으로 진술했다”며 “앞으로 金군의 프락치 여부에 대해서는 수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학생들이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반박한 자술서와 녹음테이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양대 黃군사건의 수사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몇차례 주먹으로 때린 것은 사실이다”라며 그러나 경찰이 서부서 형사계 金모 형사, 대림공사 서종국씨에 대한 수사는 하지 않으면서 “黃군과 아버지를 부추겨” 양심선언을 구타에 못이긴 허위자백으로 조작, 학생들을 폭력범으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학원프락치 문제는 아직도 없어지지 않은 수사기관의 학원사찰 관행이 그 근본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6공 비후 더 이상 대학내에 학원사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국회답변에도 불구하고 학원사찰은 아직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러차례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6일 광주지검이 국감자료로 국회법사위에 제출한 ‘李哲揆군 변사사건 수사기록’에서 경찰이 시국사건 수사를 위해 대학생들을 정보원으로 포섭, 학원프락치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이 자료에 첨부된 전남도경 공안분실 崔창운 경장의 근무일지에 활동비를 지급하고 고용한, 체육과 소속 등 대학생 망원(網員 · 정보원)의 활용실태가 자세히 기록돼 있었던 것이다.

 

수사기관의 프락치 강요사례 속출

 국민대생 金延桓군의 ‘생매장 고문’사건과 관련 국방부와 보안사 관계자는 고문사실만은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보안사 수사관이 검찰에서 “金군을 정보원으로 쓰기 위해 협조를 요청한 적은 있다”고 프락치 강요부분을 시인함으로써 군수사기관에서도 여전히 학원사찰을 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여름에는 안기부가 임수경양 입북관련수배자 소재를 알아내기 위해 연세대, 이화여대 등의 여학생 3명을 불법연행, 가족 신분에 대한 위협과 성고문등의 협박을하면서 “수배자와 접촉하라”는 등 프락치 행위를 강요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5 · 16이후 전국의 지방단과대학 안에까지 정보원을 침투시켰던 거대한 학원사찰 조직인 YTP(Young Thought Party), 운동권학생을 강제징집해서 프락치 공작을 벌인 5공의 錄化사업과 그 맥을 잇고 있는 이같은 학원사찰악령은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薛군사건으로 온 국민앞에 고개숙여 숨죽이고 있는 연세대의 교정 한쪽에 붙은 한 학생의 대자보는 이같은 현실의 모순을 조용히 고발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 그 어떠한 비난보다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동기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엄청난 결과에 대한 도덕적 자책감이다. 이 어두운 시대에 또 한번의 비극의 주인공이 된 설인종 학형의 죽음에 우리 모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희생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한 거름이 되지 못하고 그 반대의 목적으르 이용된다면 그도 편히 눈을 감지는 못할 것임을 우리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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