農民들, 추수해도 남는 게 없다
  • 김재일기자 ()
  • 승인 1989.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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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새 10배로 늘어난 농가부채… ‘빚내어 빚갚기’악순환

비 맞은 알곡이 무거운지 허리 꼬부라진 벼들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다.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이화 5리의 南陽? 간척지. 절반 정도 추수가 끝난 들판에 콤바인 1대가 벼를 베다 쉬고 있고 그 옆에 농부 두사람이 서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쪽 농부가 콤바인 운전수인 듯한 농부한테 뭔가 사정하는 것같으나 저쪽 형편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십여일 후에라도 벨 수있으면 좋겠는데, 콤바인 빌리기가 하늘에 별따기라 놔서 원….” 말을 청하는 기자 쪽으로 다가오며 허찬노(53)씨는 걱정스러운 듯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농사짓기 올해로 13년째인 許씨는 군제대 직후부터 10년 동안 꼬박, 3.5km 길이의 제방을 쌓는 간척사업에 종사한 대가로 30마지기(4천5백평) 농토를 불하받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1백여정보의 농사를 짓고 있는 이 동네 1백30세대중에서 겨우 3세대만이 콤바인을 보유하고 있으니 언제 자기차례가 돌아올지 모르겠다고 許씨는 들판에 팽개쳐진 벼를 보며 안타까워한다.

 콤바인으로 벼베는 삯이 3천평당 2O만원이니 4천5백평이면 30만원. 올해 빚이 그만큼 더 불어나게 된다.

 

높아진 인건비와 교육비

 許씨가 현재 지고 있는 빚은 사채까지 합쳐 5백만원 정도. “추수해서 갚겠다”며 연신 담 배를 빨아대는 許씨의 얼굴에서 가을을 맞는 풍요로움을 찾아볼 수 없다.

 許씨가 4천5백평에서 수확할 수 있는 것은 잘해야 쌀 90가마(80kg들이). 정부가 제시한 한자리 인상 수매가로 계산하면 가마당 9만3천원으로 그의 쌀농사 총수입은 8백37만원인데, 부채 5백만원을 제하면 3백30여만원밖에 안 남는다.

 許씨의 부채 5백만원 중 3백만원은 농협에서 빌려쓴 것이고 나머지는 사채다. 비료대, 인건비, 기계 빌린 삯 등 영농비와 자녀교육비가 거의 반반을 차지한다.

 하루 품삯이 1만5천원. 여기에 음식비 등을 더하면 2만원 꼴. “높아져는 인건비 때문에 쌀 두말로 사람 하나 못쓴다”며 許씨는 한숨쉰다.

 “시골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이 안되니 애들을 비싼 하숙비 물면서 서울, 인천, 수원 등지에 내보내 교육시켜야 하니 빚을 안 질 수 없다”고 許씨는 분개한다. 許씨는 수원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에게 매달 하숙비 15만원과 용돈 6만원을 부치고 있다.

 농림수산부 통계에 따르면 교육비로 들어 간 농가부채가 87년 가구당 9만8천원에서 88년 16만3천원으로 늘었다.

 금년말, 불하받은 지 13년만에 간척지 등기가 許씨 앞으로 나오게 된다. 許씨는 그것을 담보로 내년에는 콤바인을 살 계획이다.

 그러나 사기도 전에 걱정이 태산같다. 콤바인 1대에 1천8백50만원. 게다가 3년만 지나면 신형이 나오니 구형은 부속품을 구할 수 없게되어 이내 폐품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안 살 수도 없는 것이, 콤바인이 없으면 해마다 추수 때문에 속을 썩이기 때문이다.

 “기계 하나가 나오면 5년에서 10년 정도는 써야지, 3년마다 신형이 나와 버리면 농민들은 결국 빚더미에 농토까지 날려버리게 된다”고 許씨는 탄식한다.

 이에 대해 농기계 제조업체인 大同工業측은 관련부품의 완전 국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품 공급부족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한다.

 “정부가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으면 농산물가격이 유지돼 농촌사정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수입을 안하면 우리나라가 장사를 못할 것 아니냐”라고 되묻는 許씨의 굵게 주름진 구릿빛 얼굴에서 순진하고 너그러운 농사꾼의 마음을 읽는다.

 許씨는 또 “상인들이 돈을 많이 벌어 예금을 많이 하니 농민들 돈얻어 쓰기가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나 빚 갚을 생각을 하면 많이 쓰지도 못한다. 갚지 못하면 농협에서 바로 차압이 들어온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해마다 농사를 지어 빚을 청산하는 許씨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 1백30세대 중 대부분이 그 해 진 빚을 다 갚지 못하고 후년으로 넘긴다고 한다.

 매년 추수해서 부채 일부를 갚기는 하지만 나머지 빚은 연체이자를 물 수밖에 없다. 이자만 갚고 원금은 심지어 5, 6년째 끌기도 하는데 대부분 빚내서 빚을 갚는 형편이니 많은 농민들이 원금 갚는 문제에 ‘자포자기 한 상태’라고 許씨는 농촌부채의 실상을 말한다.

 이 마을의 경우, 콤바인, 트랙터 등을 가지고 있는 3가구는 1천만원 이상, 5가구는 7백 만원 이상, 나머지는 4백~5백만원씩의 빚을 지고 있다.

 

1년 지나면 25% 연체이자

 吳德贍(40)씨는 9천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데 원금 7백만원, 이자까지 8백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다. 농협에서 빌린 돈이 3백50만원, 나머지는 사채다.

 쌀값은 올라봐야 가마당 5천원인데 인건비는 하루 품삯이 작년에 1만2천원에서 올해 1만5천원으로 올랐고, 내년에는 1만8천원수준이 될 것이라고 吳씨는 내다본다. 또 콤바인 사용료도 내년에는 22만원 정도로 뛸것같다.

 연리 8%인 정부의 농자금과 13.2%인 농협의 일반자금을 11월25일까지 갚지 못하면 각각 25%의 높은 연체이자를 물어야 하니 농가부채는 또 늘 수밖에 없게 된다. 吳씨는 올 추수수입으로 부채 중 이자와 원금 일부를 갚고 2백~3백만원은 내년으로 넘길 것이라고 한다.

 “부채탕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돈 빌린 지 1년이 넘어도 연체이자가 붙지 않는다면 좋겠다. 또 농촌이 살려면 쌀금을 적절하게 조정해주어야 한다. 올해 최소한 16.5% 는 올라야 빚을 갚을 수 있다”라고 吳씨는 말한다. 농촌에 희망이 없고 일에 보람이 없으니 다 때려치우고 서울가서 장사나 할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는 것이 吳씨의 푸념이다.

 吳씨의 부채는 재작년에 4백만원이었던 것이 작년엔 5백만원, 금년에는 8백만원으로 불어났다. 내년에는 더 늘어날 것같다고 吳씨는 걱정한다.

 吳씨의 경우에서 보듯 농가부채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농림수산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농가 가구당 부채 평균은 3백13만원. 80년보다 10배 정도 늘었고 2년 전보다 1백만원 가까이 불어났다. 지난해 가구당 농가소득 평균은 8백13만원으로 전년보다 24%가 늘었으나 농가부채는 31%나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현재 농가부채가 얼마인지가 아니라 앞으로 과연 부채규모를 줄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농협중앙회의 李來秀 조사부장은 “부채를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어 쓰는 것이 문제다. 소득을 높이고 생활비를 줄이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수매가를 올리는 것밖에는 농가부채 문제해결을 위한 농협자체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李부장은 털어놓았다.

 현재 쌀생산으로 인한 농민의 소득은 전체소득의 34%나 차지하고 있으니 수매가 상승 이 농가소득 증대에 큰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野3당은 이번 정기국회에 농어가부채경감을 위한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주요내용은 88년 12월달 현재 부채를 진 농어가 중 가구당 7백만원 한도 내에서 5년 거치 5년 분할 상환케 하자는 것이다.

 이자율에 대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0.7ha이상의 농지보유자에게 연 3%의 이자를 내게 하고 그 미만의 영세농에게는 이자를 면제하자고 제안하고 있으나 평민당이 빚진 농민 모두에게 이자를 면제해주자고 주장해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민정당은 법안이 아니라 ‘농어가부채 경감 대책’으로 다루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합리적인 야당 단일안이 나오면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가톨릭농민회, 가독교농민회, 전국농민운동연합회 등 재야 농민운동단체들은 농가부채문제에 대해 매우 강경하다. 가톨릭농민회의 白鍾德씨는 “농가부채는 수입개방, 농산물 저가격정책 등 전적으로 정부의 잘못으로 초래된 것이나 전액탕감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다만 노름, 향락 등 사생활에 문제가 있어서 빚진 사람을 부채탕감 혜택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농민대표, 면장, 농협조합장 등이 참여하는 ‘농가부채탕감대책위원회’를 운영하면 된다는 것이다.

 가톨릭농민회에서 집계한 농촌부채 총액은 9조원 규모. 호당 부채가 정부가 발표한 3백13만원이 아니라 5백50만원이라는 것이며 80년부터 누적된 적자폭과 비교, 올해 쌀값 41% 인상이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농민에게 청사진을 제시해야

 이에 대해 14년째 南陽?에서 농민운동에 종사하고 있는 活貧敎會의 金鎭洪목사는 다소 온건한 입장이다. 농가부채에 대해 이자상환을 면제하고 원금만 갚게 하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해마다 얼마씩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농민들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부채탕감 재원을 연차적으로 투입하여 농촌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농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생산의욕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다”라고 金목사는 제시한다.

 참깨값이 오르면 농민이 ‘재미 좀 보도록’ 놔두어야지, 내려지면 놔두고 올라가면 금방 수입하는 식으로 되어버린다면 농촌에서 빚갚을 길은 막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개방화시대를 맞아 정부가 작목전환을 과감하게 지도하되 가격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농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시장에서 떨어지는 것이지, 생산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정부의 수매, 비축을 동해 가격은 보장해주어야 농촌경제가 안정권에 들 수 있다.”

 金목사는 농가소득증대 방안의 하나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농공단지 조성에 대해서도 특정지역에만 공장이 들어가면 ‘농촌안의 도시’가 되어 투기를 부추기고 농민들에게도 큰 불편을 준다고 했다.

 농촌형 중소기업이 주민과 협의하에 어떤 지역이든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어야 하며 자연부락안에 농업과 공업이 병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金목사는 농협융자를 받아 증권투자한다든지 면소재지에 카바레 등이 생기는 사회풍조를 꼬집고, 농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면 그들이 빚갚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절약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획기적인 농업정책의 전환으로 농민에게 청사진을 보여주어 ‘농촌도 살 만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농가부채뿐만 아니라 농촌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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