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 全정권悲劇 교훈 삼아야”
  • 김동선 편집위원 ()
  • 승인 1989.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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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6일 오후 3시30분 統一民主黨 당사에서 金永三총재를 만났다. 10 · 26 10주년인 이날 金永三총재는 각별한 감회속에서 정치현안에 대해 民主黨의 입장과 그의 소신을 피력했다.

 金永三총재에게 10년 전의 10월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79년 10월4일 국회는 신민당 의원들이 농성중인 본회의장을 피해 국회 146호실에서 여당의원(1백59명)만으로 金永三총재 징계안을 10분만에 전격 처리, 30년 의정사상 최초의 ‘의원제명’ 기록을 남겼다.

 金永三총재는 제명 결정 직후 기자회견에서 ①민주공화당 정권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받은 국회의원의 직위를 불법적으로 박탈당한 것은 역사가 나에게 준 영광스런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②이 가공할만한 정치보복은, 개인의 불행만이 아니고 이 나라의 불행이며 새로운 십자가를 젊어질 각오라고 밝히며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국회의사당을 떠났다. 이로부터 정국은 급속도로 경색되었고, 10월16일 釜山大生 5천여명이 유신철폐, 독재정권 퇴친, 학원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교내시위를 벌이다가 가두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시민들도 합세하는 釜馬사태로 발전됐다. 그리고 이 釜馬사태가 10 · 26을 낳았던 것이다.

 최근 野3당 총재회담에서 올해 안에 5共청산이 안되면 盧정권 퇴진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하자 민정당 중집위는 3金총퇴진을 주장했다.

 金永三총재는 이러한 정치현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10 · 26의 교훈을 강조했다.

 

 지난 10월19일 야권 3당 총재회담에서 올해 안에 5共청산이 안되면 盧정권퇴진 공동투쟁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실제로 퇴진투쟁도 고려하고 있다는 의지 표명인가요?

 그게 그렇지요. 총체적 진통을 겪고 있는 이 시대에 있어서 ‘청산’과 ‘개혁’없이는 진정한 정치적 안정도 민주화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적 선결과제가 바로 5共청산이며,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盧대통령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盧대통령의 결단을 거듭 촉구해왔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나 그런 의사를 표명한 것은 대통령의 결단에 의해 금년 내에 반드시 5共청산을 완결지으라는 강력한 정치적 요구이자 경고이며, 이러한 야권의 최소한의 요구가 관철되자 않을 경우 盧정권 퇴진투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현재 여권 태도를 보면 5共청산 의사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퇴진운동의 구체적 방법을 생각해보셨습니까? 

 모든 것을 가상해서 미리 얘기할 수는 없지요. 다만 5共청산이 안될 경우는 이미 野3당 총재들이 다시 모여 구체적 대응방법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습니다.

 

 5共청산 요구 관철이나 盧정권 퇴진운동은 야권 공조체제가 확고해져야 되는데, 공조체제를 다질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요?

 5共청산에 관한 3당 총재간의 합의는 굳건하며 단호한 약속입니다. 또한 이 합의는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아요. 물론 정당간의 무조건적 공조란 불가능할지도 모르나 최소한 5共청산에 관한 한 공조체제는 확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믿습니다. 5共청산을 위해 예산 연계투쟁도 현실적 방안이라 인식하여 처음에는 平民 · 共和가 반대했으나 결국 우리 民主黨 주장에 동조했습니다.

 

 그런데, 민정당 중집위에서 3金총퇴진을 주장했습니다. 언론에서는 이를 민정당의 맞불작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괴로운 心思에서 튀어나온 말이겠지요,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말만 나오고 막상 중집위 결의문에는 이 부분이 빠졌더군요. (웃으며) 어느 역사가가 “역사는 되풀이되자 않는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니까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어요. 오늘이 10 · 26 10주년 아닙니까. 나는 오늘 확대간부회의에서도 말했지만, 감회가 남다릅니다.

 79년도 YH사건이 난 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처분으로 나를 묶고, 그것도 모자라서 국회에서 10월4일 나를 제명했어요.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釜馬사태가 났고, 박정희정권의 종말을 고하는 10 · 26으로 이어졌어요. 10 · 26은 독재를 강화하여 장기집권하면 불행한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냉엄하고 준엄한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5共청산 문제에 민정당이 절충선을 제시하면 받아들이겠습니까?

 다시 강조하거니와 3野의 합의내용은 야권의 최소한의 요구로서 이대로 실천하면 국민전체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국민의 대다수는 납득하고 수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정부여당은 반드시 결단해야하며, 현재로서는 더 이상 양보나 절충의 여지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제시한 5共청산 방안이 결코 무리한 요구는 아니잖아요. 全斗煥씨를 국회 증언대에 나오게 하자는 것이지, 감옥에 보내자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또 5共 핵심인사들에 대해서도 공직을 내놓으라는 것인데, 못 받아들일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민정당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사실 문제가 많지요. 5共 때의 집권당이 민정당 아닙니까. 그러니까 5共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 민정당인데, 그런 이유 때문에 민주화나 5共청산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정치력도 없고…. 그러나 민정당은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이겨내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살을 떼어내는 아픔에 대한 각오가 없이는 면모를 일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영등포 을구 선거는 야권에 심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야권이 통합 안하면, 이건 평민과 민주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통합이 안된 상태에서 지방자치제 선거를 맞는다면 영등포 을구 선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관측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통합의 당위성도 나오고 국민의 여망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통합문제에 대해 金총재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현단계는 5共청산과 민주개혁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할 때이므로 야권통합을 거론하는 것은 그 진의가 어디에 있든 5共청산과 민주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희석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합니다. 또한 5共청산을 위한 3野 공조체제를 약화시키며, 민정당만 이롭게 만들어주는 결과가 됩니다. 그리고 자칫하면 통합운동이 새로운 분파작용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대학생 린치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선택된 사람들인 대학생들은 지성인으로서 도덕적으로도 건강해야 합니다. 학원폭력사건은 충격적인데, 이러한 현상도 독재권력이 오랫동안 학원을 탄압하고 사찰한 데서 빚어진 불행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러나 나는 폭력을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학생은 우리의 희망이자 내일의 이 나라를 이끌어갈 주인공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주지 못하고 실망을 준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생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깊이 자성하여 내일의 이 나라 주인공으로서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린치 치사사건도 크게는 ‘학원문제’로 보아야 되는데, 학원문제 해결방안은 무엇입니까.

 全斗煥정권은 교복자율화나 하면서 마치 학원에 자유를 주는 양했지만, 엄청난 학원탄압과 함께 교육의 민주화를 철저하게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교복문제만 해도 그래요. 나는 학교 다닐 때 교복 입었던 것을 굉장한 추억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번 어느 고등학교 교장에게서 들었는데, 교복 입는 문제를 투표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까 80%가 교복착용을 원하더랍니다. 또 이 설문을 학부형들에게 물어보니까 85%가 교복착용에 찬성하더랍나다. 선생들은 95%이고요. 물론 다시 교복을 입는 문제는 교장까지 포함해서 학생 · 학부모들의 의사에 맡겨야 되는데, 나는 全斗煥정권이 잘못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이 교복자율화도 그 잘못 중의 하나라고 보고 있어요. 교복자율화로 인해 고등학생들이 학생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게 됐어요. 그것이 또 청소년범죄 증가로 연결됐고요.

 어쨌든 학원문제는 복합적 요인을 안고 있는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민주화의 일환으로 학원의 민주화 작업도 촉진해야 합니다. 이는 교수 · 학생 · 재단 · 학부모 등 모든 당사자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이나 학원탄압은 반드시 사라져야 합니다. 또 일부학생들은 폭력을 사용해서 문제해결을 도모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6共출범 이후 현재까지 양심수가 全斗煥정권 때보다 더 많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겠습니까,

 독재청산 과정인 과도기적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지만, 5共 때보다도 양심수가 늘어난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입니다. 구속자 중에는 폭력행사 등 일부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포함돼 있지만, 정당하지 못한 법률을 적용받아 구속된 사람들은 마땅히 석방되어야 합니다.盧정권은 민주화과정에서는 다소 혼란과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실정법적 차원에서만 문제를 다루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보아요. 실정법 중에는 개폐되어야 할 법이 많잖아요.

 

 실정법중 개폐되어야할 법들, 보통 ‘악법개폐’라고하는데. 지난총선 직후 歟小野大  국면을 맞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야권 공조체제에 회의를 갖는 사람도 많은 것같던데요

 정당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각 정당의 정책도 다르고. 그래서 모든 것을 같이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5共청산 문제는 국민에 대한 ‘약속’이니까 이 문제에 대한 공조체제 유지는 잘 될 것으로 보아요.

 

 이제 추곡수매가 문제가 정치의 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추곡수매가에 대해 민주당은 19.42% 인상을 요구하고 있고 다른 야당도 비슷한 수준인데 여당은 한자리 숫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요구가 관철 안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농촌만 가지고 얘기하는데 어촌도 포함해서 농어촌 문제를 생각해야 돼요. 박정희정권이나 전두환정권 모두 농어촌에 대해서는 정책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책이 없었기 때문에 농어촌은 정치적 희생물이 되었어요. 생각해봅시다. 박정희정권 때의 경제적 성공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물론 나도 인정에 인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박정권 이래 농어촌은 그야말로 피폐화되었어요. 전인구의 70%가 농민이었는데, 이제 반대로 도시인구가 70%가 되었어요, 농촌은 무인지대가 되어가고 도시는 이농민들로 가득 차 빈부문제, 교통문제, 공해문제 등으로 심각하지 않습니까.

 물론 산업화된 국가일수록 농민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지요. 미국은 7%밖에 안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나 미국 농촌총각들 이 장가 못간다는 얘기는 없잖습니까.

 그래서 농촌문제, 수매가문제는 경제적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정책이 없다고 보아야 해요. 이제 우리는 농어촌 문제를 정치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농촌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우리가 추곡수매가를 19.42%로 잡는 것은 우리 정책위원회에서 여러 통계자료를 검토한 끝에 산출해낸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수매가를 경제적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큰 잘못입니다, 이제 정치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돼요.

 

 198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패기있고 진취적이지요. 이러한 젊은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는 희망과 기대에 차 있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젊은 세대는 과격하다고 보는 경향도 있는 것 같은데 김총재께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과격한 측면은 정권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젊은 세대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젊은 세대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점은 시야를 넓혀 세계 속에 뛰어들자는 것입니다. 세계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시야를 넓히지 않으면 그들에 먼저 우리에게서 실망은 느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이번에 내가 초청한 소련측 대표 마르티노프가 한 말인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 적용된다는 것이지요. 북한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회주의 국가에 적용된다는 이 말은 세계변화의 추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헝가리는 40여년 동안 하던 공산주의를 포기했잖습니까. 공산주의로는 경제발전이 어려워 국가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린 결론을 내린 것인데, 세계는 이렇게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가 빠른 다양한 시대에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시야를 국제사회로 넓혀야 됩니다.

 

 소련과의 관계는 잘 될 것 같습니까.

 소련의 고르바초프 정책이 성공할 것인가 하는점은 세계적 관심사인데, 내가 보기에는 페레스트로이카는 하나의 혁명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서방에서도 정치인으로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만일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실패한다면 세계가 맞게 될 위기는 심각할 것입니다.

 소련과의 정치적 대화는 내가 지난 6월 소련에 갔을 때 처음 시작됐습니다. 나를 초청한 소련과학원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 소장은 “건축물에 비유한다면 기초공사가 중요한데, 김총재가 방문함으로써 소련과 한국 관계개선의 기초공사는 끝났다”고 말했습니다. 아제 우리는 겨우 관계개선의 문턱에 와 있기 때문에 조급한 생각은 삼가해야지요.

 

 끝으로 全斗煥 前대통령의 백담사 생활도 1 년여 됐습니다. 그가 유폐생활을 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데, 정치인으로서 어떤 所?를 갖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한마디로 불행한 일이지요. 朴正熙씨의 불행에 대해서도 애기했지만, 全斗煥씨가 백담사에서 1년간 저렇게 유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비극이지요. 참으로 큰 비극인데, 자기 스스로 그길을 선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朴正熙씨의 죽음, 全斗煥씨의 백담사 생활, 이것을 우리는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지요, 그래서 이 시대에 살고있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특히 집권당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는 제기가 됐으면 해요. 다시는 집권자가 백담사에 간다든지, 부하에게 총맞아 죽는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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