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와 부시 ‘잘못된 만남’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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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지원금 챙긴 뒤 미국에 망명 신청…백악관, 북한 압박용으로 활용

 
북한을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코리안 드림’을 성취한 8천여 명의 새터민(탈북자)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부시 미국 행정부가 국내 탈북자들을 상대로 흔들어대는 ‘장밋빛 손짓’ 때문이다.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부시 정부는 최근 들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까지 대북 압박 수단으로 이용하는 빗나간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의회에서 북한 인권법을 상정해 통과시킨 후 지난 4월28일에는 탈북자와 가족을 부시대통령이 직접 면담했다. 이보다 하루 앞선 4월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이민법원에서는 탈북 후 한국에 정착해 살다가 미국으로 간 서재석씨(40)에 대해 ‘정치적 망명’을 승인했다. 이는 국내 정착 탈북자에게 미국 망명을 허용한 사상 첫 사례였다.


지난 2000년 한국에 들어와 ‘평양예술단’을 이끌어왔던 마영애씨(50)도 2004년 도미해 현재까지 불법 체류하면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둔 상태다. 이들은 겉으로는 미국 망명을 신청한 이유를 한결같이 한국 정부의 정치적 박해와 한국민들의 탈북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라고 했다.


과연 이들은 미국에 긴급한 정치 망명을 신청해야 할 만큼 한국에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박해와 차별은 무엇일까. <시사저널>은 두 사람의 탈북 경위와 국내 정착 과정, 정부의 지원 내역 등에 관한 각종 정보를 조회하고, 이들과 가까이 지낸 주변 새터민들의 증언 등을 입체적으로 추적했다.


우선 서씨는 중증 장애인 탈북자였다. 북한 인민보안성 건설 분야에서 중사로 근무하다 제대한 그는 함흥에 있던 2.8비날론연합기업소 노동자로 일하던 1996년 대폭발 사고를 겪었다. 카바이트가 폭발해 전신에 3도 중화상을 입고, 손이 마비된 서씨에게는 곧바로 아내가 도망가는 불행이 겹쳤다. 처지를 비관해 세 살 난 아들을 업고 중국으로 탈출한 서씨는 3년간 유리걸식을 하다 태국을 경유해 1999년 한국에 밀입국했다. 정부는 그에게 탈북자 지원법령에 따라 정착금 5천5백여만원과 장애인 급여 3천여만원을 지급했다. 서씨는 탈북자 수용 시설인 하나원에서 관계 당국의 주선으로 민간 단체의 후원을 받아 한 종합병원을 찾아 화상 제거 수술까지 받았다. 또 동료 탈북 여성을 만나 결혼하면서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정부는 이 여성에게도 별도로 정착 지원금 3천6백만원을 주었다.

새터민 100여 명, 미국 밀입국 노려

결혼 후 서씨는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 아파트까지 지원받아 둥지를 틀면서 코리안 드림을 이루어냈다. 얼굴에 남은 화상 흉터 때문에 마땅한 직업을 갖기 힘들다는 서씨의 호소에 따라 관할  동사무소에서는 서씨 가족에게 기초생활보장법을 적용해 매월 1백14만원씩 생활비까지 지원했다. 주택과 억대 자산을 가진 서씨에게 기초생활보장법을 적용한 것은 명백한 특혜였지만 불우한 탈북자의 정착을 도우려는 인도적 배려로 넘어갔다. 이렇게 서씨 가족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건넨 정부의 직접 지원금만 1억2천6백만원. 그러나 2003년 서씨는 그동안 받은 정착금을 챙겨 가족을 데리고 돌연 미국으로 향했다. 서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한 새터민은 “서씨는 얼굴이 흉해 사람들이 기피한다며 장애인 차별이 없는 미국에 가서 아들만은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국민 세금으로 지원받은 1억2천여만원을 싸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 국민과 한국 정부가 박해한다며 정치 망명을 신청했다. 1심에서는 그의 망명이 불허되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 제프리 판사는 지난 4월27일 서씨 가족에 대해 전격 망명 승인 판결을 내렸다. 망명을 취소해 한국으로 송환할 경우 한국 정부가 서씨를 강제 북송할 수도 있다는 변호인측의 ‘황당한’ 주장에 판사가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서씨측에서는 가족이 미국으로 건너간 뒤 거주지 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를 마치 한국 정부가 국적을 없애는 박해를 한 것처럼 설명했다. 주민등록제도가 없는 미국의 판사를 상대로 단순한 행정처분 절차를 두고 마치 국적을 박탈한 것처럼 몰아간 것이다. 사실 주민등록 말소라는 것은 거주지를 떠난 한국인은 누구든 새로운 거주지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되는 행정상의 불이익으로 과태료 2만~3만 원만 물면 언제든지 복구된다. 서씨의 경우 그가 미국에서 탈북자를 시켜 정부 지원 임대 아파트 보증금마저 빼내가자 후임 탈북자가 주소지를 옮겨오게 되었고, 이것이 자동으로 동사무소에 통보되어 주민등록이 말소된 것이다. 그가 돌아와 주소지 신고만 하면 과태료를 물고 주민등록은 언제든지 복구할 수 있었지만 이를 ‘국적 박탈과 북송 위험’ 주장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2004년 예술단 초청 공연차 미국에 들렀다 가족과 함께 눌러앉아 망명을 신청한 후 현재 대기하고 있는 마영애씨의 경우도 서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에서 보위부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했다는 마씨는 채무 문제로 고발당한 뒤 남편의 이혼 제기와 정보원 직에서 쫓겨나게 되자 북한 체제에 염증을 느껴 중국으로 탈북했다. 2000년 9월 중국 동포 명의의 여권을 위조해 국내에 밀입국하는 데 성공한 마씨 역시 탈북자 변 아무개씨와 재혼했다. 이어서 마씨는 브로커를 고용해 중국을 경유해 북에 두고 온 아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마영애씨 가족이 그동안 정부로부터 직접 받은 지원금은 1억6백여만원이었다. 임대 아파트 한 채 외에 본인과 남편 변씨 정착금 각각 3천7백여만원, 아들 최군 1천2백70만원, 고용지원금 2천만원 등이다. 그밖에 통일부 등 관계기관의 주선으로 전국의 학교와 군부대를 돌며 40여 차례 강연을 다니며 받은 강연료 수입도 짭짤했다. 그녀는 북한에서 배운 아코디언 연주 솜씨를 활용해 새터민들과 함께 2003년 ‘평양예술단’을 창단하고 전국을 돌며 활발한 수익 사업도 벌였다.


 2004년 5월 미국 교민 단체로부터 공연 초청을 받고 도미한 그녀는 단원들만 귀국시킨 뒤 부부가 미국에 남아 난데없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국내에 두고 간 아들 최군은 비밀리에 멕시코 국경을 통해 미국으로 밀입국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녀 역시 국내에서 받은 모든 정착 지원금을 미국으로 빼돌렸고, 임대 아파트 보증금까지 빼내가자 도시개발공사에서 이 사실을 관할 동사무소에 통보해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 마영애씨가 주장하는 한국정부의 박해 사유는 크게 두 가지로, 주민등록 말소와 뉴욕 총영사관에서 단수 여권 연장 신청을 불허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지금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 정부가 탈북자를 박해한다고 외치며 자신의 정치 망명을 성사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정착 일부 탈북자들이 여행 자유화 기회를 누리면서 저마다 미국으로 달려가 정치 망명을 신청하는 행위가 빈발하고 있다. 현재 멕시코 국경에는 국내 새터민 100여 명이 한국에서 받은 정착금을 싸들고 들어가 밀입국하려 대기 중이라고 한다. 또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는 각각 50명, 30명 안팎의 새터민들이 여행 목적으로 들어가 불법 체류하며 정치 망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이미 10여 명은 미국 이민법원에 망명 신청을 낸 뒤 불허당하자 가져간 정착금을 날리고 알거지 상태로 한국으로 추방되어 되돌아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을 세금으로 지원한 한국 국민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일부 새터민들이 미국에 가서 떠드는 ‘탈북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박해와 한국민의 차별’ 주장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탈출 이후 천신만고 끝에 국내에 들어와 정착한 새터민은 현재 8천3백여 명. 이들 중 80%는 식량 난민 등으로 탈북 후 한국 정부의 정착 지원금에 희망을 품고 산전수전 끝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나머지 15%는 북한에서 크고 작은 각종 사건·사고·범죄 등에 연루되어 도피한 이들이라고 한다. 

“미국 가면 부시가 3억원 준다” 소문 퍼져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탈북자에게 지원 법령에 따라 임대 아파트와 거액의 정착 지원금 및 보조금을 지급하며 직업도 알선해주고 있다. 또 현행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탈북자에게는 직업과 주택 유무에 상관없이 기초생활보장법을 적용해 매월 생활비를 꼬박꼬박 지원하고 있다. 이런 특혜를 받는 새터민은 약 80%인 6천여 명에 이른다. 양극화가 깊어지면서 한숨만 늘어나는 국내 저소득층의 처지에 비하면 국내 탈북자들은 엄청난 특혜를 받고 있는 셈이다. 탈북자들이 누리는 혜택은 해외 여행 통계만 보아도 한눈에 드러난다. 국내 탈북자들이 지난 한 해 동안 해외 여행을 한 빈도는 일반 국민에 비해 1.5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들의 해외 여행은 브로커를 통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데려오기 위한 중국행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했다.


 
문제는 이처럼 특혜를 입은 일부 탈북자들이 코리안 드림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과 한국인을 비방하며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는 행위가 빈발하자 국내 8천여 명의 새터민 사회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들은 서씨가 미국 망명에 성공한 데 고무되어 저마다 미국행을 꿈꾸고 있었다. 한 새터민은 “우리끼리 모이면 미국에 가면 부시 정부가 지원금 3억원을 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아 너도나도 들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의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에 규정된 예산 2천4백만 달러가 탈북자 정착 지원금으로 쓰일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탈북자들의 미국행을 돕는 미국 내 일부 보수 인권 단체 및 종교 단체들의 ‘부추김’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북한 정권을 압박하려는 부시 정부에 발맞추어 탈북자 초청 및 공동 기자회견, 미국 내 난민촌 건설 등을 앞다투어 추진하고 있다.


결국 일부 탈북자들의 모럴 헤저드(도덕적 해이)와 국가 간 예의는 물론 상식을 무시한 부시 정부의 빗나간 대북 정책이 결합되어 새터민들을 ‘정치적 소모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꼴이다. 부시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까지 끌어내 북한 압박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는 한 한국인의 반미 감정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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