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서울이 사라지고 있다 ”
  • 이문재 기자 ()
  • 승인 2006.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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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병중《서울잡학사전》펴낸 趙豊衍씨

서울은 기억력이 좋지 않다. 서울은 스스로 과거를 지우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우리의 1년은 세계의 10년 ’이기 때문일까. 서울은 어제는 없고 오늘과 내일만 있다. 50년전 이야기가 까마득한 ‘설화 ’로 들리는 것이다. 최근 趙豊衍(77)씨가 정동출판사에서 펴낸《서울잡학사전》은 그래서 무척 반갑고 뜻깊은 서물이다.

‘개화기의 서울 풍속도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서울의 좋지 않은 기억력에 도움을 주는 인문지리지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본 책 ”이라고 지은이는 말했다. 한 자연인의 ‘유년으로의 여행 ’이 역사화되고 사회화된 것이다. 이 책은 서울의 전통풍물, 역사, 문화와 전통, 풍수지리, 세시풍속 등을 다룬 서울의 꼼꼼한 향토지이다. 4백64페이지 분량에 소제목마다 거의 흑백사진을 곁들였고 책 뒷부분에는 ‘찾아보기 ’를 두어 사전처럼 독자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다.

10여년전 지은이가 한 신문에 장기 연재했던 1900년대 초기의 서울의 모습은 지은이의 활동사진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된다. “그때 춘향전을 무성영화로 보았는데 이몽룡이 스크린에서 절을 하면 관객들이 오오(오냐)하면서 인사를 받곤했지 ”라며 그 시절을 떠올리는 지은이는 “요즘 진짜 서울 토박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고 했다.

중국미녀 카드가 한 장씩 들어 있던 외국담배, 잠잘 때 신을 벗지 않는 중국인 노동자들, 열일곱살 소녀가 남장을 하고 중동학교에 들어갔다가 체육시간에 발각되는 풍경 등이 이 책의 앞 부분에 묘사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인 무게가 짓누르고 있던 그 시절에도 사람이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다큐멘터리로 읽힌다. 가족관계, 머리모양, 복식, 음식, 여성의 이름, 내시 이야기 등에서 우리들은 우리가 한 시대?전통문화로부터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적 주체성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즈음 향토지의 의미는 강조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직 써야 할 책들이 많은데 몸이 영 말을 안들어서…”라고 말하는 그의 건강은 집필생활이 거의 불가능해보일 정도로 나쁘다. 지난 88년 여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물리치료를 통해 기운을 회복한 이후 펴낸 책이《서울잡학사전》이다. 언론인?평론가?수필가?아동문학가 등으로 낯익은 얼굴. 그는 저 ‘라디오전성시대 ’의 ‘이야기박사 ’로 널리 기억되고 있다. 이서구, 양주동박사와 함께 그가 풀어놓던 입담 역시 아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서울 정릉에서 10여년 넘게 살다 병원치료 때문에 강동구로 이사한 그는 “누가 이런 시골에 와서 살 줄 알았겠어? ”라며 웃는다. 서울 견지동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라난 그에게 지금 살고 있는 강동구 가락동은 ‘격세지감 ’의 현장일 터이다. 문 밖 출입도 불편한 건강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즘 두 권의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 무성영화 시대를 정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우리말 다듬기》(가제)로 방대한 분량이다. 70년대부터 준비해오던 책으로 우리 국민의 국어생활의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항목별로 분류, 언어를 순화시켜려는 의도에서 집필해온 것이다.

내년이면 그는 부인 徐芳美여사(73)와 금혼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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