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의 저주 신기하지 않은 이유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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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펠레한테 인터뷰할 건 뭐야… 아 찜찜해”(미디어다음 필명 rock or die) “펠레를 인터뷰한 MBC 폐방하라”(네이버 아이디 : k99109081). 한국 축구팬이 펠레의 저주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펠레의 저주’란 축구 스타 펠레가 월드컵 우승 후보 또는 강팀으로 꼽는 팀이 항상 불운을 당하는 전통을 일컫는 말이다.

1994년 콜롬비아, 1998년 스페인, 2002년에도 프랑스·아르헨티나·포르투갈 등은 모두 펠레가 꼽은 우승후보였지만 모두 예선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겪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펠레의 저주는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다. 지난 5월14일 한 방송사가 “한국이 16강에 갈 것이다”라는 펠레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자 누리꾼들은 해당 방송사를 향해 매국 방송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한낱 우스갯거리에 불과한 펠레의 저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펠레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을 앞둔 6월3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한국이 폴란드를 꺾고 16강전에 진출할 것이다”라고 예상한 바 있다. 그때 이미 징크스는 깨진 것이다. 한국팀에 관한 펠레의 예언은 상당한 정확도를 자랑했다. 펠레는 그해 6월21일 8강전을 앞두고 요미우리 신문에 쓴 기고문에서 “한국이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진출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펠레의 저주는 한국만 피해 가는 것일까? 꼭 그렇지도 않다. 펠레가 2002년 1월 브라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승 후보로 브라질을 꼽았던 예를 들 수 있다. 또 펠레는 2000년 호나우두가 부상을 당해 월드컵 출전이 어려워졌을 때 “호나우두는 반드시 재기해 월드컵에서 활약할 것이다”라고 예견했고, 실제로 호나우두는 2002년 월드컵 때 최다 골을 넣으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펠레의 저주’라는 가공의 신화가 탄생한 이유는 그가 너무 말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해마다 월드컵 시즌이 되면 펠레는 언론이 받아 쓰기 좋은 예상 발언을 해주고 이 발언은 전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예언이란 원래 맞히기보다 틀리기가 쉬운 법. 빗나간 예측만 모아 편집하면 훌륭한 저주 목록이 된다. 축구 황제 펠레라는 이름값이 저주 리스트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 뿐이다. 독일의 축구 영웅 베켄바워는 2002년 월드컵 우승 후보로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를 꼽았지만, 이 예측은 빗나갔다. 하지만 그의 발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펠레의 ‘예언 남발’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귀빈으로 초청받아 방문한 국가에 대한 예의성 덕담이 많다. 2006년 1월25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펠레는 “사우디는 이전 월드컵보다 더 좋은 성적(8강)을 이룰 것이다”라고 칭찬했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서는 2010년 월드컵에서는 아프리카팀이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예언을 남발하다 보니 자기가 한 말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생긴다. 2005년 12월14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 칼럼에서 그는 “2006년 월드컵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바뀔 것이다. 일본이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라고 썼다. 2006년 1월27일 브라질 대통령이 참석한 다보스 포럼에서는 “브라질은 의심할 바 없는 우승 후보다”라고 말했다. 3월3일 호주에 가서는 “호주가 브라질을 이길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 결코 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세 나라는 모두 F조에 속해 있다. 같은 F조인 크로아티아의 초청을 받았다면 그가 또 어떤 말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지난 6개월간 펠레가 직·간접으로 언급한 ‘월드컵 예언’의 종류는 열두 가지가 넘는다. 독일 월드컵 승부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 그 예언 가운데 맞는 것보다 틀린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펠레의 저주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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