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식품 물밀듯 들어오나
  • 이유미 (녹색연합 활동가) ()
  • 승인 2006.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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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TA 앞세워 수입 식품의 관세 인하·검역 완화 요구

 
한·미 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가 체결되면 미국 농산물과 축산 가공품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2일, 포트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의회에 제출한 한·미 FTA 협상 개시 서한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에 대해 미국산 농산품의 관세와 기타 장벽을 낮추어 미국 농업 생산자들이 최대한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협상할 것임을 밝혔다. 포트먼의 협상 개시 선언 이후 미국 식품 산업계의 열렬한 환영 성명이 이어졌다. 

캘 둘리 미국 식품협회 회장은 “25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농산품 수출액이 말해주듯이 한국은 이미 여섯 번째로 큰 미국 농산물 수출 시장으로, 미국 식품 회사는 FTA를 통해 한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높일 수 있다”라고 기대감을 내보였다. 제롬 코작 미국 전국우유제조연합회 회장도 “2005년 한국에 대한 낙농업 총 수출액은 5천8백만 달러로 한국은 미국 낙농업 수출에 매우 큰 잠재적 시장이다”라며, 한·미FTA협상 개시를 환영했다. 따라서 미국은 미국 식품의 수출 확대를 위해 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식품 안전 규제를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유전자조작식품(GMO) 표시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등 우리의 식품 안전성이 크게 위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FTA 협상 개시의 전제 조건 중 하나로 한국은 광우병 때문에 금지했던 쇠고기 금수 조처를 해제하고, 생후 30개월 미만인 쇠고기 중 뼈를 제외한 부분에 한해 수입을 재개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농림부의 발표가 있은 지 7일 후인, 3월13일 미국 앨라배마 주에서 세 번째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다. 농림부는 현지에 전문가를 보내 죽은 소의 머리를 파내 치열을 확인하고, ‘1998년 4월 이전’에 태어난 소이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1998년 4월’은 미국이 ‘되새김 동물에 대한 되새김동물 사료 금치 원칙’ 규정을 채택한 시점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1998년 4월’이 광우병 안전에 대한 절대 기준이 될 수 없고, 과학적으로 치열을 통해 소의 나이를 확인하기도 힘들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이후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인 등뼈가 발견되고, 수입 조건이었던 20개월 미만의 소가 아니라 30개월이라는 것만으로도 즉각 수입 제한 조처를 취했다. 한국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강행 조처는,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 없이 국민을 인간광우병(BSE) 위험에 노출시키는 위험한 행위라는 비난을 비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밥상 위의 위험 요소가 하나 더 늘었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 쇠고기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식품 수출을 쉽게 하기 위해 직접적인 관세 인하와 위생 및 검역 조치(SPS) 기준 완화를 수단으로 사용한다. 미국은 협상 개시 통보 서한에서 미국 축산물 수출업체들이 한국에서 부닥치고 있는 장벽으로 ‘위생 검역 조처’를 꼽음으로써, 한국의 위생 검역 기준 및 검역 행정의 대폭적인 간소화와 완화를 요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반면 미국이 제시하는 협상 기준은 세계무역기구(WTO) 기준이다. 이 기준은 위생 및 검역 조처가 무역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 기준은 또 상대국에 대해 국내 기준보다는 국제 기준을 따를 것과, 엄격한 보호 수준을 설정하려면 ‘과학적인 증명’을 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각국의 식품 안전 확보를 위한 고유 권한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스스로 과학적 근거를 댈 수 없는 나라들은 사실상 식품 안전 분야에서 무장 해제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즉, 과학기술이 뒤진 국가 또는 후진국은 선진국의 무역 촉진을 위해 국민의 건강과 환경 파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 WTO는 미국과 캐나다의 성장 호르몬 주사 쇠고기 수출에 대한 유럽측의 금수 조처를 ‘불공정 무역 장벽’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6년 3월31일 미국 무역대표부가 제출한 <2006년 무역 장벽 보고서>는 미국 무역대표부가 각국과의 거래에서 ‘장벽’이라고 규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 한·미 FTA 협상에 있어 미국 정부의 의중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이 보고서에서 미국은 한국의 사전 수입 승인 제도가 까다로우며, 표준 및 적합성 평가 절차에서 미국식 ‘GRAS(미국 식품의약국에 의해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는 물질)’ 표준을 채택하지 않고 한국 특유의 까다로운 표준 및 적합성 평가 절차를 유지하는 것에 불만을 나타냈다.
 
미국은 이 보고서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의 식품 검역 기준을 낮추도록 요구해 왔고 그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면, '최대 농약 잔류량 제한(MRL)' 기준치가 적용되는 수입 농산품의 범위를 1백96개에서 47개로 대폭 축소했고, 미국산 생감자에 대해 유전자조작식품 라벨 부착 의무를 면제했으며, 조류 독감이 발생하지 않은 주에서 생산한 미국산 닭고기 등에 대한 금수 조처를 해제했다. 

반대로 우리 농축산물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축산물의 경우, 수출이 승인된 국가와 제조 회사로부터의 수입만 허용되고, 수입 축산물은 세관에서 농무부 식품 안전검사국의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지금도 한국 축산품은 카레에 포함된 소량의 쇠고기 등 몇 가지 예외를 빼고 모두 금수 조처돼 있다. 미국은 보건복지부 산하 식품의약청(FDA)이 식품의 물질적 오염, 화학적 오염, 생물학적 오염 여부에 대해 검사하고 있으며, 최근 이 검사를 강화하는 추세이다. 한국의 신고배가 농약 잔류 허용치를 초과해 압류 조처를 받은 바 있고, 깻잎 통조림과 두유, 식혜같이 열처리가 되었거나 진공 포장된 식품이 사전에 FDA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기 처분된 적도 있다.

식품 안전 분야에서 무장해제 당할 수도

보고서는 특히 “한국은 유전자 조작과 같은 바이오 테크놀로지(생명공학기술)가 사용된 옥수수, 콩, 콩나물, 생감자 등에 유전자 조작 여부를 표시하는 라벨을 달도록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유전자조작식품 수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앞으로 미국이 FTA 협상에서 한국의 유전자조작 표시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유전자조작식품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서, 전세계 유전자조작식품 재배 면적의 67%를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생산되는 콩의 35%, 옥수수의 25%가 유전자조작식품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유전자조작식품을 전통적인 종자 개량 식품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WTO 협상에서 유전자조작 작물에 대한 차별적 무역 조처의 철폐를 주장하는 ‘마이에미 그룹(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의 대표 주자이다.  2003년 5월, 미국은 유럽연합 6개국이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판매 수입 금지를 내린 것에 대해 WTO에 제소했고,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미국은 현재의 과학적 지식에 기초해서 위해성을 평가해야 한다는 WTO의 SPS를 근거로 내세우고, 유럽연합은 현재의 과학적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사전 예방적인 차원에서 바이오 안정 의정서를 따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바이오 안전 의정서 비준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미국은 유럽연합의 조처가 동종 상품간 차별을 금하는 ‘무역에 대한 기술 장벽에 관한 협정(TBT)'을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유럽연합은 유전자조작제품과 일반 제품은 동종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펴고 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의 첨예한 대립은 올해 말 최종 판결이 날 예정이다.
  
한·미 FTA는 이처럼 ‘자유 무역의 확대’라는 명제 아래 ‘안전한 식품에 대한 접근권’까지 해체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한·미 양국은 서로의 위생 및 검역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바닥으로의 경쟁’을 시작할 것이고, 문제는 전문 인력이나 기술, 장비, 정보 모든 면에서 열세에 있는 한국이 “바닥을 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식품 검역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많다. 중국산 납 꽃게 파동, 김치 속 납 검출, 장어 말라카이트그린 발암 물질 검출과 같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수입 검역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우리 식탁에서 중요한 식품 순서로 위생 검사 항목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또한 미국에서는 저장 목적으로 살균·살충 등을 위해 일반 농약의 사용을 인정하고 있으며,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와 같은 축산물에 성장 촉진 및 질병 예방, 치료를 위해 항생 물질 사용이 광범위하게 증가되고 있다. 이런 사실을 감안할 때 국민 건강 차원에서는 검역이 오히려 강화되어야 함에도 현재 진행 방향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또한 SPS 기준 완화는 악성 가축 전염병과 유해 병해충의 유입 가능성을 높여, 국내 동식물 보호와 환경 차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유전자조작식품, 유기농 식품 등에 대해 라벨링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나 광우병을 유발할 위험이 있는 쇠고기 부위나 조류 독감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는 가금류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을 위해 당연히 취해야 할 조처이다. 그럼에도 협상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자세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지난 5월 12일 국회에 '대외 비공개' 표시를 달아 제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목표 및 우리측 협정문 초안 주요 내용> 보고서에서 위생 및 식물 검역 조치 적용에 대해 WTO SPS 협정상의 권리와 의미를 재확인한다는 내용만을 담고 있다. 이것은 현재 정부가 한·미 FTA 체결이 국민들의 생활과 건강에 미칠 세부 영향을 분석하고 그 분석 내용을 토대로 협상의 원칙과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3년 가공 식료품 전체 수입량의 44%를 미국에서 수입할 정도로 한국의 미국 식품 의존도는 높다. 사실 미국의 식품 산업은 거대 농식품 복합체가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병선 교수(건국대·경제학)는 “카길과 콘티넨탈이 미국의 곡물 수출의 거의 50%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는 곡물의 가공, 동물 사료, 가금류, 낙농 제품, 과일 주스, 씨리얼, 음료 농축액 등 음식료 부문의 거의 전 품목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자 및 비료, 농약과 같은 농업 생산 자재 산업에도 진출해 농업 생산과 관련된 사업 전반과 연관되어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한·미 FTA 체결은 한국의 식량 수급을 소수의 초국적 농식품 복합체에 더욱 의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으로 보인다. 농촌은 타격을 입고,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한 식품에 대한 선택권도 위협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철저히 미국 농식품 복합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가.

 
대법원은 판결에서 WTO 협정은 수입 물품이 국내의 동종 물품과 경쟁할 때 차별적인 대우를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내산을 우대하는 전북도의 조례는 WTO 협정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환경 우리 농산물 급식 조례가 WTO의 분쟁 해결 협의 절차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또 미국·유럽연합·일본 등 21개국이 모두 학교 급식에 자국산 농산물 사용을 규정해 놓았기 때문에 상호주의에 입각해 제소의 가능성이 낮았던 터였다. 결국 우리 정부가 알아서 국내법보다 WTO를 더 배려한 것이다. 설령 제소가 들어온다 하더라도 국민과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정부가 지켜야 할 부분을 알아서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결국 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산 식품의 대대적인 수출 공세를 펴는 미국 정부에 빌미를 제공하는 셈이 된다. 축구로 치면 ‘자살골’이다. 지난 4월27일, 부산 해운대 구의회가 학교 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학교 급식 조례 제정 움직임이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 유럽연합처럼 호르몬 쇠고기나 유전자조작식품과 관련해 미국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한국 정부에 기대할 바가 없다. 상식의 수준에서 풀뿌리 운동에 찬물을 끼얹지나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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