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방송’ 볼수록 흥미롭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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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향 인터넷 방송 채널 급속히 늘어…뉴스에서 교육까지, 장르 무궁무진
 
장면 하나. 뉴스 논평을 하던 방송 진행자가 갑자기 일어선다. “잠깐 화장실에 갔다가, 음료수 한 잔 마시고 오겠습니다. 잠시 동안 제 얼굴 보고 계세요.” 그러고는 카메라 앞에 증명사진 한 장을 걸어놓는다.

장면 둘. 목요일 밤 9시5분. “오늘 방송은 5분 늦었습니다. 강아지가 마이크를 물고 가는 바람에. 그럼 이제부터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만약 공중파 방송에서라면 이런 ‘황당한 시추에이션’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방송사고이다. 하지만 인터넷 방송, 그것도 인터넷 1인 방송에서는 사고 축에 못 든다. 네티즌들도 채팅으로 “어서 화장실 다녀오세요”라며 ‘대략 용서’하는 분위기다. 네티즌 한 명이 PD·작가·BJ(방송 자키) 노릇을 혼자 하고, 다른 네티즌들과 상호 소통하는 ‘1인 방송’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 ‘난다 긴다’ 하는 네티즌들의 주종목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의 첨단에 있는 네티즌들은 자기가 직접 동영상을 생산하고, 그 동영상으로 소통한다. 웹캠으로 촬영한 영상이나 자기 컴퓨터에 있는 동영상을 모니터에 보이는 그대로, 스트리밍 방식으로 생방송할 수 있는 ‘아프리카’(afreeca.pdbox.co.kr) 같은 서비스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생방송 도중에 다른 시청자 네티즌들과 채팅하는 것이 가능해 쌍방향 방송이 가능하다. 아프리카에서 상시로 개설되는 방송채널 수가 평균 5백개다. 하루 평균 동시 접속자 수 4만명, 월 방문자 수가 2백만명에 이를 정도로 반응이 좋다(2006년 4월 말 기준). 아프리카처럼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뿐만 아니라 판도라TV, 엠군, 디오데오, 다모임 따위 동영상 사이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 ‘사실과 거짓의 경계에 있는 뉴스 논평’

정영진씨(32)는 ‘인터넷 1인 방송’ 도중에 증명사진을 웹캠 앞에 걸어두고 화장실에 다녀온 적이 있는 ‘1인 방송인’이다. 아프리카 사이트에서 시사 논평 프로그램인 RTN(리얼 타임 뉴스)을 제작·진행·연출하고 있다.

정씨는 처음에는 매우 실용적인 목적으로 1인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방송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면접을 보고 나면 자신이 아는 것이 70% 정도만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자기의 시사 상식도 활용할 겸, 조리 있게 말하는 방법도 익힐 겸, 방송사 카메라 테스트에 대비할 겸 웹캠 앞에 서게 되었다.  

방송 준비는 간단하다. 먼저 방송 전에 한 시간 동안 뉴스 스크랩을 하고, 매체 서핑을 하며 그날그날 중요 뉴스를 정리한다. 그러고 나서 웹캠을 이른바 ‘얼짱 각도’로 책상 앞에 설치하면 준비 끝이다. 비주얼을 위해 남들보다 하나 더 준비하는 것이 있다면 ‘조명발용’ 형광등 스탠드를 하나 더 켜는 것.

 
그에게 인터넷 1인 방송은 소통의 공간이다. 너무 인원이 많으면 시청자 네티즌과 채팅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청자 수를 100명 정도로 제한하는데, 소통이 활발하다. 시사 퀴즈 대회를 열기도 하고, 황우석 박사 건, 부동산 정책, 대추리 미군부대 문제에 대해 방송할 때는 시청자와 논쟁을 하기도 했다. 주제와 상관없이 나이나 신상 정보를 묻는 네티즌과는 가볍게 ‘농담 따먹기’를 하기도 한다.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1인 방송은 재미있다. 호응이 좋을 때는 6시간 연장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에 있는’ 주관적인 방송을 지향한다. 시청자 네티즌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뉴스 논평과 함께 더러 황당하고, 웃기는 얘기를 해놓고도 웃지 않는 ‘얼음 왕자형’ 진행을 컨셉트로 삼았다. 이른바 ‘남자 노현정’ 컨셉트다.

올해 2월부터 공중파 방송사 리포터로도 활동하는 정씨는 어떤 아이템이든, 어떤 주장이든, 컴퓨터와 캠 하나만 가지고 ‘인터랙티브’하게 방송할 수 있다는 점을 1인 방송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공중파와 1인 방송을 오가는 이유이다.

# ‘원맨 홈쇼핑’ 방송에서 플래시 몹 응원전까지.

김도형씨(32)는 인터넷 1인 방송을 마케팅 방법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그는 쇼핑몰과 인터넷 1인 방송을 결합했다. 이른바 ‘원맨 홈쇼핑’. 그는 주인장닷컴(www.juinjang.com)이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데, 미니 생수기, 하트 모양 컵 같은 아이디어 상품을 팔기 위해 매일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아프리카 사이트에서 1인 방송을 하고 있다. 생방송을 마치면 이를 재편집해 판도라TV, 엠군 등 동영상 다운로드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 10여 곳에 올린다.

김도형씨는 지난해 9월에 쇼핑몰을 만들었다. 고민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였다. 튀는 아이템을, 튀는 방식으로 알리고 싶었다. 그러던 중에 텍스트보다는 동영상으로 제품을 코믹하게 소개하는 방식을 떠올렸다. 

 
그에게 방송은 어렵지 않았다. ‘멍석이 깔리자’ 바로 머리 가르마를 2 대 8로 하고서 ‘코믹 모드’에 돌입했다. 대학에 다닐 때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국대학연극제에서 연기상으로 받을 정도로 끼가 있어서인지, 그는 특별한 콘티나 대본 없이 ‘날방송’을 한다. ‘생각나는 대로 만드는데도’ 재미를 주고,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인터넷 1인 방송인인 모양이다.

점차 소문이 나자 이 희한한 1인 홈쇼핑 방송으로 네티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쇼핑몰을 연 첫 달에 월 33만원 정도였던 매출액이 현재 월 1억원 수준으로 치솟았다.

김도형씨는 월드컵을 맞아 해외 생방송도 계획하고 있다. 일명 ‘AGAIN 2002 미친응원전’. 오는 6월2일 가나와 국가대표팀 평가전이 열리는 영국 에든버러에서 플래시 몹 형식으로 거리 응원단을 모으고 이를 생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그가 말하는 경쟁 상대는 공중파 방송의 개그맨 이경규. 그래서 1인 방송 제목도 ‘이경규만 가냐? 주인장도 가다’로 했다. 물론 외국에서도 장사는 계속 한다. 매우 단순한, 한국인이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 사투리 영어’로 물건을 팔겠다는 각오다.

# ‘이종 장르 1인 방송 연합군’ 쌩쇼방송국 (SSBS)

남경표씨(27)는 인터넷 1인 방송인들의 연합군인 ‘쌩쇼방송국(SSBS·www.ssbs.tv)’ 구성원이다. SSBS는 그와 뜻이 맞는 인터넷 1인 방송인 7~8명이 만든 가상 방송사이다.

남씨의 방송은 그야말로 ‘이종 장르 무규칙 1인 방송’이다. 그동안 자신의 방송에서 수십개 아이디어를 담았다. 그의 프로그램 ‘경표의 내 꿈을 펼쳐라’에서는 즉흥 연기, CF 패러디를 선보였다. 채팅을 통해 네티즌들로부터 특정한 상황을 받아 그가 5분 동안 마임 연기를 보여주고 이어서 CF를 패러디했다. 가령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 같은 광고는 그가 오노 수염을 붙이고 피리를 불면서 ‘심판은 오노를 좋아해’로 패러디했다. 여태껏 패러디한 CF만  100여 편. 이 패러디 CF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그는 돌연 유명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SSBS 주최로, 노트북을 이용해 서울 대학로에서 공개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가 만든 1인 방송은 시청자 네티즌 참여가 돋보인다. 대표적인 것은 ‘신문고’와 ‘청년 실업 100만 시대’. 먼저 그가 인터넷 신문고 난에 올라온 사연을 보고서, 그 글을 올린 사람에게 e메일을 보내 방송 출연을 요청한다. 생방송 중에 그에게 전화를 하고, 분쟁이 붙은 다른 당사자에게도 전화를 걸어 의견을 듣는다(컴퓨터와 전화를 연결하는 간단한 장비만 있으면 기술적 문제는 금방 해결된다). 평가는 네티즌이 한다.
‘신문고’ 코너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한번은 강원도에 있는 한 유명 메이커 대리점의 애프터서비스 문제를 다루었다. 한 네티즌이 애프터서비스를 맡겼는데 한 달 동안 감감무소식이었고, 연락을 했더니 대리점주가 대뜸 욕설을 퍼부은 사건이었다. 남씨가 양쪽을 다 전화로 인터뷰해서 생방송을 내보냈는데 문제가 금세 해결되었다. 동영상 펌질이 많이 되자 관련 회사에서 ‘그 매장을 정리하겠다’고 연락해오기까지 했다. 그가 1인 방송의 위력을 실감한 순간이다.

 
‘청년 실업 100만 시대’는 일자리 검증 프로그램이다. 숙식을 제공한다는 둥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일자리 공고를 골라내 생방송 도중 그 회사에 전화를 걸어 ‘마치 자기가 취업할 것처럼’ 속속들이 물어본다. 이 정도면 거의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 수준이다.

남씨는 최근에는 대학생 두 명과 함께 두 달에 걸쳐 부산·대구·인천·대전·광주·서울 등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전이 열렸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2천6m짜리 펼침막에 대략 4만명에게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문구를 받았다. 그때 삼보일배를 하면서 지역을 돌아다녔던 과정을 다큐 형식으로 편집해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수요일에는 ‘써니’ 안미선씨(26)와 함께 시청자가 참여하는 ‘쌩쇼 노래방’을 방영하고 있다.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전화로 노래하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남씨는 한 주에 2~3회 정도 방송을 한다. 처음에 재미 삼아 시작한 것이 이제는 생활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그는 “어느 정도 주목을 받으니까 이제는 나만의 방송국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강하다. 배우 지망생으로 내 프로필을 쌓아가듯이 앞으로 ‘인터넷 1인 방송인’으로 경력을 쌓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 1인 방송에서 커뮤티티형 교육 방송으로

네티즌 가운데는 인터넷 1인 방송을 ‘교육방송’으로 활용하는 이가 더러 있다. 포토숍 강의를 인터넷 1인 방송으로 강의하는 방송자키도 있다. 강원씨(26)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1인 방송을 통해 그가 관심 있는 헤나 문화를 알리고 교육한다. 헤나는 우리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듯, 식물성 성분으로 신체에 무늬를 그리는 인도 문화이다.

강씨는 3부작 12회 방송을 목요일 오후 9시에 하고 있다. 1부는 헤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헤나를 알리는 내용, 2부에서는 직접 헤나 시범을 보이고, 3부는 야외에서 시청자와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다.

헤나 관련 커뮤니티(henia.cyworld.com와  club.cyworld.com/fattoo)를 운영하는 강씨는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방편으로 1인 방송을 이용한다. 지방에 살거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은 오프라인 정기모임에 참가해 헤나를 배우기는 어려웠다. 이들을 위해 강씨는 헤나 강의를 하고, 헤나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가입하도록 한다. 커뮤니티 사람들도 방송에 참여하기 때문에 그의 1인 방송은 커뮤니티형 방송이라 할 수 있다. 1인 방송을 하면서 얘깃거리가 많아져 회원들과 친해지기도 했다.

강씨는 “헤나도 알리고, 모르는 사람이 보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회원이 되면 좋고. 일석이조다. 꾸준히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터넷 1인 방송’은 새로운 인터넷 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개성 있는 아이디어로 전통적 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릴라들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날이 진화하는 미디어 생태계에 접속하는 일은 늘 새롭고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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