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총장이 원수니…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6.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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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연세대, 불신·소통 부재 탓에 총장실 점거 장기화
 
대학교 총장실에 총장은 없다. 대신 학생들이 있다. 출입문은 낮에도 잠겨 있다. 대신 ‘노크해주세요’라고 쓰인 메모 쪽지가 붙어 있다. 노크를 하고 학생들로부터 신원을 확인받아야 드나들 수 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2동에 있는 동덕여자대학교의 총장실 풍경이다.

올해 들어 부쩍 대학교 총장실이 점거당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벌써 일곱 개 대학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대부분은 해결되었지만 연세대와 동덕여대는 현재 진행형이다. 학생들만 총장실을 점거한 것이 아니다. 충북 청주에 있는 청주대학교는 교수들이 100일 동안이나 총장실을 점거했다.[00쪽 상자기사 참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동덕여대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한 날은 동덕여대 56주년 개교기념일인 지난 5월26일이었다. 총학생회장인 문수연씨는 “학교측이 총학생회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거부했다.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총장실을 점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학교측과 총학생회는 올 들어 등록금 인상과 총학생회 인정 문제를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지난해 12월1일 출범한 동덕여대 제39대 총학생회는 등록금책정위원회에 두 차례 참석했다. 처음에는 학교측이 총학생회를 인정했다는 반증이다. ‘등록금책정위원회’는 2003년 재단의 전횡에 맞서 교수와 학생들이 싸움을 벌인 끝에 이사회를 새로이 구성하면서 이룬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학교와 학생, 교직원 등이 모여 등록금 인상 여부와 인상률을 결정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후 학교측은 “투표자수가 총 유권자의 50%가 되지 않고 선거인 명부도 조작되었다”라며 돌연 총학생회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등록금은 학생들을 배제한 채 인상되었다. 동덕여대 손봉호 총장은 ‘학생회비 0원’ 고지서를 발부한 데 이어 지난 4월25일에는 “총학생회를 학생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총장실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교수 억류’ 논란을 일으켰던 일곱 명의 학생을 고려대가 출교 조치한 며칠 뒤였다.

총학생회를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시비가 일자 전국교수노조 등 69개 단체로 구성된 ‘동덕여대 문제 해결을 위한 교육·시민·종교계 공동투쟁위원회(약칭 공투위)’는 재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재검증에 참여했던 교수노조 정책실장 이성대 안산공대 교수는 “학교측이 참여를 거부했다. 학생과 언론이 지켜보았다. 검증 결과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부정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공투위는 5월9일 “총학생회를 부정 학생회로 규정할 만한 어떤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그 직후 손총장은 “학교의 결정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사법 당국에 호소하는 것이 정도다. 국가 사법기관의 판정에 의하지 않고는 이미 내린 결정을 결코 번복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총학생회장 문수연씨는 “대화를 거부하던 학교측이 지금 와서는 먼저 점거를 풀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러 번 말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학교측을 신뢰할 수 없다. 선거 부정 의혹을 제기해서 등록금 인상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학생회를 탄압하고 있다. 학생들의 자치권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손봉호 총장이 퇴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28일 발생한 ‘폭력사태’는 양측의 갈등을 극대화했다.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들을 지지 방문했던 연세대 남학생의 신원을 확인하겠다는 교수들과 이를 막으려는 학생들이 충돌한 것이다. 이 사태는 몸싸움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김아무개 부총장 등 교수 네 명과 학생 일곱 명이 종암경찰서로 연행되는 것으로 비화되었다.

 
연세대 학생 손아무개씨는 동덕여대 정문 수위실에 신분증을 맡기고 정식으로 출입증을 받아서 학교에 들어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손씨는 “영문을 모르겠다. 총장실 문을 나서는 순간 ‘찍어’ ‘잡아’하면서 나를 붙잡아서 벗어나려고 했을 뿐 도주하려 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동덕여대 김경애 학생처장은 5월29일 성명을 내고 “무단 점거된 총장실에 외부 남자들이 출입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총장실에 있던 중요한 서류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이 걱정되어 남학생의 신분을 확인하려고 했다”라고 주장했다. 김처장은 “일부 학생들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오히려 학교 발전을 저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라며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동덕여대 사태는 서로가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점점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학교측은 총학생회는 무시하면서도 하위 조직인 단과대 학생회는 인정하고 있다. 지난 5월15일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총장이 직접 일부 단과대 학생회장들을 만났다. 그동안 총학생회가 주도적으로 치러왔던 대동제 대신 올해는 학교 학생처가 ‘동덕가족 큰잔치’를 주관했다.

김경애 학생처장은 “졸업생, 외부인 그리고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반말은 예사고, 여교수에게 ‘아줌마’라고 소리 지르며, 어깨만 살짝 닿아도 전치 2주요, 머리카락만 스쳐도 머리채 휘어잡았다고 주장하는 등 비상식적인 언사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학생들도 할 말이 많다. 문수연 총학생회장은 “총장실 건너편에 보직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교수 10여 명이 상주하면서 드나드는 학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찍고 이름을 적었다. 새벽에는 369게임을 하기도 했다. ‘가정교육’ ‘파괴분자’ 운운하면서 교수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유치한 발언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총장실이 학생들에게 점거당한 대학은 동덕여대만이 아니다. 연세대는 지난 3월29일 “등록금을 12%나 인상하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주장하며 총장실은 물론 대학본부 건물 2~4층을 학생들에게 점거당한 이후 두 달 넘게 진통을 겪고 있다.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덕여대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인다. 사전에 통보한 상태에서 총장실 점거가 이루어졌고 학교측도 미리 컴퓨터 등 중요 집기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연세대의 경우 최근 사태가 극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되었다. 정창영 총장이 1, 2학기 합해 ‘도서지원비’ 5%를 2학기 등록금 고지서에서 차감하고 학자금 대출이자 1년분을 학교에서 대신 납부해주는 방안 등을 총학생회에 제안했고, 총학생회는 격론을 벌인 끝에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 최종 결론을 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미흡하지만 학생들은 실리를, 학교측은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 연세대 윤태영 부총학생회장은 “투표에 부쳤다면 통과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총장이 총학생회측에 제안한 안은 정작 5월29일 열린 실·처장 회의에서 거부되었다. 정총장은 내부의 반대에 부닥치자 애초 안을 바꿔 ‘장학기금을 30억원 확충해 거기서 나오는 1억5천만원의 이자를 장학금으로 지급하겠다’는 방안을 새로이 내놓았다. 윤태영 부총학생회장은 “총장의 책임이 크다.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해결될 때까지 점거 농성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학교가 아니라 재단을 상대로 싸울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연세대 학생처 관계자는 “학교로서는 최종안을 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분간 학생들의 반응을 지켜볼 생각이다”라고 설명했다.

동덕여대, 연세대 등 총장실이 점거당한 학교의 공통점은 학교와의 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연세대 윤태영 부총학생회장은 “우리도 점거 농성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학교측이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무조건 따르라는 식인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닌가. 우리가 틀릴 수도 있지만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학생들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 서로 간에 몰이해와 오해가 쌓이고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라고 분석했다. 연세대 총학생회는 지난 5월30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학교측이 던져주는 몇 푼의 돈이 아니라 학생들을 진지한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는 분명 환영받을 일은 아니다. 연세대 총학생회 게시판에 “지금 총학생회 활동이 얼마나 지지를 받는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올라온 것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교수노조 정책실장 이성대 교수는 “학생을 대화의 주체로 인정하는 공동체 정신이 아쉽다. 대학의 행정 책임자들이 ‘너만 한 자식이 있다’는 식의 권위적인 자세를 바꾸지 않는 한 언제든 총장실 점거와 같은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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