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더 이상 내 몸이 아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의 일부가 연구되고 거래될 수 있다면? 이른바 생명공학 시대가 되면서 ‘수요와 공급, 계약, 교환, 보상 등 상업 용어들이 과학 언어 속에 침투하고 있다. 몸의 일부를 광물처럼 추출하고 캐내고, 작물처럼 수확한다. 신체 조직은 조달 대상이 됐다. 몸은 상품으로 탈바꿈했고 사람이 아닌 사물로 격하됐다.’ 생명공학의 발달에서 비롯된 법적·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인 저자들의 문제 의식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은 존 무어는 치료가 마무리된 다음에도 7년 동안이나 의사들에게 불려 다녔다. 환자의 건강을 이렇게 친절하고 세심하게 돌봐주다니. 그러나 의사들이 무어를 계속 부른 까닭은 무어의 몸에서 발견한 특이한 화학 물질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의사들은 연구에서 더 나아가 그 물질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니, 무어는 자기도 모르게 특허번호 4438032번이 되고 말았다. 의사들은 특허를 바탕으로 스위스 제약업체에서 1천5백만 달러를 받기까지 했지만, 의사들을 부정 의료 및 절도 혐의로 고소한 무어에게 돌아온 것은 없었다.
눈 뜨고 코 베어간다고 했던가. 이처럼 체내 화학 물질을 사실상 도둑맞은 사례가 있는가 하면, 난자를 도둑맞는 사례도 있다. 필리핀계 미국인 호르헤 부부는 불임 치료를 위해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리카드로 애시 박사를 찾아갔다. 애시 박사는 배란촉진제를 사용해 다수의 난자를 뽑아 남편 정자와 수정한 뒤 아내에게 착상했지만 임신에는 실패했다. 그런데 호르헤 부인의 난자 일부가 다른 여성의 몸에서 착상에 성공해 그 여성은 쌍둥이를 낳았다. 애시 박사가 호르헤 부부의 동의 없이 난자를 사용한 것. 1997년 병원측은 호르헤 부부에게 1천9백만 달러의 배상 합의금을 지불해야 했다.
자폐증 연구가 느린 진짜 이유
몸의 일부를 자기도 모르게 빼앗기는 것은 유명인도 비켜갈 수 없다. 1955년 사망했을 때 2백40조각으로 잘려 보관돼 온 아인슈타인의
뇌가 대표적이다. 아인슈타인의 사체 부검을 맡았던 프린스턴 병원의 병리학자 하비가, 생전에 그의 동의를 받지도 않고 제 맘대로 잘라내 보관한
것.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에 상대성 이론 100주년을 기념해 아인슈타인의 뇌 조각이 전시되었으니, 지하의 그가 알면 뭐라고 할까.
풍부한 사례들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려운 것은 그 사례들이 남의 일일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생명공학에 관한 한 세계 첨단을 걷는 한국이고 보니, 인체 시장도 첨단을 걸을지 모른다는 이유 있는 두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