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신저 한다 고로 존재한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6.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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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탄생 10년을 맞아 메신저로 세상을 배웠고, 메신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메신저 키드’ 이효준군과 그의 메신저 친구들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고등학교 중퇴자를 포함한 이스라엘 젊은이 네 명이 세상을 바꿀 만한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여기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야얼 골드핑거, 아릭 바르디, 세피 비시거, 암논 아미르. 네 사람이 마침내 의기투합한 것은, 인터넷에서 전화를 걸고 받듯 누가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지를 알려주는 기술을 개발해보자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인터넷에서 개인은 고립된 ‘섬’일 따름이었다. 

1996년 6월 미라빌리스라는 벤처 기업을 세운 이들은 그해 10월 급기야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네 사람은 이 기술에 ‘ICQ(I Seek You)’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초의 인스턴트 메신저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로부터 10년. 인스턴트 메신저는 맹렬한 기세로 세계를 평정해가는 중이다(상자기사 참조). 1990년 보급된 월드와이드웹(www) 사용자가 2억명이 되기까지 걸린 기간이 십 년이었다면 메신저는 등장 이후 5년 만에 사용자가 2억명을 넘어섰다. 

그렇다면 메신저는 우리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고, 앞으로 또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이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먼저 “나는 메신저로 세상을 배웠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메신저 키드’ 이효준군(20,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1년)을 만나보았다. 메신저와 이메일 인터뷰도 병행했다.

나아가 그와 메신저로 연결돼 있는 지인 십여 명에 대해서도 메신저 설문 및 인터뷰를 실시했다. 기성 세대가 전화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듯 메신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이들 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이효준군의 어머니 신순철씨(인구보건복지협회 홍보실장)는 아들에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일에 ‘올인’하다시피 살아오다  보니 아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서였다. 방과 후 이군의 숙제며 간식 뒷바라지는 어려서는 외할머니, 커서는 학원 몫이었다. 특히 지난해 아들이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난 뒤 신씨의 심적 부담은 극에 달했다. 

올 초, 재수 끝에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뒤 신씨는 그간 미안했던 마음을 아들에게 처음 털어놓았다. 그런데 돌아온 아들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이군은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인터넷과 메신저에서 배웠다”라며, 도리어 신씨를 위로했다.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메신저에서 만난 많은 사람이 충족해줬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진로를 결정할 때도, 슬럼프에 빠져 헤맬 때도 이군은 메신저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학원에서 한밤중까지 공부하다 지쳐 집에 돌아온 뒤면 컴퓨터 메신저를 켜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웃고 떠들다 자는 게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그래서 재수 중에도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메신저 교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일이 없다. 그는 오히려 이 기간 “머리가 많이 컸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몸이 아플 때도 메신저 지인들은 즉각적인 우군이었다. 메신저에서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리면 이들은 곧바로 이런저런 자기 경험담을 전하며 무슨 무슨 차를 마시라고 조언해주곤 했다. 이군은 가난이 어떤 것인지도 메신저를 통해 실감했다고 말했다. 아주 똑똑한 친구가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가 너무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해보았다는 것이다. 지금 만나는 여자 친구도 지난해 메신저를 통해 사귀게 됐다. 

이군의 사례는 이들 세대가 인간 관계를 맺고 확장해 나가는 방식이 기성 세대와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군이 메신저를 처음 시작한 것은 중3 때였다. 당시 게임과 판타지에 빠져 지내던 이군은 인터넷 게임·판타지 동호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몇몇이 메신저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고 메신저 세계에 입문하게 됐다고 한다. 

온라인으로 만난 친구가 더 많아

그 뒤 메신저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메신저를 통해 교유하는 지인 수는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재수를 하는 동안 지인 수가 크게 늘었다. 이 시기 ‘오르비스 옵티무스(www.orbi7.com, 약칭 ‘오르비’)’라는 대입 수험생 커뮤니티에서 만난 선배·동료들을 이군은 주저없이 ‘베스트 프렌드’로 꼽는다.  

이군은 현재 메신저 버디리스트(대화 상대 목록)에서 이들을 ‘친구’와 ‘친인’이라는 카테고리로 설정해 관리하고 있다. ‘친구’에는 고교 및 대학 친구·선후배 등 오프라인에서 먼저 만나 친해진 사람, ‘친인’에는 오르비와 각종 동호회 등 온라인에서 먼저 만나 친해진 사람이 주로 등록돼  있다. 5월 말 현재 친구는 70명, 친인은 1백명 정도이다.    

다시 말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먼저 만나 관계를 맺은 사람이 많은 편인데, 이군과 메신저로 연결돼 있는 지인들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했다(설문 참조). 곧 설문에 응한 열 명 가운데 오프라인에서 먼저 사귄 지인 수가 온라인에서 먼저 사귄 지인 수보다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중 일곱 명은 온라인에서 먼저 사귄 사람 수가 더 많았고, 세 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사귄 사람 수가 반반이었다.

이들 열 명 중 이군과 같은 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은 없었다. 열 명의 출신 학교 및 현재 다니는 대학도 모두 달랐다. 이군처럼 서울이 고향인 사람 또한 두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지방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온라인으로 만난 친구들이 지방 곳곳에 흩어져 있는 덕분에 이군은 거의 공짜로 전국 일주를 다닌 적도 있다고 말했다. 중3 때 세뱃돈과 심부름값으로 모은 30만원을 들고 여행을 떠났는데, 통영·부산·대구를 떠도는 동안 온라인에서 만난 형과 친구들이 잠자리와 먹을 것을 제공해줘 오히려 돈을 남겨 귀가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학연·지연·혈연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

학연·지연·혈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관계 맺기는 이들 세대의 특성이다. 이동후 교수(인천대·신문방송학)는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더 폭넓고 열린 관계망을 구축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성별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군은 “온라인에서는 얼굴을 못 본 채 말투만으로 상대를 판단하는데, 그걸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굳이 따질 이유도 없다”라고 말했다. 

 
단 온라인에서 먼저 알게 됐다고 온라인에서만 계속 만나는 식은 아니다. “진짜 친한 사이가 되려면 오프라인 만남이 병행되어야한다”라고 이군은 주장했다. 역도 성립된다. 이군도 “학교 친구들과도 메신저를 하면 더 친밀해진다. 얼굴 마주하면 낯간지러워 못할 얘기도 인터넷에서는 술술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설문에 응한 열 명 중 아홉 명 또한 순전히 온라인으로만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응답했다.

온라인·오프라인 만남에 딱히 경계는 없었다. 열 명 중 일곱 명은 온라인으로 대화할 때나 오프라인으로 대화할 때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대화하기가 더 편한 사람이 있고(마틸다), 직접 만나 대화하는 편이 정서적으로 더 편안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한**), 온라인·오프라인 간의 미묘한 경계를 뛰어넘을 정도의 친밀함이 형성되면 어느 쪽에서 대화하든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이효준).  

인터넷 등장 초창기만 해도 미래학자들은 지역·집단·성별을 넘어 사이버 상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러나 이런 예측과 달리 인터넷은 점차 개인의 영역으로 변화되고 있다. 집단이 중심이 되는 카페나 커뮤니티와 달리 개인이 중심이 돼 관계를 맺어 나가는 메신저나 블로그·미니홈피가 날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새로운 네트워크 사회에서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이버 유목민’이 대거 등장하리라는  예견이 실현된 것도 아니다. 이군과 지인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은 지연·혈연·학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되 무차별로 관계를 확장하지는 않는다. 그보다 일단 온·오프라인에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형성된 관계를 메신저를 통해 관리하고 다져 나간다는 편이 맞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나타나는 신세대들의 관계 맺기 방식을 탐구한 김예란 교수(한림대·신문방송학)는, 이들 가상 공간이 현실 공간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음에 주목했다. 곧 현실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강화하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상호 확인 작업이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가상공간의 공동체 문화 탐색>).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친밀함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또한 가상 공간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군의 메신저 친구인 마틸다(가명)는 그런 의미에서 메신저를 ‘필요악’으로 규정했다. 떨어져 있어도 바로 곁에 있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으되 대화 도중 어느 한쪽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곧바로 대화 목록에서 상대의 접근을 차단하거나 스스로 잠적해 버릴 수도 있는 매체가 메신저라는 것이다.

메신저에 익숙한 이들 세대 또한 이런 상황에 당혹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현실 세계에서라면 누군가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 앉아 있을 때 말을 걸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메신저 상에서라면 말을 거는 데 아무 부담이 없다”라고 메신저의 강점을 설명하는 이군은 대신 상대의 표정이나 몸짓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오해가 빚어질 때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메신저가 소통 능력을 저하시키는가

단적인 예로 대화 도중 상대가 갑자기 응답을 하지 않으면 ‘혹시 내 말에 화가 난 것은 아닌지, 나한테 신경을 안 쓰는 것은 아닌지, 급한 일이 생겨 자리를 비운 것은 아닌지’ 온갖 추측을 하게 되면서 마음이 초조해진다는 것이다. 이군은 재수 중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이러한 초조감이 특히 심했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나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이래저래 마음이 힘들 때 모니터 저편의 상대에게 평소보다 더 집착하고 매달리게 되는 것 같다”라고 이군은 스스로를 진단했다.

 메신저를 ‘쓸데없는 수다 도구’ 정도로 이해하는 기성 세대에게는 이들의 소통 방식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군의 어머니 신순철씨는 “혹시 아들이 학교에서 왕따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서로 친구 집에 놀러다니고 전화로 밤새 수다를 떨던 자기 세대와 달리 집에 오면 자기 방에 틀어박혀 계속 메신저 교신만 하고 있는 아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양은 사이버문화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자면, 메신저는 이들 세대에게 기성 세대의 전화와 같은 존재이다. 기성 세대가 전화로 사람과 소통했듯 이들은 메신저로 소통한다. 이군은 메신저를 이용한 뒤 그 이전보다 훨씬 왕성한 대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자부했다.   

한편 메신저가 현실 세계에서의 소통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는 지난 5월30일자에서 요즘 십대들을 ‘침묵의 세대’로 규정했다. 이들 세대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메신저에 빠져 현실 세계에서 말하는 법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양은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의 말하기·글쓰기 능력이 퇴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소통 능력의 퇴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기성 세대에게는 말하기와 글쓰기가 가장 익숙한 소통 방식이겠지만 이들 세대는 이보다 사진 한 장, 문자 한 줄로 소통하는 것에 더 익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 공간에서 침묵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가상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조용한 수다’를 이어가는 것이 메신저 세대의 특성이다. 새로운 네트워크 사회를 이해하려는 자, 조용한 수다에 동참할지어다.

이효준군의 메심저 친구들

김해인(20, 여, 고려대 국어교육과 1년)
1. 중2 때부터
2. 약 1백20명(약 100명)
3. 5~6시간
4. 어쨌든 콘센트 같은 거. -_- 거대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마틸다(가명, 20, 여, 이화여대 경영학부 1년)
1. 중1 때부터
2. 약 50명(25명)
3. 4시간 이상. 외출하지 않을 때는 하루 종일 켜둘 때도 있다
4. 필요악.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하는 것처럼 대화할 수 있는 장치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장치.
   어느 한쪽의 감정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바로 잠적할 수 있고 차단도 쉽다

서**(가명, 20, 남, 재수생)
1. 중2 때부터
2. 1백45명(약 80명)
3. 3~5시간
4.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편한, 계륵 같은 -_-/

송준모(21, 남, 연세대 세라믹공학과 1년)
1. 고1 때부터
2. 2백명(1백50명)
3. 4시간
4. 휴대전화보다 덜 귀찮은 연락 수단

심근우(22, 남,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1년)
1. 중1 때부터
2. 총 2백8명(약 1백40명)
3. 24시간 켜놓는다. 실제 대화는 5~6시간
4. 의사 소통에서 이미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 가끔 메신저 서비스의
   서버가 불통되면 화가 난다

양**(20, 남, 대학생)
1. 고3 때부터
2. 1백20명(60명)
3. 적을 때는 1시간, 많을 때는 10시간
4. 무응답

이영아(21, 여, 한국교원대 1년)
1. 중2 때부터
2. 약 70명(60명)
3. 24시간 켜놓는다. 실제 대화는 약 8시간
4. 친구들과 쉽게 연락할 수 있고 서로 친해질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공간

좌승협(22, 남, 대학생)
1. 중2 때부터
2. 1백14명(약 80명)
3. 5시간
4. 멀리 있는 친구와 가볍게 안부를 전하는 수단

진현준(22, 남, 성균관대 사학과 1년)
1. 고2 때부터
2. 2백80명(약 1백40명)
3. 3~4시간              
4. 편리한 존재

한**(19, 여, 대학생)
1. 중1 때부터
2. 약 100명(50명)
3. 4~5시간
4. 타인과의 대화를 좀더 쉽고 빠르게 해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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