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는 안 된다는 생각 버려야”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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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인터뷰]

 
17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직을 마치고 5월30일 열린우리당에 복귀한 김원기 전 의장은 요즘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하다. 17대 국회가 많은 개혁을 이뤄냈음에도 국민은 여전히 국회를 불신하고 있고, 자신을 정치적 스승으로 여기는 노무현 대통령과 자신이 초대 의장을 맡았던 열린우리당 또한 5·31 지방선거에서 국민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당 복귀와 동시에 여권 추스르기의 막후 조언자로 나선 김원기 전 국회의장을 6월13일 만났다. 국회의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동안 정치적 발언을 최대한 자제했던 그는 개헌과 정계 개편 등에 대한 소신을 비교적 분명하게 밝혔다.

김근태 의장이 이끄는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서민 경제를 챙기겠다고 했다. 방향을 잘 잡은 것인가?
이 시점에서 열린우리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당장 무언가를 앞세워 민심을 만회해야겠다고 하는 조급증이다. 그보다는 중산층과 서민의 현실적인 고통을 완화하고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인내심을 가지고 착실하게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통합이든 개헌이든 앞날의 문제는 당이 일단 중심을 잡고 난 다음에 등장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근태 의장의 스탠스는 옳다고 본다.

부동산 정책을 놓고 벌써부터 여권 내부가 시끄럽다. 당에서는 수정이 필요하다 하고, 청와대와 정부는 절대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열린우리당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국회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의기관이기 때문에, 국회가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불만을 반영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의 동기는 선하다. 하지만 아무리 동기가 선할지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원인 분석을 해봐야 한다. 다만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목표가 옳고 여야가 같이 법안을 통과시킨 정책이기 때문에 이를 일거에 뒤집는다면 정부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

당청 갈등을 해소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중요한 정책을 추진하려면 제1당인 열린우리당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적극적 협조가 필요한데, 그간의 당정 협의 과정에서 정부가 그것을 잘했다고 볼 수 없다. 정치는 현실을 딛고 서  있어야 한다. 방향이 옳을지라도 현실적으로 수용이 안 되면 인내력을 가지고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독선이라는 소리를 듣고 저항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다.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 열린우리당 역시 여전히 국회 의석을 가장 많이 가진 1당이기 때문에, 여당이라는 의식 아래 대통령과 정부와 모든 점에서 협의하고 토론하며 같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이 반노무현 정서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은데, 동의하는가?
나 역시 공동 책임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양 지적할 처지는 못 된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얘기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이미 예견된 상황에서 원래 지지 기반인 중산층과 서민의 지지라도 확실히 얻었어야 하는데 거기에 실패했다. 중산층과 서민층은 이 정권이 탄생할 때만 해도 기대가 컸는데 지금까지만 보면 고통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어려움이 가중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언어의 비용을 너무 많이 치렀고, 국가 경영을 맡은 집단으로서 신뢰와 안정감을 줘야 하는데, 우리 지지 계층이냐 아니냐를 떠나 불안한 집단으로 비친 것이 문제다. 이처럼 정책적인 불만에 정서적인 반감까지 겹쳐 이번에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던 것 아닌가 싶다.

대통령에게 이런 얘기를 했는가?
예전에도 부분적으로 했다. 개인적으로 말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대통령에게 해야 할 충고는 만나서 해야지 언론을 통해 해서야 되겠는가.

당 안팎에서 열린우리당만으로는 재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서 열린우리당 하나만으로도 되는 상황이 오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큰 테두리에서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세력과 힘을 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거기에 대해 비판적이고 뭔가 부도덕한 걸로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되었다. 지금처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의회를 한나라당이 독점한 상황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세력이 협력을 모색하는 것은 결코 부도덕하지 않다.

정동영 전 의장도 민주개혁세력의 연대를 주장했지만 역풍을 맞았다.
발언 시기가 적절치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할 수 있는 세력을 꼽으라면?
누구누구를 지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또 어느 세력은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고건 전 총리가 추진하는 희망한국국민연대도 포함되는가?                                                   고 전  총리 문제도 지금은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집권 세력이 깊이 반성하고 당을 먼저 추스르는 게 급선무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도 그렇고 우리당도 그렇고 다 내부에 노선 차이가 있어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번 선거처럼 국민에게 철저하게 심판을 받았다면, 이때는 노선 간의 경쟁이 갈등으로 불거지는 것을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 과거에는 지도부를 만들어놓고도 제각기 돌출적인 자기 주장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지나친 나머지 조직의 안정성이 깨지고 국민에게 불안한 집단으로 비쳤다. 의원총회 등을 통해 논의하더라도 상당 부분 지도부에 맡겨야 한다.

국회의장 퇴임사에서 대통령 권력의 분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경이 무엇인가?
17대 국회 들어 국민이 생각한 것보다 많은 것이 개선되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도 많아졌고, 정경유착 같은 부패 고리도 완전치는 못하지만 대부분 끊어졌다. 그런데도 국회나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여전한 것은 틈만 나면 의원들이 몸싸움을 하고 막말 공방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야 간 싸움은 바로 대통령 권력을 쟁취하려는 집착에서 비롯된다. 다음 대선에서 대통령 권력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고, 아니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대통령 권력 지상주의 때문에 스스럼없이 상대방을 공격하고 국회를 상처 내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근절되지 않는 것도 결국은 대통령 권력 지상주의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호남 전역에 “부산 정권 타도하자”라고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런 폐해를 없애고 국회가 좀더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권력에 대한 집착을 줄일 필요가 있다. 총리의 권한이 더 커지고, 총리는 국회 다수 세력과 연결되어 있으며 국회가 좀더 정치적 역할을 하는, 이원집정제든 내각제든 분권형 제도를 도입할 때가 되었다.

유력 대권주자들이 개헌을 반대하고 있고, 국민 정서도 개헌에 부정적인 편이다.
개발독재 시대에는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며 그 힘을 가지고 추진력 있게 밀고 가야 한다는 특수성이 있었다. 그것이 효과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대통령이 뭔가를 밀어붙이는 시대는 지났다. 사회도 다원화했다. 다양한 세력들의 주장이 용해되고 수렴될 수 있는 기관이 바로 국회 아닌가. 국회의 정치적 역량이 지금보다 더 강화되는 것이 시대 흐름상 맞다. 그러려면 대통령 제도에 대한 국민의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한다. 체육관 선거에 대한 반동으로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만이 민주주의다’라는 고정관념이 매우 강한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났다. 대선주자들은 각자 자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개헌을 반대하는데, 한나라당 의원들 중에는 내 주장에 찬성하는 사람이 더 많다. 다만 대선주자들이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논의에 활발하게 가담하기를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내년 대선 전에 개헌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개헌은 여야 간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이 다양하게 반영되어야 하므로 당장 밀어붙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바라건대 17대 대선 이전까지는 개헌 논의가 가닥이 잡혀서, 개헌이 대선의 이슈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적극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국회에 기구를 만들자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어느 정치학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더라. 미국의 대통령제가 수출만 되면 불량품이 된다고.

내각제를 하면 지역주의가 더 공고해진다는 비판도 있다.
그 점은 개헌과 별도로 선거구제를 중대 선거구로 한다든지,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늘린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정치를 가장 오래 한 사람으로서 당분간은 울타리 노릇도 하고 정치적 조언도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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