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때려 죽인 그들 경찰서에서 찧고 까불다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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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이 2명 살해.유기 혐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차마 인간이 한 짓이라고는 믿기 힘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 서남부 연쇄 살인 사건 등 여덟 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남규를 면담한 범죄심리학자들은 ‘괴물을 봤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정남규에 비하면 지난해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범 유영철은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정남규는 일체의 인간적 정서가 배제된, ‘배고픔과 성욕만을 해결하려는 머신’이라고 범죄심리학자들은 결론을 내렸다. 도대체 이런 괴물들은 어디서 왜 나타난 것일까. 우리 사회는 이제 이런 괴물들이 활보하는 지옥으로 변해가는 것일까.

 
확실히 조짐은 불길하다. 최근에는 자기들이 낳은 자식을 연쇄 살해한 뒤 유기한 엽기적인 남녀마저 등장했다. 혼전 동거중인 이들 20대 남녀는 자신들이 살해한 첫아이의 유해를 1년 넘게 방 안에서 끼고 살았다. 유영철· 정남규 뺨치게 괴이한 행적을 보인 이들 남녀를 통해 우리 사회를 들여다봤다.

5월31일 오후 7시께 서울 건국대학병원 영안실에서 광진경찰서로 신고가 들어왔다. 새벽 5시께 웬 젊은 엄마가 다 죽어가는 갓난아기를 데리고 응급실로 왔었는데 아무래도 아이 엄마의 태도가 이상하다는 제보였다. 의료진이 제대로 손쓸 사이도 없이 아이의 숨이 끊어졌는데 아이 엄마가 도무지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이가 죽으면 보통 엄마들은 거의 실신할 정도로 울게 마련인데 이 여성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한 표정을 짓더니 시신도 버려두고 전화번호 두 개만 달랑 남겨놓고 사라져 버리고 만 뒤였다.

두 개의 전화번호 중 한 개만 연락이 닿았는데 아이의 할머니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경찰은 아기 엄마와 아빠가 잠깐 와서 참고인 조사만 받으면 일을 간단하게 마무리하고 장례를 치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하게 꼬인다고 할머니를 설득했다.

태연한 표정으로 거짓말 일삼아

아이의 엄마인 박 아무개씨(23)가 광진경찰서에 나타난 것은 다음날 오후 2시께였다. 작은 체구에 안경을 낀 가냘픈 모습이었는데 듣던 대로 얼굴에는 전혀 슬픈 기색이 없었다. 박씨는 오후 7시부터 아기가 계속 보채다가 경기를 일으켰는데 새벽에 자다 깨보니 아이가 축 늘어져 있어서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이라고 진술했다. 담당 형사가 조서를 받으면서 보니까 박씨의 오른팔에는 일본어로 ‘사이고마데(최후까지)’, 왼팔에는 ‘I LOVE 성민 선주’라는 내용의 문신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호기심이 생겨 성민 선주가 누구냐고 물으니까 박씨는 무심코 ‘우리 아이들 이름’이라고 대답했다.  깜짝 놀라 아이가 또 있느냐고 물으니까 박씨는 당황해서 어물어물했다.

 
담당 형사가 계속 다그치자 박씨는 첫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1년 전쯤 첫아이를 낳았지만 키우다 잘못되어 죽어서 출생신고도 안 된 상태라 그대로 아차산에 묻었다는 것이다. 아차산 어디에 묻었는지 같이 가보자고 계속 몰아세우자 박씨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버티다가 아이의 유골이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유골은 1층 빌라의 베란다 안에 있는 보일러 옆 종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수건으로 시신을 꼭 감싼 다음 홑이불을 덮고 작은 종이 상자 안에 담아 밀봉한 뒤 다시 큰 종이 상자에 넣어둔 상태였다. 유골은 이미 하얗게 미라가 돼 있었다. 유골 상자 위 종이컵에는 향을 피운 흔적이 있었다. 박씨는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는 유골 상자를 장롱에, 이사하고 나서는 베란다에 보관해왔다고 진술했다. 향은 시신 썩는 냄새를 감추려고 피운 것이었다. 첫아이가 어떻게 죽었느냐고 추궁하니까 그때 남편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었기 때문에 자기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른다며 책임을 남편에게 미뤘다.

경찰은 남편까지 검거해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려고 짐짓 박씨의 진술을 모두 믿는 양 행동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박씨도 귀가  조처했다. 그러면서 박씨에게 가정 일이라서 경찰이 개입할 만한 문제도 아니니 빨리 남편도 출두해 조서를 받고 사건을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들이 다 속아 넘어갔다고 생각한 박씨는 다음날 동거남인 김 아무개씨(26)와 함께 경찰서에 출두했다.

경찰서에 오기 전 입을 맞춘 듯 두 사람의 진술은 일치했다. 남편이 아이 목욕을 시키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첫아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분리 심문하자 곧바고 허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이를 목욕시키던 욕조의 크기와 당시 상황을 더 자세히 캐들어가자 두 사람의 진술은 어긋났다. 궁지에 몰린 김 아무개씨는 아이가 하도 보채고 울어서 한 대 때렸는데 아이가 그만 죽고 말았다고 자백했다.
죽은 아이, 음식 먹은 흔적 없어

6월2일 병원 응급실에서 숨진 둘째 아이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부검 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쇄골이 부러져 있었고, 위에는 음식을 먹은 흔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맞아서 사망했다는 결론이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를 들고 박씨와 김씨를 계속 추궁하자 박씨가 둘째 아이는 자기가 죽였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울고 보채서 그만 욱하는 마음에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분유를 어떻게 먹였느냐고 물으니까 하루에 세 번씩 먹였다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했다. 신생아는 조금씩 자주 젖을 먹여야 한다는 것은 남자들도 다 아는 상식이었지만 여자는 육아에 백지 상태였다. 첫아이 기를 때는 분유 살 돈이 없어서 흰 우유를 먹인 적도 있었다는 ‘기절할’ 얘기도 털어놓았다. 올해 4월20일 태어난 둘째 아이는 출생 당시에 몸무게가 2.9kg였으나 40일이 지난 사망 당시에는 2.7kg이어서 병원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신생아는 태어나서 젖을 먹기 시작하면 체중이 빠르게 불어나기 마련인데 오히려 체중이 줄었다는 것은 얻어먹은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아이들은 전혀 보살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울며 보채다가 짜증이 난 두 사람에게 맞아 죽었다는 얘기이다.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추악한 진실이 하나 하나 드러나는 과정에서 보인 두 사람의 태도는 사건의 내용 못지않게 담당 형사들을 큰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 두 사람은 거짓말을 일 삼다가 궁지에 몰리면 사실을 고백하곤 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마치 남이 저지른 일을 말하듯 태연했다.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희한해요. 울지를 않더라고요. 4일 동안 조서받고 영장 떨어질 동안 여자도 남자도 한 번도 안 울었어요. 유골까지 찾아내 눈앞에서 풀어헤쳐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내가 막 섭섭하더라고요.”

광진경찰서 안석호 폭력2팀장의 말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안팀장은 두 사람을 불러 앉혀놓고 죽은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때 자기가 두 아이의 영혼이 너무 가여워 하도 펑펑 우니까 그제야 두 사람이 눈물을 조금 보였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조사 과정에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찧고 까불기까지 해 형사들에게 혼이 난 일도 있다고 한다.  

 김씨가 공익근무 요원 근무지를 이탈해 수배를 받고 있다는 것 외에 두 사람에게는 별다른 전과가 없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중퇴하고 고정된 직업 없이 PC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해왔다. 박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출해 이것저것을 하면서 지내다가 김씨를 만난 뒤부터는 별다른 일을 하지 않고 지내왔다. 둘 다 알코올이나 약물, 컴퓨터 게임 중독에 노출된 흔적도 없다. 박씨가 간질 증상이 있지만 약만 제때 먹으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는 상태이다.

김씨는 수배중이어서 경제 능력이 없기 때문에 가난한 어머니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고 있다. 오랜 동안 어머니로부터 받아내는, 일주일에 3만~6만원의 돈이 김씨의 주수입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하도 ‘땡깡을 부리는 바람에’ 어머니가 빚을 내어 얻어준 것이라고 한다.

 
유영철.정남규 같은 사이코 패스인 듯

그런 이유로 경찰은 김씨와 박씨의 범행 동기를 ‘극빈’이라고 설명했지만 억지스러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김씨와 박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분명하지만 두 사람은 가난을 비관하여 아이들을 학대하다 죽인 것이 절대 아니다. 김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첫아이가 너무 보채는 바람에 화가 나 견딜 수 없어서 죽였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겉으로 평범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전문가들의 심층 면접과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단서는 이들도 유영철이나 정남규 같은 ‘사이코 패스(psycho path)’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사이코 패스란 범죄심리학에서 비교적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개념으로, 놀라울 정도로 양심이 없는 이상성격자를 가리킨다(oo면 기사 참조). 이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괴로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동정심과 사랑이 완전히 거세되어 있는데 대부분 연쇄 살인범이 사이코 패스이다.

사이코 패스는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도 무자비하다. 보통 사람들은 아이와의 감정 교류를 통해 무한한 기쁨을 느껴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과 같은 짜증 나는 일을 기꺼이 감수하지만 사이코 패스는 그렇지 못하다. 미국의 한 사이코 패스는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똥이 손가락에 묻자 아이를 거꾸로 집어들어 벽에 던져 죽여버린 일도 있다. 또 다른 여성 사이코 패스는 몸이 피곤한데 남자 친구가 자꾸 덤벼들자 다섯 살 난 자신의 딸을 대신 남자 친구에게 던져주기도 했다고 한다.

박씨와 김씨가 사이코 패스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범법자 중에 사이코 패스처럼 보이는 자들이 자꾸만 늘어간다는 점이다. 안석호 팀장은 “요즘 경찰서에 잡혀오는 이들 중에는 의욕, 인내심, 죄의식, 이 세 가지가 전혀 없는 애들이 많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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