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물 푸르니 사람도 푸르네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6.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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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북(초록)사계절 함께 갖춘 인도 시킴 주/풍광 유려하고 인심 넉넉

 

인도는 한국인에게 낯선 여행지가 아니다. 인도관광청에 따르면 매년 4만5천명이 넘는 한국인이 인도를 찾는다. 이들이 주로 찾는 곳은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와 인도의 수도 델리, 그리고 바라나시와 캘커타 같은 낯익은 여행지다. 그러나 기자는 인도 동북부에 위치한 시킴주 여행을 추천하고 싶다. 시킴주에서는 델리 주변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인도를 만날 수 있다. 
  
외지고 험한 산악 지형에 자리한 시킴주는 영화 ‘와호장룡’ 촬영지처럼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 천지다.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도 울창한 숲이 끝나지 않는가 하면, 해발 3천7백미터에 위치한 짱구호수를 보러 가는 길에서는 사계절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출발지인 도심은 녹음이 우거진 여름, 조금 더 올라가면 빨갛고 노란 봄꽃들이 만발한 들판이 있다. 천수답 사이로 닦아놓은 좁은 길을 따라 다시 또 올라가면 쓸쓸한 가을이 기다리고, 짱구호수까지 올라가면 하얀 눈이 덮인 한겨울 풍경과 마주한다. 옛 대관령 길의 아흔아홉 구비는 짱구호수로 가는 길에 비하면 소꿉놀이 수준이다.

풍경도 풍경이지만 시킴 여행의 백미는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문화에 있다. 시킴 사람들은 한국인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몽골리안이 대다수다. 네팔과 티벳, 부탄 등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문화나 풍습도 친숙한 것들이 많다. 시킴에서는 티벳 불교 문화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곳에는 티벳 불교 사원이 많고, 티벳 유적과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도 있다. 갱톡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티벳의 츄루푸 사원을 모델 삼아 지은 큰 절이 하나 있는데, 늘 예배가 있어 티벳 종교 의식을 구경하기 좋다.

시킴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가운데 ‘모모’라는 음식이 있는데, 영락없는 만두다. 고기와 야채를 함께 갈아 넣는 우리 만두와 달리, 모모는 야채 모모, 치킨 모모, 쇠고기 모모 등으로 나뉜다. 양배추를 넣어 만든 야채 모모를 빨간 고추 소스에 찍어먹는 맛은 일품이다. 고추장과 김치의 맵고 담백한 맛을 달래는 데 딱 좋다.

기자가 이곳을 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후한 인심 때문이다. 이 지역을 여행할 때 기자는 카드만 믿고 현금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했었는데, 카드에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여행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기자가 묵던 호텔 지배인이 여행 경비는 나중에 은행 계좌로 송금해달라며,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갱톡에 다시 오기가 쉽지 않을텐데, 짱구호수까지 보고 가라. 돈 때문에 여행을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라며 모든 편의를 봐줬다. 그는 자기 사촌 동생이 운전하는 택시를 주선해주고, 짱구호수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명차의 산지 다르질링의 향긋한 휴양도 매혹적

그의 사촌동생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고 여행하던 날 기자는 지갑을 열 필요가 없었다. 짜이(인도인들이 즐겨먹는 밀크티)를 마시든 점심을 먹든 기사가 모두 지불했다. 자기 월급으로도 그 정도는 사줄 수 있다며. 또 기자가 보고 싶어 하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다 주었다. 시킴 전통주인 ‘창’을 마셔보고 싶다고 하자,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을 샅샅이 뒤져 창을 파는 집에 데려다 주었다. 시킴에서는 전통주를 대량으로 주조해 파는 양조장이 없고, 일부 가정에서만 만들기 때문에 창을 만드는 집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창은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했다. 누룩 대신에 ‘마르짜’라는 효모를 이용해 쌀을 발효해 만든 술이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설탕을 듬뿍 넣고 걸쭉하게 마셨다.  

창을 마신 뒤, 갱톡의 보통 가정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자 기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늙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 그리고 사별한 누나와 조카들까지 아홉 명이 사는 그의 집은 옹색하기 짝이 없었다. 어두운 방 하나와 부엌만 달랑 있고, 좁은 마당에는 염소와 닭들이 북적였다. 하지만 식구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반겨주었고, 차와 과자를 정성껏 내왔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넉넉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시킴 지역을 여행한 뒤에는 인도 제일의 피서지로 꼽히는 다질링에 들려보는 것도 좋다. 세계 3대 명차 가운데 하나인 다질링의 산지이자 풍광이 아름다운 인도 최고의 휴양지인데, 규모만 놓고 봐도 한국의 녹차 산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갱톡에서 다즐링으로 넘어가려면 다시 또 수없이 많은 산봉우리를 지겨울 정도로 많이 넘어야 한다. 이 길은 버스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고 험해서 4륜구동 ‘총알택시’만 다닌다. 총알택시는 여섯 명이 타도 비좁을 것 같은 작은 차에 9명이나 태우고, 지붕에는 짐을 가득 싣는다. 험한 산길을 곡예하듯 오르락내리락하며 다섯 시간쯤 달려가야 산마루에 시원하게 자리 잡은 휴양도시 다즐링에 닿는다.

다즐링도 갱톡처럼 경사면을 따라 집과 건물을 지었는데,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저택들이 많아 갱톡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갱톡이 시골 읍내 분위기라면 다즐링은 제법 세련된 중소 도시 같은 풍경이다. 다즐링에서는 ‘무엇인가 꼭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버린 채 쉬는 것이 좋다. 유적지가 아닌 휴양지여서 볼거리도 많지 않다. 차밭 체험이나 동물원 정도가 고작이다. 

다즐링은 차산지여서 차 밭도 많았지만 차 파는 상점도 많다. 다즐링 차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인도 다른 지역엑서는 가짜 다즐링 차가 유통되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구입한 차는 다즐링이라는 브랜드가 붙어 있어도 현지에서 마셔본 것과는 다른 맛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차밭 너머로 붉게 물드는 노을을 보며 마시는 다질링 차는 그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었다. 

동서남북 어디나 ‘시티 오브 조이’

인도라는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여기가 한 나라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북부, 동부, 내륙, 남부 등 가는 곳마다 다른 풍경과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인도 여행이야말로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인도 맛보기 여행’이라면 북인도 코스가 좋다. 델리, 아그라, 바라나시, 카주라호, 캘커타 등을 돌아보는 코스다. 인도를 상징하는 타지마할에서부터 불교와 힌두 유적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인도 여행 상품은 대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산과 계곡이 있는 자연 여행지를 원한다면 시킴이나 아쌈을 비롯한 인도의 ‘세븐시스터즈’로 불리는 동부 지역이 좋다. 산이 만들 수 있는 절경은 모두 이 지역에 모여 있다.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시미르 역시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여행지이다. 산악 트레킹이나 말 타기를 할 수 있고, 안개 자욱한 호수변에 있는 수상가옥 체험도 가능하다. 그러나 심심찮게 폭력 사태나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이어서 잘못 들어갔다가는 낭패 보기 쉽다.

사막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면 라자스탄을 여행해야 한다. 자이푸르, 조디푸르, 자이살메르, 우다이푸르 등 아름다운 사막 도시와 궁전을 돌아보며 낙타 사파리를 해볼 수 있다.

불교나 이슬람과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 힌두 문화를 보고 싶다면 타밀나두 주변의 남인도 여행이 제격이다. 타밀나두 아래 마하발리푸람에는 세계 최대의 부조 ‘아르주나의 고행’이나 해변사원 같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들이 많다.

인도의 남쪽 도시 트리반드룸에서 출발하는 케랄라 해변 여행도 매력적이다.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코발람 해변에서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그 위에 있는 알레삐에서는 백워터를 즐길 수 있다. 백워터는 배를 타고 강의 본류에서 벗어난 후미진 곳까지 가는 선상 여행으로, 배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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