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풍경 따라 역사 속을 걷다
  • 이창수(자전거 여행 칼럼니스트· <원더랜드 여행기> ()
  • 승인 2006.06.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쿠바 아바나/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먹을거리 빈약하지만 인정 '철철'

쿠바 공항에서 자전거를 조립하고 나서 하바나 시내를 찾아 자전거를 페달을 밟았을 때, 여행이 생각만큼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강렬한 태양이 하늘 높은 곳에서 이글거리며 한국에서 온 자전거 여행객을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빛바랜 누

 
런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창문 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시 돌아 온 ET를 쳐다보듯, 신기해하면서도 다소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환영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머나먼 ‘원더랜드’ 쿠바에서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치려면, 나에겐 마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쿠바의 수도인 하바나는 캐리비안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이런 문화유산이 쿠바에 일곱개나 있다. 전쟁이나 혁명을 여러 번 겪긴 했지만 대규모 폭격 같은 피해를 입은 적이 없어서 100년 전 지어진 도시 이미지가 오늘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50~60년대 미국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고 이곳 저곳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들이 즐비하며 이 도시에는 지난 날의 부흥을 느끼게 해주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거대한 건축물들이 많다.

우선 하바나에 관련된 모든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방파제 '말레꽁'을 따라 4km 정도를 달려 하바나 시내 '올드 하바나'를 향했다. 아바나 비에하'(올드 하바나) 구역에 들어서니 빛바랜 건물들과 좁고 청결하지 못 한 거리들이 눈에 들어 왔다. 이곳은 사진에서 본 그대로고, 사람들도 사진에서 봤던 그대로다. 아무렇게나 셔터를 누른 후 LCD로 확인해 보니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본 듯한 '쿠바다운' 사진이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혁명 광장'까지 갔다. 사진으로 봐서 익숙한 체게바라 얼굴 윤곽을 본뜬 조형물이 7층 정도 높이의 건물 벽에 붙어 있었다. 건너 편에는 호세 마르티 조형물이 있고, 큰 탑이 하나 서 있었다.

하바나 시내에는 특이하게도 거리 광고가 하나도 없었다. 한국 같으면 광고가 있어야 할 벽면과 공터에 온통 '프로파간다', 즉 선전물이 널려 있었다. 선전물에는 대개 카스트로나 체게바라, 호세 마르티 같은 혁명의 주인공들이 들어 있었다. ‘혁명정신 계승’ ‘싸우자, 이기자!’ 등의 구호는 쿠바 혁명이 성공한지 4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혁명의 ‘약발’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바나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겁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쿠바를 '악의 축' '위험한 나라'라고 하지만,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 했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도 없었고,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듯한 불타오르는 심장을 가진 열혈 대학생도 없었다. 대부분의 도시인이 그렇듯 하바나 시민들도 무표정하게 사는 듯 했다. 편두통이 있는 것처럼 약간 찡그린 얼굴도 있었고, 즐거운 얼굴로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천진난만한 애들이 나무로 만든 킥보드를 타고 놀았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만은 확실했다. 버스 차체 두 대를 연결해 만든 '낙타버스'는 통조림에 든 정어리처럼 사람들이 빽빽히 타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웃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하바나 거리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거리에서 파는 음식치고 먹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한 기업체 회장으로부터 여행경비를 후원받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넉넉한 상태였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아무리 돈이 있어도 넉넉히 먹을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곳이 쿠바다.

하바나 외곽을 돌아다니며 겨우 찾은 곳은 '피자 구멍가게'로, 낡은 건물 1층 창문에서 피자를 팔았다. 꽤 긴 줄이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샛노랗게 생긴 피자는 보기에도 별로 맛이 없어 보였는데, 한입 먹으니 생각보다 더 맛이 없었다. 내가 먹은 '햄 피자'는 치즈나 햄 맛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냥 살짝 구운 밀가루를 씹어 먹는 느낌이었다. 그 피자에 간을 맞출 수 있는 것은 굵은 소금뿐이었다.

 
사람의 인생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부분은 국가마다 상대적인 것 같다. 하지만 쿠바의 음식을 먹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일단 쿠바의 음식은 정직하다. 감자처럼 생긴 음식은 감자 맛이 나고, 당근처럼 생긴 음식에서는 당근 맛이 난다. 이것은 모든 음식에 화학성분을 섞고, 죠스처럼 생긴 음식에서 딸기 맛이 나는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놀라운 이야기이다. 쿠바인들은 배급받는 물품이 허락하는 한에서 한정된 음식만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의 음식 대부분이 밀가루, 쌀, 콩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사회주의라는 50년 동안 지속된 체제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쿠바의 음식이 맛없게 느껴진 것은 내 혀가 그만큼 자극적인 음식에 익숙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턴가 나는 맥도날드나 KFC 같은 외식업체의 규격화되고 자극적인 음식에 길들여졌다. 맵거나 짠 음식만 먹던 내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정직한' 유기농 음식에 맛을 못 느낀다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 내가 불쌍한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다. 내가 얼마나 정직하지 못한, 변형된 음식에 찌들어 있느냐 하는 사실은 내가 쿠바에 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며칠이 지난 후부터는 음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행을 하는 마음가짐을 바꿨기 때문이다. 쿠바는 음식은 맛없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씨는 좋다. 이것이 음식은 맛있지만, 사람들 마음씨는 안 좋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훨씬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쿠바 여행의 Tip
#치안: 전반적으로 안전하다. 쿠바는 중남미 국가 중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한다. 군사정부가 장기집권하고 있는 나라답게 곳곳에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가는 관광 명소에 많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가재정의 50%를 책임져 주는 외국인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숙소: 쿠바의 호텔 수가 외국인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카스트로정부는 10년 전부터 일반 국민들의 민박을 허용했다. 1만5천원 정도로 하루를 머물 수 있는데, 4~5배 비싼 호텔보다 훨씬 좋다. 쿠바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체험할 수도 있고, 스페인어를 조금만 구사한다면 순수한 그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다.

#항공편: 우리나라에서 쿠바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캐나다를 경유하는 것과 멕시코를 경유하는 것이다. 캐나다 경유방법은 뱅쿠버와 토론토를 지나가는 것이고, 멕시코는 LA, 멕시코시티를 지나 하바나로 입국하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24시간 이상 걸린다. 비행기 가격은 약 250만원 정도한다. 

#비자: 쿠바는 자국에 입국한 사람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권에 입국도장을 찍지 않는다. 그 대신 비자를 발급하는데, 이것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각 나라의 대사관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공항에서 승무원이 돈을 받고 판다. 가격은 25달러. 단, 체류기간은 한 달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