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도 혀 내두른 대담무쌍 ‘무리수’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6.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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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제기된 의혹 상당수 사실로 밝혀져

 
  ‘깃털만 잡고 허송세월했다.’ 지난 6월19일 감사원이 석 달여에 걸친 외환은행 매각 과정 감사 결과를 발표하자,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내놓은 촌평이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가 겉치레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투기자본 감시센터는 “‘왜?’라는 의문은 풀지 못했지만, 그동안 제기되었던 의혹을 국가기관인 감사원이 대부분 사실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검찰이 ‘왜’를 밝혀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19일 감사원 발표는 대회의실을 회견장으로 활용했음에도 취재기자들이 자리를 잡지 못해 볼멘소리를 낼 만큼 취재진이 몰렸다. 이에 화답하듯 감사원이 내놓은 자료는 단번에 사건 개요를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하고 시시콜콜 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 조작’이니 ‘재산정해본 결과 8% 이상’이니 하는 말은 좀체 입에 담으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그쳐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결국 “이 자료에 의거해 산정하면 8%이상”이며 “사실상 조작”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삼가는 태도와 달리, 이 사안에 대한 감사원의 판단은 무척 선명했다. 발표 내내 “곳곳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 처리 방식이 포착되었다”라는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솔직히 감사 청구를 받고, 시민 단체가 제출한 자료들을 보았을 때 제기된 혐의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사를 할수록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판단이 섰다. 일 처리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다”라고 단언했다. 외환은행 관계자들이야 그렇다 쳐도, 주무 부처이자 감독 당국이었던 재정경제부(금감위)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의 일 처리 방식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그동안 ‘절차 문제가 있었을지라도 극심한 위기 상황에서 내린 불가피한 정책 판단이었다’고 주장해온 재경부와 금감위측의 논리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재경부와 금감위는, 즉각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특히 재경부는 20쪽이 넘는 반박 자료를 제시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한 감사원의 반응은 사뭇 강경하다. 한 관계자는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사를 통해 밝혀낸 것을 반박해야지 이미 거짓으로 판명된 주장을 되풀이해서야 되겠는가. 책임 있는 정부 부처가 보일 모습이 아니다”라며 격앙된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매각 승인 결정을 내리면서 외환은행이 제출한 자료를 그대로 원용해 의혹을 사고 있는 금감위의 해명도 옹색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감사원 발표 이튿날 금감위는 자료를 내고 “시일이 촉박해 자체 검증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촉박할 게 뭐가 있느냐. 매각 협상이라는 것이 최종 합의안이 나오고도 몇 달씩 시일이 걸리기도 하는 것이지, 감독 당국이 그 일정에 맞추어 부랴부랴 처리해야 할 이유는 없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에 문답 자료 넘긴 대상은 총 마흔두 명  

  감사원이 검찰에 넘긴 인물 자료는 무려 마흔두 명에 이른다. 지난해 투기자본 감시센터가 고발한 관계자는 스무 명이다. 감사원은 그 두 배가 넘는 대상자를 소환해 직접 조사하거나, 문서로 답변을 받아냈고, 문답 자료 일체를 검찰에 넘겼다.  

  감시센터측의 피고발인 20명은 금감위 위원 아홉 명과 외환은행 관계자 두 명, 론스타 관계자 네 명, 재경부와 금감위 관계자 네 명 등이었다. 감사원은 여기에 매각 자문사와 당시 외환은행 대주주 등으로 조사 대상을 크게 넓힌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핵심 고리로 파악된 인물은 역시 ‘매각 3인방’으로 불리는 이들이다. 감사원은 공식 자료에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재경부에 허위 보고를 일삼았던 당시 외환은행 이강원 행장의 ‘대담함’과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부 창구였던 재경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의 ‘활약’에 혀를 내두른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금융 장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권이 막강한 자리이고, 변양호 국장은 유력한 장관 후보로 꼽힐 만큼 내부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관료였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의 품평도 이런 정황을 잘 드러낸다. 그는 “감사원 보고서를 자세히 보라. 재경부는 외환은행 경영진과 (매각 자문사인) 모건스탠리를 믿었는데, 실제로는 이들이 사기를 쳤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재경부와 관련해서 감사원이 언급한 것은 변양호 국장 내용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관심은 그가 왜, 혹은 어떻게 일을 밀어붙였는가 하는 것에 쏠릴 수밖에 없다.  감사원은 그에 대해 “납득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동원하고 있다. 정책적 오판이든, 누군가와한 공모한 것이든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오판한 경우라도 적절한 확인 절차를 거쳤다면 면책의 가능성이 있지만, 변국장은 그런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결론이다. 

  좋은 사례가 수출입은행의 콜옵션 처리 문제이다. 당시 외환은행의 대주주는 수출입은행과 코메르츠방크였다. 변국장은 매각 협상 과정에서 콜옵션 건으로 매각문제가 난항을 겪자, 직접 가격 조정에 나섰다. 수출입은행이 정부 소유이니 정부 관계자가 관여하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그 개입의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수출입은행의 관장 부처는 금융국이 아니라 경제정책국이다. 감사원은 이영회 당시 수출입은행장으로부터 “사실상 압력으로 느낄 만한 요구를 재경부 변국장에게 받았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면 사실상 배임이라며 강력히 저항했으나 자신을 배제한 채 가격을 정해 통보하다시피해 조건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장의 숱한 거짓말, 재경부 그대로 믿어    이 과정에서 변국장이 이와 같은 사실을 부총리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감사원 발표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당시 장관이었던 김진표 부총리가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몹시 당황스러워했다”라고 귀띔했다. 

  콜옵션 처리 문제는 시민 단체측에서도 관심을 깊게 갖고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도장 값’의 비밀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 때문이다. 투기자본 감시센터 장화식 집행위원장은 “7월15일 론스타와 외환은행의 매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이른바 ‘10인 회의’에서 언급된 ‘도장 값’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이 넓게 퍼져 있다”라고 말했다. 매각 과정에 관여한 ‘누군가’를 위한 자금원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인 셈이다. 

 
  또 하나의 사례는 외환은행 이강원 행장이 주무 부처인 재경부에 허위 보고를 일삼았는데도 재경부가 상식적인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밝혀낸 이행장의 대표적인 거짓말은, 론스타 이외에 투자자와 인수자를 상당수 접촉했다는 주장이다. 감사 결과 10여 곳 이상과 협의했다는 진술과 달리 접촉한 곳은 세 곳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전화로 문의하거나, 경영권 매각과는 다른 단순 투자 의사를 타진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론스타로 하여금 자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론스타와 합작 협상을 했다던 ABN암로와의 관계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하다못해 합작 의사가 있다는 ABN암로측으로부터 문서나 합의서 한 장만 있어도 납득하겠다. 재경부는 그런 요구를 한 흔적조차 없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외환은행측은 2003년 5~6월에 가서야 론스타와 ABN암로 간의 합작이 깨졌다고 얘기했지만 실상은 원래부터 그런 합의가 없었으며 재경부는 그 간단한 상황조차 점검하지 않아 책임을 면키 어렵다는 것이다.  

  외환은행에서 매각을 진행한 과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조건이라도 은행을 팔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매각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전용준 부장은 BIS 비율을 최대한 비관적으로 산정하는 과정을 지휘했고, 매각 자문사인 엘리어트홀딩스를 끌어들였으며, 이사회에서 결정권자들을 설득하는 데 팔소매를 걷어붙였던 인물이다. 그는 최근 “막상 도장을 찍고 돌아서니 이렇게 은행을 팔아도 되나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은 감사원이 검찰에 조사 자료를 넘긴 마흔두 명 가운데 론스타와 정부 관료 혹은 은행 관계자들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드러내줄 고리가 다수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노출된 인맥은 주로 서울고 인맥이었다. 이강원 외환은행장과 매각 자문사인 모건스탠리의 양호철 대표가 서울고 동문이며, 서울고 동문인 전용준 부장과 또 다른 매각 자문사인 엘리어트홀딩스 박순풍 대표는 입행 동기로 각별한 사이다. 이강원 행장을 중심으로 서울고 동문이 대표로 있는 매각 자문사 두 곳에 매각 자문을 맡긴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인맥은 재경부 변양호 국장과 론스타의 매각 자문사인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SSB)의 김아무개 대표이다. SSB는 시티그룹의 자회사이다. 외환은행 관계자들은 변국장과 김대표의 관계를 전용준-박순풍, 이강원-양호철에 비견될 만하다고 보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외환은행의 정보가 변국장에게 모이고, 론스타의 움직임도 변국장이 소상히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이 관계망을 통해 정보가 오갔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론스타의 매각 자문사 대표였던 김 아무개씨는 “처음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 의사를 밝혔을 때 변국장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2003년 3월 이후에는 태도가 바뀌었다”라고 증언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이 민간인인 이강원 외환은행장과 관련해 꽤 집요한 수사를 벌인 것도 이채롭다. 감사원은 이강원 행장으로부터 “론스타의 스티븐 리로부터 유임 약속을 받았다”라는 진술을 확보한 뒤, 그 약속을 받은 시점을 집요하게 확인했다.  그가 받은 스톡옵션(주식매입 선택권) 수준이 적법한 수위를 넘어선 것이 아닌지도 조사했다. 검찰이 그를 배임 등의 혐의로 사법 처리를 할 수 있는지 판단하도록 사실상 검찰과 손발을 맞추다시피 일을 한 것이다.  

  감사원에서 자료를 넘겨받은 뒤 검찰은 7월 안에 수사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론스타의 불법 로비 여부를 밝혀낼 수 있는가이다. 론스타가 정부 관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가 드러나야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의 진상을 속 시원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조와 투기자본 감시센터 등은 김&장 법률사무소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라며 벌써 일곱 차례나 김&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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