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미디어’의 역습 시작됐다
  • 차형석 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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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스포츠·재즈 전문 ‘틈새 잡지’ 잇달아 등장…창간호 매진되기도
 
대중 문화와 스포츠에 관심은 있으나 지갑이 얇은 독자들은 ‘행복한 고민’을 하게 생겼다. ‘어떤 잡지를 사야 하나’. 6월 들어 대중 문화나 스포츠 전문 잡지가 창간 러시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격주간 텔레비전 드라마 전문지 <드라마틱>, 대중적 재즈 월간지 <재즈피플>, 스포츠 주간지 <스포츠 2.0> 등이 창간 준비호나 창간호를 내놓았다.

이들 잡지는 그동안 매체 시장에서 무주공산이었던 영역을 공략하는 ‘틈새 잡지’이다. 창간 준비호 1·2호를 낸 <드라마틱>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전문적으로 비평하고, 분석한다. 그동안 영화지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곁다리로 다룬 적은 있었지만, 드라마에 다 걸고 이모저모를 해부하는 잡지는 없었다. 최내현 발행인은 “영화는 1천만 명이 보면 대박이라고 하는데, 드라마는 시리즈로 방송되기 때문에 드라마당 연 시청자가 1천만 명을 금세 넘어선다. 우리는 사회적 영향력과 문화적 파급력이 훨씬 큰 드라마를 작품으로서, 비평의 대상으로서 주목한다”라고 말했다.

<드라마틱>의 모태가 된 곳은 인터넷 블로그 사이트 미디어몹이다.  최내현 발행인, 박현정 편집장, 조민준 에디터, 이성주 에디터는 <딴지일보> 등 인터넷 판에서 ‘글빨’로 산전수전을 겪은 사람들이다. 사극 마니아, 일본 드라마 마니아, 미국 드라마 마니아 등으로 소매 걷어 붙이고 드라마를 보던 이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드라마 관련 글을 모아 한 코너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내처 드라마 비평 사이트 드라마몹을 만들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오프라인 잡지 <드라마틱>도 창간하게 된 것이다.

 
뉴미디어에서 활동하던 ‘드라마 논객’들이 ‘올드 미디어’로 불리는 잡지 시장에 뛰어든 것이 흥미롭다. 최내현 발행인은 “네티즌은 모니터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 심층 분석은 인터넷과 맞지 않다. 또 종이 매체는 광고와 판매라는 수익 모델이 있지만 웹 매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광고말고는 이렇다 할 수익 모델이 없다”라고 말했다. 박현정 <드라마틱> 편집장은 이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드라마 팬들은 텔레비전으로뿐만 아니라 다시 보기 서비스 등을 통해 컴퓨터로 본다. 이들이 ‘드라마 폐인’이 되고, 드라마 팬덤을 형성한다. <드라마틱>은 이들 ‘다시 보기’ 세대를 위한 젊은 잡지이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2.0> 또한 뉴 미디어와 오프라인 잡지를 결합한 형태로 출발했다. <스포츠 2.0>을 발행하는 미디어 2.0은 메이저리그 온라인 독점 중계권을 확보하고 유럽 축구를 중계하는 축구 전문 온라인 사이트 ‘풋볼 2.0’을 운영해왔다. 이미 <필름 2.0> 등을 발행하면서 쌓은 잡지 노하우와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 경험을 결합해 <스포츠 2.0>을 창간했다. 지난해부터 창간을 준비했고,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쏠리는 월드컵 시기를 창간 시점으로 맞추었다.

<스포츠 2.0>이 창간하는 데는 스포츠 매체 시장의 변화가 한몫했다. 김정식 <스포츠 2.0> 편집장은 “5공화국에서 프로 스포츠가 활성화하면서 기사 양이 많아졌고, 스포츠 일간지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스포츠 일간지가 경영난으로 위축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온라인 동호회를 형성한 스포츠 마니아들이 심층 분석을 원하는 욕구(Needs)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스포츠 2.0>에 실린 야구 선수 양준혁·박명환 인터뷰나 청룡기 고교 야구 결승전 기사, 월드컵 직전 핌 베어벡 당시 대표팀 코치와 고트비 기술분석관의 좌담 기사는 다른 스포츠 일간지에서는 볼 수 없는 묵직한 기사였다. 김정식 편집장은 “이제는 한국에서도 미국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처럼 힘있는 스포츠 주간지가 충분히 승산이 있다”라고 말했다.

뉴 미디어와 오프라인 잡지의 ‘새로운 결합’

<스포츠 2.0>의 주요 목표 고객은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남성이다.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가격을 1천원으로 했다. 광고에 대한 의존이 높아질 수밖에 없지만, “일단 잡지를 사보고 판단을 하게 하기 위해서다”. 김편집장은 “스포츠 주간지는 아무도 한 적이 없는 실험적 형식이다. 운동 선수들도 사복을 입고 경기장이 아닌 카페에서 사진 촬영을 하자고 하면, 신기해하면서도 그 ‘새로운 경험’을 즐긴다. 이 새로움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중적 재즈 문화지 <재즈 피플>은 재즈와 대중간의 가교를 자임한다. 그동안 일반인들은 재즈를 어렵게만 느끼고, 막상 ‘재즈를 들어볼까’하는 사람도 마땅히 ‘초보자를 위한 가이드’를 찾기 어려웠다.

 
김광현 편집장은 한 재즈 전문지에서 7년 동안 편집장으로 일하다가 <재즈피플>을 창간했다. 발행인도 겸하고 있다. 김광현 편집장의 말대로라면 ‘일당백 정신’으로 잡지를 만든다. 김광현 편집장과 취재기자 한 명이 취재를 맡고, 외부 필진 10여 명으로부터 외고를 받는다. 공연장말고는 기자들이 출동할 ‘현장’이 따로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광고 영업까지도 김편집장이 담당한다.

<재즈피플>이 신봉하는 기사의 원칙은 ‘무조건 쉽게’이다. 대중이 재즈를 어렵게 여기기 때문에 일반 독자가 모를 것 같은 용어에는 일일이 각주를 달도록 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김편집장은 “많은 양을 찍지 않아서 가능했다”라고 하지만 6월 창간호는 매진이 되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는 음악·예술 분야 잡지 판매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김광현 편집장은 “재즈 팬들은 음반을 소유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마찬가지로 재즈 잡지도 소장하려고 한다. 소장하는 재즈 잡지로 승부를 걸겠다”라고 말했다.     

흔히들 뉴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올드 미디어인 잡지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 ‘틈새 잡지’ 편집장들은 이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보가 유통되는 방식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틈새 잡지들은 ‘올드 미디어의 역습’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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