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나이, 대권 장도에 오르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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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당권 고지 선점과 구체적인 정책으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체험, 삶의 현장’ 식 민심 잡기로 대선 행보에 나섰다.

 
그들이 돌아왔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2002년 그들이 시장·지사 직에 오를 때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다. 하지만 우려를 씻고 그들은 대권주자로 업그레이드되어 귀환했다. ‘대권주자 리턴즈.’ 그 주인공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다. 7월1일 이들이 평당원으로 돌아왔다. 대표직에서 물러난 박근혜 의원을 포함해 한나라당 빅3 대권주자 행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여의도 언저리에서 가장 발걸음이 분주한 이는 이명박 전 시장이다. 지난 7월3일 이 전 시장은 서울 견지동 서흥빌딩 11층에 사무실을 냈다. 문을 연 지 이틀째, 서흥빌딩을 찾았다. 1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왼편에 새 간판이 눈에 띄었다. ‘안국포럼.’ 참모들이 회의해서 결정한 이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입구부터 ‘큰 뜻을 이루라’는 축하 말 리본이 달린 난이 즐비했다. 이명박 지지자라며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고, 인사차 들른 서울시 공무원들도 많았다. 한 공무원은 “서울시청을 옮겨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이 그런 공무원들을 직접 맞았다.

안국포럼은 그의  대선 캠프다. 서울시부터 함께했던 측근들이 포진했다. 이춘식 정무 특보, 정태근 전 정무부시장, 박영준 전 정무국장, 강승규 전 홍보기획관, 조해진 전 정무보좌관, 윤상진 전 정무비서관이 대선 전략을 준비한다. 

이명박, 기동전·진지전 병행

이 전 시장측은 대선고지 선점을 위해 당분간 기동전과 진지전을 병행할 작정이다. 7월은 한마디로 기동전 주간이다. 기동전 목표는 당권 고지 선점이다. 이 전 시장은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개혁적이고 야성이 강한 사람이 대표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재오 후보를 지지한다는 직접화법이었다. 친박(親朴)으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이름만 거명 안 했지, 이재오 지지를 공개 선언한 것이다. 신사협정 위반이자 선전포고다”라고 말했다.

이 전 시장측이 예상을 깨고 기동전에 나선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서는 두 가지 안 좋은 기억 때문으로 풀이한다. 하나는 ‘김무성 쿠데타’다. 이명박계로 분류되는 홍준표 의원이 지난해 당 혁신위원회를 이끌며 대선 경선 규칙을 만들었다. 그런데 친박 인사인 김무성 사무총장이 박근혜 대표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방식으로 바꾸려다 이 전 시장측 반발로 다시 원상회복되었다. 이 전 시장의 한 참모는 “설마 했는데 당권을 쥐지 못하면 경선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황제 테니스 파문 때 당이 보인 ‘나 몰라라’ 행태다. 이 전 시장이 집중 포화를 받았지만, 한나라당은 지원사격을 하지 않았다.

물론 이 전 시장은 그림자 행보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측근들의 그림자에 그가 겹쳐 있다. ‘이(李)의 남자’로 통하는 정두언 의원, 박창달 전 의원, 이춘식 특보가 이재오 후보 지원에 나섰다. 전당대회에서 이재오 의원이 당대표가 안 되더라도, 이 전 시장측은 무력시위를 벌였기에 효과는 충분하다고 본다. “이제는 누가 되더라도 쉽게 장난을 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참모는 말했다.

기동전과 함께 이 전 시장측이 구상하는 진지전은 정책 수립을 위한 장기전이다. 이 전  시장측의 캐치 프레이즈는 ‘정책으로 판을 흔들자’이다. 이 전 시장측이 보기에 다음 대선에서 유권자가 바라는 리더십은 경제를 아는 리더십이다. 경제에 관한 한 이명박의 삶이 곧 명품 브랜드라고 자신하는 이 전 시장측은,  청계천 공약처럼 재원 조달 방법과 추진 시간표까지 제시하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내놓을 작정이다. 예컨대 4대 강 운하 건설 프로젝트를 건설 시한과 재원 규모까지 제시해 정책 선거를 주도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런 공약들을 ‘이명박 매니페스토’로 집대성하는 것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거론된다. 지방 선거 때 싹튼 매니페스토를 이 전 시장측은 주목한다. 2002년 국민경선제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통해 노무현 바람이 불었듯이, 2007년 대선 때 매니페스토가 본격화한다면 이 전 시장측에 유리할 것으로 본다. 정책 선거 시스템인 매니페스토는 정책으로 판을 흔들자는 자신들의 캐치프레이즈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책 준비는 치열하게, 정치 현장인 여의도에서는 가급적 멀리.’ 하반기 이 전 시장측의 행보는 이 말로 요약된다. 이 전 시장은 8월부터 해외 정책 투어에 나설 계획이다. 4대 강 운하 프로젝트와 관계 깊은 라인 운하를 보기 위해 독일과 네덜란드 등을 방문할 계획이다.

‘저평가 우량주’로 통하는 손학규 전 지사는 파격 행보를 내디뎠다. 6월30일 손 전 지사는 이임식을 마치자, 곧바로 호남행 기차에 올랐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100일 민심 대장정’에 돌입했다. 일행은 다섯 명, 단출했다. 두 명은 손 전 지사에 앞서 방문할 곳을 사전 답사하고, 나머지 두 명은 연락을 담당한다. 군수나 시장이 찾아오는 것도 거절했다. 기차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호남행 기차를 탈 때도 직접 표를 끊었다.

절박한 손학규, 지지율 올리기 파격 행보

손 전 지사의 일상은 일하고 만나고 듣고 적는 것이다. ‘체험, 삶의 현장’을 실천하는 손 전 지사의 필수품은 수첩이다. 말을 하기보다 주로 듣고 적는다. 그리고 매일 홈페이지(www.hq.or.kr)에 민심 탐방을 정리한다.  그의 참모진에게 전화를 해서 정책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가 받아쓴 수첩을 뒤적이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것이다. 그의 측근인 김성식 전 정무 부지사는 “홈페이지가 모바일 캠프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를 재개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할 작정이다. 손 전 지사가 이렇게 다소 파격 행보를 내딛는 데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좀체 지지율이 뜨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에 앉아 여의도 정치를 해보았자 득이 될 게 없다고 보았다.

차라리 구전 마케팅 기법으로 손학규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 소주 마케팅처럼 유권자들을 만나 직접 부딪치며 입에서 입으로 ‘우량주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복안이다.

경기도지사로서 손학규는 합격점을 받았다. 참모들은 손 전 지사의 대표적 업적인 파주의 LG필립스LCD 단지, 경기 영어마을이 청계천보다 더 삶의 질을 높였다고 본다. 문제는 청계천 관광처럼 당장 눈으로 보고 탄성하는, 바로 체감하는 효과가 약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언제인가 더 알아주는 업적이 되리라는 것이 참모들의 주장이다.

민심 대장정으로 흐름을 바꾼다면 당내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7·11 전당대회를 두고 손 전 지사측은 무심했다. 당내 세력이 워낙 약하기도 하지만 ‘오세훈  효과’에서 손 전 지사측은 교훈을 찾는다. 당내 지지 기반이 약했던 오세훈 후보였지만 결국 당심이 민심을 따랐듯, 중요한 것은 민심이라는 것이다.

손학규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대장정은 이미 부수적인 효과까지 낳았다. 지지자들 결집 효과를 냈다. 김성식 전 부지사는 “후보가 솔선수범하면서 지지자들이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뭉치고 있고, 지사와 인연 있는 전문가들도 돕겠다며 나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캠프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고 한다. 손 전 지사 자신이 ‘디지털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당분간 손 전 지사는 100일 대장정에 들어간다. 지사 시절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데 발 벗고 나선 경기도의 젊은 공무원을 지칭했던 찍새, 이를 국내에서 지원하는 공무원인 딱새처럼 이제는 자신이 전국을 돌며 찍새·딱새가 되어, 100일 대장정을 마칠 계획이다. 100일 대장정을 마친 뒤 손 전 지사는 대선캠프를 본격적으로 꾸릴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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