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무서워?”“무섭게 슬퍼!”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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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아파트> 감독:안병기 주연:고소영·장희진·강성진

 
<아파트>의 아파트는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서 도착하는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그 아파트에는 귀신이 살고, 주민들은 왠지 모르게 쌀쌀맞으며, 매일 밤 사람이 죽어나간다. 아무도 연쇄적인 죽음의 고리를 끊을 수 없으며, 누가 살인자인지 알 수 없다.

<아파트>는 충무로 최고의 호러 아이템이다. <가위> <폰> <분신사바>로 이어지는 공포 영화 전문가 안병기 감독, <구미호>로 데뷔했던 호러 마스크의 고소영, 그리고 인기 만화 <아파트>의 강풀. 그렇다면 관건은 ‘호러 시너지’ 효과인데, 여기서 이 영화에 마냥 점수를 줄 수만은 없을 듯하다. <아파트>는 무섭다기보다는 슬프다.

안병기의 <아파트>는 강풀의 <아파트>를 ‘재분양’하려고 노력한다. 서울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는 꽤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내 중심가로 주소를 변경했고, 원작 만화에 배어 있던 ‘썰렁 유머’를 지우고 그 위에 강렬한 호러 색채를 덧칠했다. 가장 큰 변화는 주인공. 원작에서 20대 후반의 평범한 백수였던 남자 캐릭터는, 영화에선 디스플레이어라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30대 초반의 세련된 여성으로 바뀌었다. 파스텔 톤이었던 원작은 영화로 옮아가면서, 강렬한 보색대비가 두드러지는 냉랭한 색깔을 지니게 된 셈이다.

뒤틀린 인간 관계가 ‘한’보다 더 무섭다?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세진(고소영)은 건너편 아파트에서 이상한 유형을 발견한다. 매일 밤 9시56분만 되면 불이 꺼지고, 그럴 때마다 사람이 죽는다. 세진은 이 두려운 현실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경찰은 그녀의 말을 믿을 리 없다. 한편 세진은 704호에 사는 연(장희진)이라는 소녀와 친해진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연은, 항상 아파트 창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다. 세진은 연쇄 살인으로부터 연을 구하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점점 깊은 공포의 수렁에 빠질 뿐이다(여기서부터 약간의 스포일러 있음).

안병기 감독의 영화, 아니 <여고괴담>(1997) 이후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해 올해로 10년을 맞이하는 한국 호러 장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공통된 주제 의식이라면 ‘한’이다. 어떤 의문의 죽음이 일어나고, 원인을 캐는 작업이 시작되며, 그 근원에는 억울한 일이나 죽음을 당한 사람(대부분 여자)이 있다. 여기까지가 ‘기승전’이라면, ‘결’은 그 원혼을 달래주는 어떤 의식이다. 거의 10년 동안 반복되어온 이 공식은 <아파트>에서도 역시 유효한데, 여기서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한다. 아파트라는 공간으로 상징되는 대도시의 ‘소외감’. <아파트>는 호러 효과를 위해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섬뜩한 비주얼과 소름 끼치는 사운드보다, 인간 사이의 뒤틀려진 관계에서 오는 정서적 붕괴가 더욱 무섭고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아파트>는 그 테마를 직접화법으로 전달한다. 세진이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유민)은 “외롭지… 않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달려오는 전철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세진에게 연이 던진 첫마디도 “외롭지… 않아요?”였다. 세진의 조력자가 되는 여고생 홍(박하선)은 세진에게, 혼자 살면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연이라는 소녀는, 결국 그 아파트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다.

이 영화의 주제 의식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호러와 범죄 스릴러 사이에서 진동하는 이 영화의 방법론은 불안하다. 판타지 장르가 직접화법을 구사했을 때의 불편함 같은 것일까? 영화는 그 틈새를, 감독의 전작들보다 강화된 사운드 효과로 채우려 하지만 조금은 역부족이다. 만약에 원작의 소박함을 그대로 옮겼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 고소영을 만나지 못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아파트>보다는 좀더 개성 있는 공포 영화가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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