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에 매여 슬픈 이승엽
  • 다니구치 겐타로 (일본 스포츠 저널리스트) ()
  • 승인 2006.07.1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성적에도 팬 투표 ‘푸대접’…요미우리 자이언츠 위상 하락과도 관련

 
홈런 1위(26개)· 누타수 1위(1백92)· 득점 1위 (63점)· 타율 2위(3할3푼3리). 7월5일 현재 이승엽 선수의 기록이다. 센트럴리그 최고 강타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웬일인지 이승엽 선수에 대한 일본 야구 팬들의 인기는 높지 않다. 이선수는  올스타 선정 팬 투표에서 1루수 부문 3위를 차지했다. 1위로 뽑힌 시쓰 선수나 2위 구리하라 선수보다 성적이 월등히 좋았지만 팬들의 사랑은 이승엽 선수를 향하지 않았다. 이선수는 감독 추천을 받아 겨우 올스타전에 출전할 수 있었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이 선수가 올스타 팬 투표에서 떨어진 것이 한국인 차별 아니냐고 말한다. 물론 그것도 한 원인이지만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다. 도쿄에 사는 한 야구팬(29)은 “지난해까지 롯데 마린스의 이승엽 팬이었다. 야구장에 가서 열심히 이선수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가 요미우리로 옮기고 나서는 더 이상 이승엽을 응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일본 팬들의 싸늘한 반응에 대한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 프로야구가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힌다. 그것은 복잡하게 서로 얽혀 전모를 해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 중에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추려본다.

첫째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 하락이다. 2004년 일본프로야구협회(NPL)는 재편 움직임에 들어갔다. 이때 불거진 일본 야구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필자는 졸저 <거인 제국 붕괴>에 이렇게 적었다. ‘70년에 걸친 프로야구 역사를 일관해온 거인(자이언츠) 중심주의가 파탄난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거인 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프로야구가 도달한 ‘보는 스포츠’의 정점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프로야구는, 지금 존립 기반 그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위기 국면에 직면하고 있다’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미국의 프로 스포츠나 유럽의 프로축구 등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 프로야구는, 분명하게 ‘보는 스포츠’로서의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관중의 관심을 붙잡지 못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한 시대를 풍미한 국민 구단이었다. 지난 몇십 년간,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의 중계 시청률은 프로야구 인기도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여겨져왔다. 그 수치는 1990년대부터 낮아지기 시작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속히 하락했다. 전성기 때는 연간 평균 시청률이 20%를 넘었던 것이 최근에는 12% 정도까지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 요미우리 팀이 연패를 거듭한 6월 한 달의 평균 시청률은 9.2%(칸토 지구)로 1989년 이후 최악이다. 이러다 보니 공중파 방송국 가운데 요미우리 자이언츠 경기 중계를 하지 않는 곳이 잇달아 나왔다. 도쿄 돔 홈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일본 TV(요미우리 신문 그룹)에서는, 광고료를 25%에서 50%까지 할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올스타 팬 투표에서 뽑힌 센트럴리그 열한 명 가운데 요미우리 자이언츠 선수는 고쿠보 한 명뿐이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인기 하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그 하나는 ‘거인만 강하면 된다’라며 풍부한 자금력을 동원해, 다른 팀의 유력한 선수를 억지로 빼앗아오는 구단에 대한 팬들의 반발이다. 젊은 팬들과 야구 마니아들은 ‘부자 구단의 횡포’라며 요미우리의 무차별 스카우트 행위를 비난해왔다. 반면 거액을 들여 스카우트하지 않더라도 기존의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활용하는 롯데 마린스를 팬들은 사랑한다.

위기에 직면한 일본 프로야구계

이승엽 선수는 롯데 마린스 시절보다 적은 연봉을 받고 자이언츠로 옮겼다. 하지만 팬들은 이선수의 이적을 요미우리 중심주의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 같다. 지난 센트럴·퍼시픽 교류전(인터리그) 때 롯데 마린스 팬들이 이승엽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유를 퍼부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어쨌든, 일본 야구를 견인해온 ‘거인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 인기 몰락 사태가 이선수의 평가나 인기에도 큰 그늘을 지운 것은 틀림없다.

이승엽 선수가 올스타 팬 투표에 떨어진 데는 그가 토종 일본 선수가 아니라는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이것은 한국이라는 특정 국가를 차별한 것이라기보다는 외국인 선수 일반에 대한 차별 감정으로 봐야 한다.

 
전후 프로야구의 규약을 살펴보자. 첫째, 일본 야구를 불후의 국기로 해, 야구의 권위 및 그 기술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한다. 둘째, 일본 프로페셔널 야구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세계 선수권을 쟁취한다. 이같은 배경 아래에는, 미국 메이저리그를 따라잡겠다는 욕망, 즉 국가 중심주의 사고가 있다.

과거에 많은 미국 메이저·마이너 리그 선수들이 일본 구단에서 활동했다. 일본 팬들은 그러한 외국인 선수들을 ‘助っ人(돕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외국인 선수를 ‘돕는 사람’이라는 위치로 설정하다 보니, 그들을 존경하거나 우수한 점을 배우는 식의 겸허함이 부족했다.

7년 동안,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메이저리그 출신의 워렌 크로마티 선수는, 일본 시절 경험을 정리한 자서전 <안녕, 사무라이 야구>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일본 언론은 ‘자이언츠에는 외국인 같은 건 없는 편이 낫다’ ‘미국에 돌려보내 버릴 수 있다’며 나를 비난했다”라고 회상했다. 워렌 크로마티는 자이언츠 역사상 가장 인정받은 외국인 선수였다.

그마저도 “일본인에게는 늘 ‘와레와레(우리)’와 ‘요소모노(타인)’를 구별하는 의식이 있다”라고 쓸 정도다.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한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일본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은 베이스볼(Baseball)이 아니라 ‘야큐’(野球)다'라는 인식이다. 야큐는 일본인 중심주의를 상징하는 말이다.

올해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일본인 중심주의를 더욱 부채질했다. 일본 대표 팀이 우승하자 언론은 ‘일본이 세계 제일’이라는 환상을 퍼뜨렸다. 사실 미국 선발팀이 베스트 멤버를 출장시키지 않았고 4강전 이전에 한국과의 선발전에서 2패를 당한 점에 비추어도 사실 ‘세계 제일’이라고 말할 내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한국 대표팀의 활약이었다. 하지만 일본 야구계는, 세계 제일이라는 환상에 빠져 한국 프로야구 수준을 폄훼했다.

요즘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 아나운서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 참가한 일본 선수더러 ‘세계 제일’의 존칭을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승엽 선수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활약했던 이야기는 거론하지 않는다. 몰락한 거인 브랜드를 대신해 다시 일본 프로야구계를 살릴 대안을 모색하던 일본 야구계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의 우승과 ‘세계 제일’을 새로운 대안 브랜드로 삼아 이용하려 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승엽 선수가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 팬들도 서서히 늘어나겠지만, 이와 같은 근본적 구조 때문에 이선수가 일본 야구 팬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차라리 그의 꿈인 ‘메이저리거 이승엽’이 실현되는 쪽이 더 빠르지 않을까.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