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호 선원들 왜 못 풀려나나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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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5개 ‘정부 참칭 조직’이 분할 통치 정치 세력 없는 지역에 억류돼 협상 난항

 
지난 3월 팔레스타인에서 납치된 용태용 KBS 특파원은 단 하루 만에 풀려났다. 지난 6월 나이지리아에서 대우 노동자들이 납치당했을 때도 40시간 만에 석방되었다. 하지만 4월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나포된 동원호 선원들은 석 달이 넘도록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4일(한국 시각) 인도양 소말리아 인근 공해상에서 조업하던 동원호(3백61t)는 스피드 보트 두 척에 나눠 탄 무장 괴한 여덟 명의 공격을 받았다. 총기를 난사하며 접근한 해적들은 선박에 올라와 조타실을 장악하고 배를 소말리아 쪽으로 돌렸다. 동원호에는 한국인 여덟 명을 포함해 스물다섯 명이 타고 있었다. 납치 소식을 접한 네덜란드 군함이 동원호를 추격했지만 동원호가 소말리아 영해를 넘어서자 더는 추격할 수 없었다.
납치를 주도한 조직은 납치 이유를 ‘한국 어선이 허가를 받지 않고 조업을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동원호 선원들은 소말리아 과도 정부로부터 받은 조업 허가증이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소말리아에는 각 지역마다 정부를 참칭하는 세력이 따로 있고 이들의 세력 구도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이런 소말리아의 복잡한 정치 상황은 동원호 석방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소말리아에서 활동 중인 자칭 ‘정부’ 세력은 아래와 같다.

과도연방정부
소말리아 과도연방정부(TFG)는 국제적으로 가장 공인받고 있는 정치 조직이다. 국제연합(UN)의 주도 아래 2004년 10월 각 부족 대표 간의 회의를 거쳐 과도연방정부가 수립되었다. 소말리아 남서부 바이도아를 새 수도로 삼았다. 에티오피아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은 압둘라히 유수프 아흐메드 장군이 대통령으로 뽑혔다. 과도연방정부는 2004년 12월 알리 모하메드 게디를 총리로 임명했다.
과도연방정부 각료는 ‘4와 1/2’ 원칙에 따라 정해졌다. 소말리아의 주요 4대 부족 출신 관료 수는 똑같이 배분하고 나머지 소수 부족에 그 절반을 할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은 민주적이지도 않고 정치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도 않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6월30일 감비아의 수도 반줄에서 열린 아프리카 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소말리아 과도정부 아흐메드 대통령과 이스마일 외교부장관을 만나 동원호 석방 교섭에 협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아흐메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과도연방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은 소말리아 바이도아와 조하르 두 개 도시 정도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하르는 이슬람 세력 수중에 실질적으로 넘어간 상태다.
자체 내분에 빠진 과도연방정부가 소말리아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대립하는가 하면 국회 대변인인 하산 세이크 아덴은 대통령을 반대하는 조직의 수장을 자처하고 나섰다.
과도정부의 각료 가운데 몇 명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과도연방정부 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또 다른 정부 참칭 조직인 대테러연맹(SRRC)에 가담하고 있다.

 
대테러연맹
대테러연맹은 이른바 ‘소말리아 재건 수복위원회’라고도 하며 영어 약자로 SRRC 또는 ARPCT라고 불린다. 이 조직은 한때 테러와 이슬람에 반대하는 것을 모토로 삼아 미국 정부의 환심을 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적극 지지하고 원조하면서 세력을 키웠고 지난 수년 동안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내전을 벌였다. 특히 올 2월 이슬람 의회의 민병대를 습격해 이슬람 세력과 무력 충돌을 야기했다.
그러나 미국과 대테러연맹의 애초 의도와는 달리, 2월 공격은 알 카에다 세력을 쫓아내기보다는 무고한 수백명의 시민을 죽이는 결과만 낳았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대테러연맹의 공격은 이슬람 신도들과 소말리아 국민들의 반미 감정을 부추겼다. 대테러연맹에 대항하기 위해 하나로 뭉친 이슬람 연합은 6월5일 치열한 전투 끝에 모가디슈를 수복했다.

이슬람 법정연대
범이슬람 세력이 결집한 이슬람법정연대(ICU)는 JIC라고도 불린다. 소말리아의 수도였던 모가디슈를 지난 2월 부터 넉 달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지난 6월5일 장악했다. 그 전날인 6월4일에는 모가디슈 북쪽 발라드도 손에 넣었다. 6월14일에는 조하르까지 진격했다.
이슬람법정연대는 ‘소말리아 이슬람 대법정 회의’로 이름을 바꾸고 6월24일 샤리프 아흐메드의 뒤를 이어 아웨이스를 지도자로 뽑았다. 새 지도자가 ‘통일된 회교도 국가’를 원한다고 주장하자 놀란 미국은 6월26일 그와의 모든 외교 접촉을 단절했다.
미국은 지하드 운동을 주창하는 이슬람법정연대(대법정회의)가 알 카에다와 연계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자칫하면 소말리아가 미국에 반대하는 ‘테러’ 조직의 소굴이 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미국의 상황에서 이슬람법정연대 세력이 확대되는 것은 불편한 소식이겠지만, 현지인 처지에서는 다행스러운 측면도 있다. 지난 15년 동안 이슬람법정연대처럼 확실히 모가디슈를 장악한 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소말리아에 통치력을 갖춘 정부가 들어설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나돈다.
6월22일 이슬람법정연대와 과도연방정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아프리카연합(AU) 등 국제 사회는 양 세력의 합의 아래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소말리아랜드 자치정부
소말리아랜드는 소말리아 북서쪽의 1/3을 차지하는 곳이다. 1991년 5월 이후 실질적으로 독립한 상태로 내전에서 벗어나 있다. 서구 전문가 중에는 소말리아랜드의 독립을 국제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랍연맹이나 아프리카연합은   민족 분리주의의 ‘전염 효과’를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소말리아랜드에는 디르(Dir)라는 부족이 주로 살고 있다. 소말리아랜드는 평화롭지만 경제는 피폐해서 외국 원조에 의지하고 있다.

펀틀랜드 자치정부
펀틀랜드는 소말리아 북부 지역으로 역시 자치정부를 구성해 사실상 독립한 상태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가 이 지역에 투자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사각지대 - 동원호 억류 지역
동원호가 억류되어 있는 곳은 소말리아 중부 항구 도시 오비아와 하라데레 사이에 위치한 어촌이다. 위에 언급한 다섯 개 정치 조직이 장악한 지역과 모두 떨어진 사각지대다.
정치적 진공 상태에 놓인 지역이다 보니 총을 든 자가 지배자가 된다. 이 지역을 장악한 군벌 세력이 소말리아 마린(해군·해병)’이라고 불리는 조직이지만 확실치는 않다. 이 지역 해적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어선들도 나포해 국제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 정부는 영국인 협상 전문가까지 영입했지만 협상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동원호 선원 석방 협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인근 정치 세력이 하루바삐 오비아-하라데레 지역까지 통치력을 넓히기를 희망해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 북쪽의 펀틀랜드 자치정부가 남쪽으로 내려올 가능성은 적다. 펀틀랜드 자치 지역의 경계선은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소말리아 통일’ 시나리오는 이슬람 세력의 북상이다. 이슬람연대가 장악한 지역에서 동원호 억류 지역까지의 거리는 100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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