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명 박 ‘사생결단’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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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표는 7·11 전당대회로 한나라당을 완전히 장악해 대권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지금의 당내 구도로는

 
강재섭 후보가 새 대표로 선출된 다음날,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진영은 의외로 차분해 보였다. 이날 발행된 대다수 신문이 “박근혜-이명박 대리전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완승했다”라는 식의 보도를 했지만, 이 전 시장측은 괘념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한 핵심 측근은 “밖에서는 이명박 대 박근혜가 진검 승부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재오 후보가 5백 표 차이로 졌는데, 이 전 시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면 그보다 훨씬 (차이가 나게 이재오 후보가) 이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박 전 대표의 화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거였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도 이날 비슷한 소감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한 지인과의 점심 자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 정도 (표가) 나온 것이 오히려 의외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전 시장측은 정보전과 언론 플레이에서 박 전 대표측에 밀린 점은 통렬히 반성하고 재점검할 것이라고 자평했다. 박 전 대표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개입할 줄은, 그래서 투표 결과가 강재섭 승리로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전 시장측이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을 포착한 것은 전당대회 전날 밤 11시가 지나서였다. 갑자기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가 직접 대의원들에게 전화를 걸고 있으니 이쪽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전 시장측은 반신반의했다. “솔직히 박 전 대표가 야밤에 전화통을 붙들고 앉아 여기저기 전화 거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라는 것이 한 측근의 전언이다. 전화를 걸더라도 아주 친한 몇 사람에게 하는 거려니 했다. 게다가 이때까지도 이재오 후보가 못해도 2~3% 차이로는 이길 것으로 믿었다. 이 전 시장이 별다른 대책 회의 없이 전당대회장으로 향한 것은 그런 자신감의 발로였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이 전 시장측의 예상과 1백80도 달리 전개되었다. ‘소극적 개입’ 정도로 여겼던 박근혜 전 대표는 이날 작심한 듯 선거 운동에 나섰다. 그녀는 전당대회장 곳곳을 돌며 대의원들과 접촉했다. 2층 객석까지 올라갔다. 자신이 출마한 선거에 나선 정치인에게서도 보기 힘든 적극성이었다.

그보다 더한 활약상은 이재오 후보의 연설 도중에 일어났다. 이명박·손학규 두 대권주자와 달리 대의원들 사이에 앉아 있던 박 전 대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 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잇달아 터지면서 대의원들의 이목이 박 전 대표에게로 쏠렸다. 순간 이후보의 얼굴이 굳어지고 이후보 지지자들 사이에서 “박 전 대표가 연설을 방해하고 있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왔지만 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이재오는 절대 안 돼’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하는 것 같았다”라는 게 한 참석자의 소감이다.

대의원들에 대한 전화 접촉-현장 바람몰이-무언의 메시지 전달 등 박 전 대표의 맹활약에 힘입어 선거 결과는 친박 진영의 대약진으로 나타났다. 이재오 최고위원을 뺀 지도부가 강재섭·강창희·전여옥·정형근 등 모두 친박 인사로 꾸려진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 진영은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정가에서는 이런 당내 구도라면 1년 후 치러질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 전 시장이 상당히 어려운 처지가 되리라고 입을 모은다. 이번에 뽑힌 새 지도부가 내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투표권을 쥘 대의원을 구성하는 데다, 2008년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아예 한나라당 인사권을 틀어쥐었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사실 박 전 대표가 이번 당대표 경선에서 ‘오버’다 싶을 만큼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이런 당 장악력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일찌감치 당을 장악해야 대선 후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한 핵심 측근은 그녀가 대표 경선에 올인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박근혜는 왜 무리수를 두었는가

“현재 흐름대로라면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에서 무조건 이긴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보수 세력의 보상 심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결집세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본선보다 예선, 즉 당내 경선이 더 힘겨운 과정이 될 텐데, 경선에서 박빙의 접전이 벌어질 경우 관건은 당대표가 누구냐이다. 월드컵에서 심판이 언제 호각을 부느냐, 또 오프사이드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게임의 승패가 갈리듯이 당대표가 게임의 원칙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대선 후보 경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요컨대 박 전 대표가 당대표-원내대표 콤비로 그동안 호흡을 맞춰온 이재오 후보에게 야멸차리만큼 등을 돌린 데에는 차기 대권 레이스에서 이 전 시장에게 일말의 여지도 내주지 않겠다는 강한 경계 심리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사실 박 전 대표측이 이처럼 강력한 대권 의지를 내보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나라당 안에서는 7·26 재·보궐 선거의 송파 갑 후보로 정인봉 전 의원에 이어 맹형규 전 의원이 다시 공천을 받은 데에도 ‘박심’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두 사람 다 결정적인 흠을 가지고 있음에도 박 전 대표가 ‘자기 사람 심기’ 차원에서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이다. 공천심사위원회에 참여한 한 의원은 “박 전대표측의 모 인사가 공천심사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박심’을 전했다. 필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6:5로 가결되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일찌감치 이 지역에 공천을 신청한 이회창 전 총재의 특보 출신 이흥주 후보는 번번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 전 총재가 힘깨나 쓴다는 당 고위직 인사들에게 직접 당부를 하고, 또 공천 신청을 하겠다는 주변 인사들을 주저앉히면서까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박근혜 장벽’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한나라당 내 역학 구도에 정통한 한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이회창 변수의 개입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전 총재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그의 측근이 당내에 많아지면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는데, 지지율에서나 당내 입지에서나 우위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처지에서 보면 그런 제3의 변수가 생기는 것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박 전 대표측의 드라이브에 이회창 전 총재측도 격노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인봉 전 의원을 공천할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의 대타로 공천 신청도 안 한 맹형규 전 의원을 내세운 것은 사실상 이 전 총재의 공개적인 거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끝난 후 이 전 총재가 박근혜, 이명박 두 주자를 싸잡아 비난한 것도 그런 앙금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번 7·11 전당대회를 계기로 박근혜 전 대표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문제는 이런 당 지도부 구성이 박근혜 개인이 아닌 한나라당 전체에도 득이 되느냐는 점이다. 여기에는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월등하다.

이회창도 ‘박근혜 장벽’ 못 넘어

당장 한나라당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강-강 콤비로 불리는 강재섭 대표와 강창희 최고위원은 민정당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한 이른바 5공 인사들이다. 그보다 조금 늦게 정치권에 발을 들인 정형근 최고위원은 고문·공작의 주범으로 비판을 받아온 안기부 출신이다. 여기에 자력으로 지도부에 입성한 전여옥 최고위원은 여러 차례 막말 파동에 휘말린 보수계의 ‘신형 엔진’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도로 민정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 이름을 바꾸고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까지 당을 중도 쪽으로 옮기려 한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장파의 대표 주자격인 남경필 의원은 “한나라당 전통 지지자들에게는 이번 지도부 경선 결과가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세력만으로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입증되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걱정스러워했다(  쪽 인터뷰 기사 참조).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이번 전당대회를 겪으며 한나라당 분열의 씨앗이 잉태되었다는 점이다. 당장 2위를 한 이재오 최고위원이 공식 업무를 보이콧한 채 반발하고 있다. “원내대표 할 때 그렇게 잘 모셨는데 한마디로 배신 행위 아니냐”며 박 전 대표를 원망하는가 하면, “이번 전당대회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를 할 수 있는지 깊은 회의에 빠졌다”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이 최고위원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그가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바로 색깔론이다.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어온 사람들이 자기더러 빨갱이라고 공격하는 것을 보며 “이 사람들과 과연 정치를 함께 할 수 있을까”하며, 절망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분열의 씨앗이 급기야 분당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런 당내 구도라면 이명박 전 시장이 박근혜 전 대표를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 일반 국민 지지도에서 이 전 시장이 월등히 높아진다면야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전 시장 지지도가 급격하게 올라갈 변수도, 그렇다고 박 전 대표 지지도가 급속도로 떨어질 변수도 매우 적어 보인다. 그렇다면 패배가 뻔히 보이는데도 이 전 시장측이 가만히 앉아서 당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박근혜·이명박 갈등,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

물론 이 전 시장측은 분당론에 펄쩍 뛴다. 오히려 “정권 교체를 갈망하는 한나라당 당원들이 불공정 변수가 작동하는 것을 용납하겠느냐” “박 전 대표는 당권 장악→줄 세우기→세몰이라는 전형적 절차를 밟아가고 있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한물갔다. 이 전 시장은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선보일 것이다”라며 자기들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당분간 이 전 시장측이 주류 진영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형성하면서 후일을 도모할 것으로 전망했다. 당을 깨든 당 안에서 역전을 하든 무엇보다 당 안팎의 여론을 얻는 것이 관건이니만큼 주류 세력의 허점을 공격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혀가리라는 것이다. 이 전 시장과 가까운 심재철 의원은 “당장은 아니지만 갈등의 불씨가 잠복했다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라고 여지를 남겼다. 

소장파 단일 후보의 탈락으로 위기를 맞은 소장파 역시 다시 한번 당 개혁의 목소리를 높일 작정이다. 소장파 모임 스스로 세 불리기에 연연해했던 오류를 반성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제 역할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이미 고진화·박형준 의원 등이 나서서 “색깔론과 대리전 논란을 벌인 신임 지도부가 사과부터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이명박계와 소장파 간 교감이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이를 경계한 듯 강재섭 대표는 연일 화합을 강조하며 탕평책을 구사하고 있다. 푸른모임 일원인 박재완 의원을 대표 비서실장에 임명한 것이 첫 번째 카드다. 소장파 가운데서도 응집력이 강한 수요모임보다는 다소 느슨한 푸른모임을 1차 포섭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지명직 최고위원을 비롯해 여타 당직에도 최대한 다른 계파 인사들을 중용하리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리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강대표의 호소가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축하와 화합의 무대가 아닌, 갈등과 분열의 무대가 되어버린 이번 7·11 전당대회의 후유증이 한나라당의 정권 창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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