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을 어찌할꼬!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6.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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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시장 상장 ‘발등의 불’…삼성, 순환 출자 구조 깨질까 전전긍긍
 
‘순환 출자 구조를 사수하라.’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재무팀과 법무팀에 떨어진 특명이다. 최근 20년이나 끈 생명보험사 상장 방안이 삼성에 유리하게 나왔건만,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에는 환호보다는 한숨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삼성생명을 상장하자니 순환 출자 구조라는 경영 지배 구조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고 상장을 늦추자니 삼성차 채권단이 난리 칠 것이기 때문이다.

7월13일 생명보험회사 상장자문위원회(자문위)가 발표한 생명보험사 상장 방안을 정부가 받아들여 정부안을 내놓으면, 생명보험사는 내년 상반기부터 증권거래소에 상장할 길이 열린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상장하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이건희 회장 부자가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수단인 순환 출자 구조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그룹으로서는 삼성생명 상장을 늦추거나 상장을 추진하더라도 순환 출자 구조를 유지할 묘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삼성그룹이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순환 출자 구조가 무너져 삼성그룹 지배 구조에 파란이 일어날 수 있다. 삼성그룹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현행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따르면, 한 회사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 가치가 회사 총자산의 절반이 넘으면 지주회사로 분류되고 자회사 가운데 금융·보험 기업이 포함되어 있으면 금융 지주회사로 분류된다. 현행 금융 지주회사법은 금융지주회사는 자신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회사와 손자회사도 제조업체 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9.34%(3백87만 주)·e삼성인터내셔널 25%·카드업체 30%를 보유하고 있다. 올 4월1일 금융감독원이 공시한 삼성에버랜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가치는 1조6천3천8백억원 정도다. e삼성인터내셔널 주식 가치는 36억7천만원, 올앳은 23억원으로 평가되었다.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세 회사 지분의 가치가 삼성에버랜드 총자산(3조4천6백86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8.7%이다. 1.3% 차이로 삼성에버랜드는 금융 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가 회계 처리 기준에 대해 많은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삼성생명의 주식 한 주를 43만5천원으로 임의 평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증권가에서 거론되는 삼성생명 주가는 70만~80만원이다.

“에버랜드 금융 지주회사 지정 피해야 하는데”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을 시가로 계산하여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 삼성생명 주가가 45만원만 되어도 삼성에버랜드는 금융 지주회사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금융 지주회사 자회사인 에버랜드의 자회사인 삼성생명은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7.26%(6월 말 현재)를 팔아야 한다. 삼성그룹으로서는 그룹의 중핵 기업이자 조 우량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지분을 줄인다면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험성이 커진다. 현행 금융 지주회사법에는 금융지주회사나 그 자회사가 보유한 제조업체 지분을 처분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이 없어, 삼성생명은 현행 법을 위반하기는 하지만, 전자 지분을 보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강제 처분 명령의 칼날을 맞을수 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에는 금융 지주회사가 경영 지배를 목적으로 취득한 자회사의 주식 가치가 총자산의 50%를 넘으면, 금융감독원이 벌금과 함께 초과 소유분에 대한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조항을 담고 있다. 또 자회사 주가가 올라 부득이 50%를 넘으면 2년간의 유예기간을 주되 이 기간을 넘어 보유하고 있으면 역시 벌금과 함께 처분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증권전문가들과 삼성측 말을 종합해보면, 금융거주회사 지정이라는 위험을 피해 삼성에버랜드를 안전 지점으로 보낼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자산을 크게 늘리거나 삼성생명 주식 보유량을 대폭 줄이는 것이다. 삼성에버랜드가 자산을 단기간에 늘리려면 자산 규모가 큰 관계 회사를 합병하거나 부채를 확 늘려 자산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합병할 관계사가 마땅치 않아 곤혹스러워한다는 후문이다. 삼성생명 주식이 상장되면 주당 70만~80만원으로 전망된다. 70만원이라면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가치는 2조7천억원이 넘는다. 80만원이면 3조9백억원이나 된다. 삼성에버랜드는 총자산이 5조4천억~6조2천억원은 되어야 금융 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하면, 자산 규모 2조~3조원의 회사를 합병해야 한다. 이 정도 자산을 보유한 삼성그룹 관계 회사는 대부분 상장법인이다. 어떤 관계 회사와 합병을 시도하면, 기존 주주의 반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설령 합병이 결정된다 해도 천문학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한다. 부채를 늘려 자산 규모를 늘리는 방법도 그리 탐탁지 않다. 당장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이자비용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산 키우기 방법이 마땅치 않다면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을 파는 쪽으로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는데, 이 방법 역시 난점이 많다. 우선 삼성생명 지분을 주식 시장에서 공개 매각할 수는 없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성생명 지분을 이건희 회장 부자나 삼성측이 확실히 믿을 만한 우호 세력에 팔아야 한다. 이 경우 양쪽 모두 천문학적인 매수 자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참여연대는 금융감독위원회나 재경부가 ‘예외 조항’ 따위로 삼성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다. 금감위가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전에 취득한 지분에 대해서 적용을 면제한다’는 식의 조항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정부는 삼성 봐주기라는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좋은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변호사는 “그럴 리는 없겠지만 금감위가 삼성그룹을 위해 법률 적용 면제 조항을 마련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삼성그룹으로서는 묘안이 마련되기 전까지 전략적으로 삼성생명 상장을 늦출 수는 있다. 문제는 이 방안도 만만치 않는 저항을 만날 수 있다. 삼성자동차 채권단은 채권 보전 수단으로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을 현금화하지 못하자 지난해 말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을 상대로 채권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기 위한 조세소송을 냈다. 삼성자동차 채무라는 골칫거리를 풀려면 삼성생명을 상장해야 하는데 그러자니 지배 구조가 걸리고 진퇴양난의 처지에 내몰려 있다.

그동안 삼성그룹 전략기획실(구조조정본부 후신)은 이재용 상무로의 지분 상속을 비롯해 까다롭기 그지없는 현안마다 기가 막힌 해결 방안을 마련해왔다. 삼성생명 상장 안을 두고 전략기획실이 절묘한 해법을 내놓을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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