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덮은 ‘괴물’들 들추다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7.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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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괴물> 감독:봉준호 주연:송강호·변희봉·박해일·배두나

 
박찬욱의 영화가 유괴와 납치에서 시작한다면, 김지운이 일상의 균열에서 모티브를 찾는다면, 류승완이 일단 대결 구도를 만들어 놓고 판을 벌인다면, 봉준호의 영화는 얼토당토 않는 사건에서 시작하는 스릴러다.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강아지가 없어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리얼리티를 담보하기는 하지만, 만약에 픽션이었다면 <살인의 추억>은 매우 황당한 연쇄 살인극이다(용의자만 여럿 있고 결코 범인은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괴물>에서는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단다. 그것도 대낮에.

<괴물>은 <살인의 추억>과 닮았다. 두 편의 영화는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데, 모두 남한이라는 매우 특수한 땅 덩어리의 비극과 재난을 그린다. <살인의 추억>은 1980년대에 우리 사회를 떨게 했던 어느 미제 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그 시대의 심상치 않았던 공기를 21세기 관객들에게 그대로 가져온다. 이 영화는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에 존재하는 구멍을 이야기한다. 범인을 잡아야 할 경찰력은 데모 진압에 동원되고, 그 시간에 누군지 알 수 없는 살인범은 이 땅 어딘가를 어슬렁거리며 다음 범행을 계획한다. 그렇다면 <괴물>은 해방 후 불쑥불쑥 터졌던 수많은 재난(천재보다는 인재에 가까운)에 대한 메타포(은유)다. 괴물이 등장하는 공상과학 판타지쯤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살인의 추억> 못지 않은 리얼리티를 지닌다. 그 증거는? 우리에기는 이 영화의 수많은 장면과 설정이 매우 낯익다. 어떨 때는 영화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 덮은 ‘괴물’들 들추다

2000년, 미군 부대에서 수백 병의 포르말린이 한강에 무단 방류된다. 2002년, 한강의 낚시꾼이 사람을 무는 기형 물고기를 우연히 발견한다. 그리고 2006년, 한강 둔치에 집채만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일간 신문 사회면의 머릿기사 제목 같지만, 봉준호 감독은 여기에 한강변에서 매점을 하고 있는 박씨 일가를 투입하면서 장엄한 가족 드라마를 준비한다. 중학교 다니는 딸 현서(고아성)가 괴물에게 납치당하면서 박씨 일가는 (마치 ‘반지 원정대’처럼) 팀을 꾸린다. 어리바리한 아버지 강두(송강호)와 강두의 아버지 희봉(변희봉), 사회 부적응자인 남일(박해일)과 양궁 선수인 남주(배두나)는 딸이자 손녀이자 조카인 현서를 찾아 발버둥친다. 하지만 진짜 괴물은 ‘공권력’이었다. 그들 가족은 미확인 괴생명체에 접촉된, 어쩌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위험 인물로 분류되어 감금된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 그들은 악전고투와 사분오열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한강 다리 밑에서 괴물과 맞닥뜨린다. 한국 정부도, 미국 군대도 해치우지 못한 그 괴물을, 과연 화염병과 몇 개의 화살로 거꾸러뜨릴 수 있을까?

 
봉준호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이 <괴물>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고 꼼꼼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상업 영화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의 이미지들은 우리의 역사 혹은 현실과 너무나 견고한 고리로 엮여 있기에 가끔은 악몽처럼 느껴진다. 특히 괴물이 생긴 원인이 미군이 방류한 포르말린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분명 남한 내부에 있지만 치외법권에 살고 있는 그들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내부의 외부성’이다. 괴물은 미군이라는 돌연변이 같은 시스템에 의해 탄생되었고, 6년 동안 암세포처럼 무한 증식한 결과 결국 ‘내부를 파괴하는 외부성’이 되어 무고한 시민들을 해친다.

또한 괴물에게 납치된 현서의 모습에는 삼풍 참사의 흔적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다리들에는 성수대교 붕괴의 역사가, 합동분향소 장면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대량학살 사건들의 비극이, 영화적 이미지로 치환되어 고스란히 살아 있다. 그리고 이 이미지들은 결국, 남한이라는 시스템이 지닌 구멍이 확대 재생산되었을 때 나타나는 ‘괴물’ 같은 현실들이다.

이래도 <괴물>이라는 영화를 단지 판타지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나름의 해피엔딩이기는 하지만, <괴물>만큼 섬뜩하게 우리를 뒤돌아보게 했던 영화는, 정말 만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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