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탐문 끝에 ‘거장’을 모셔오다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200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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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이지호 대전시립미술관장

 
이지호(47) 대전시립미술관장은 요즘 ‘루오’라는 이름의 애인에 푹 빠져 있다. 그를 생각하고 그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다. 대전시립미술관이 <루오-영혼의 자유를 지킨 화가>전(5월4일~8월27일)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1871~1958)는 피카소, 마티스와 함께 20세기 전반을 장식한 현대 미술계의 거장.
 
이관장에 따르면, 그동안 국내에 작품 일부가 소개된 적은 있지만, 1958년 루오가 세상을 뜨기까지의 작품이 총망라된 것은 처음이라 평단의 반향이 컸다. 이번 전시회에는 루오의 대표작 2백40점이 선보였는데, 특히 베로니카 같은 회화 작품 외에도 루오의 필생의 역작으로 일컬어지는 ‘미제레레’ ‘악의 꽃’ ‘그리스도의 수난’ 같은 판화 연작들이 동판화 원판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관장이 루오와 인연을 맺게 된 지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방형 공모제를 거쳐 막 대전시립미술관장에 임용된 때였다. 한 천주교 신부님을 통해 프랑스 루오 재단의 루오 손자에게 연이 닿았고, 그로부터 10여 차례 조율 과정을 거쳐 루오는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프랑스 유학을 했던 이관장이지만, 전시 기획 논의 과정에서 그는 새삼 감탄했다고 털어놓았다. “루오 재단의 루오 손자 손녀들은 한국인들이 할아버지의 작품 세계를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대여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루오의 작품 세계와 깊이에 압도되어 화가의 길을 걷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여겼다는 이관장이 평하는 루오는 이런 화가다. “루오는 영혼의 자유를 갈구했던 화가였다. 그의 작품에는 늘 얼굴이 나오는데, 얼굴은 인간의 정신성을 상징한다. 광대나 창녀 같은 비천한 삶을 그리스도의 존엄한 삶과 동일시하며 모든 계급의 자유로운 영혼을 드러내려 했다. 그는 판사 같은 기득권층의 냉혹함과 위선에 통렬한 비판의 붓을 가하기도 했다.”

미술관장인 그에게 미술관은 어떤 곳일까. 어떻게 비쳐지기를 희망하고 있을까. “미술관은 고상한 곳이 아니다. 흔히 대중화를 대안이라고 얘기하지만, 고급한 작품을 많은 이가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대중화라고 생각한다.” 이관장이 6월29일부터 7월25일까지 시각 장애·청각 장애 학생들을 위해 소리 연극과 몸짓 표현 놀이, 입체 모형 제작 같은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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