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와 그의 친구들 언론과 전쟁 벌이다
  • 워싱턴 · 정문호 통신원 ()
  • 승인 2006.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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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 ‘정부, 미국인 국제 금융거래 극비 추적’ 보도 부통령·장관·의원 등 나서 ‘뉴욕 타임스 때리기’ 총공세

 

미국의 대표적 유력지 <뉴욕 타임스>의 6월23일자 1면에는 부시 행정부의 속을 뒤집어놓은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미국 정부, 테러 저지 목적으로 은행자료 비밀리에 추출’이라는 제목을 단 장문의 추적 기사에서 뉴욕 타임스는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직후 알 카에다 테러 조직과 연계된 개인 계좌를 찾아내기 위해 비밀리에 수십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의 해외 입출금 내역을 정밀 추적해왔으며 현재도 이같은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부시 행정부측은 뉴욕 타임스의 빌 켈러 주필을 포함해 편집국 고위 간부들과 몇 차례 회의를 통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보도 자제를 요청해놓은 터라 더욱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사가 뉴욕 타임스에 대서 특필된 당일 월스트리트 저널·로스앤젤레스 타임스·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유력지에도 비슷한 기사가 일제히 실렸다. 그러나 기사의 심층성이나 광범위한 취재력 측면에서 두 명의 기자가 작성한 문제의 뉴욕 타임스 기사는 단연 경쟁지들의 기사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법무부장관 “기밀 누설한 기자 형사 처벌 가능”

 뉴욕 타임스 기사가 실린 직후 부시 행정부 최고 수뇌부는 물론 영향력 있는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 심지어 보수 논객과 매체들까지 총동원돼 ‘뉴욕 타임스 때리기’에 나섰다. 관련 기사가 서너 개 유력 매체에 동시에 실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유독 뉴욕 타임스를 정조준해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부시 대통령은 관련 보도를 “수치스런 행위”라고 깎아내렸고, 체니 부통령은 뉴욕 타임스를 가리켜 “국가 기밀을 까발리는 것이 자기들의 임무인 양 생각하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또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의 피터 킹 의원은 “정부의 대테러전을 약화시킨 뉴욕 타임스를 형사 처벌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같은 당의 J.D. 헤이워드 의원은 뉴욕 타임스의 의회 출입증을 몰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객들도 가세했다. 유명한 여류 보수 논객인 앤 쿨터는 “오클라호마 시청사 폭파 주범인 티모시 맥베이는 뉴욕 타임스 본사를 폭파했어야 했으며, 켈러 주필은 사격조에 의해 처단됐어야 한다”라는 극언을 퍼붓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 지경이 되다보니 <워싱턴 포스트>의 저명한 미디어 전문기자인 하워드 커츠는 “기자 생활하면서 이처럼 혹독한 뉴욕 타임스 때리기 공세는 처음”이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대다수 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 이후 이라크 정책을 포함해 각종 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비판해온 뉴욕 타임스에 대해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와 관련한 가장 확실한 신호는 알베르토 곤잘레스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뉴욕 타임스 기사가 나온 직후 3대 텔레비전 네트워크중 하나인 ABC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법전을 꼼꼼히 읽어보면 기밀 정보를 누출한 기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다.” “현재 법무부가 이번 특정 사안과 관련해 적절한 대응 행동이 무엇인지 연구 중이다”라고 밝혀, 최악의 경우 뉴욕 타임스에 법적으로 대응할 뜻을 강력히 시사했다. 곤잘레스가 비록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만약 법적 대응을 결정할 경우 그 근거는 1917년 제정된 ‘간첩법’이다. 그러나 대다수 법률 학자들은 이 법은 간첩 행위를 획책한 개인이나 단체를 겨냥한 것이지 보도를 목적으로 한 언론 단체나 기자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근거로 뉴욕 타임스에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수정헌법 1조에도 위반된다는 것이 이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로버트 카이저 부주필은 “곤잘레스 법무장관의 발언은 언론에 대한 겁주기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은 바로 부시 행정부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에도 해외 도청을 전문으로 하는 국가안보국(NSA)이 테러 용의자 색출을 이유로 미국 시민들에 대해 광범위한 비밀 도청을 실시해왔다는 내용을 처음으로 폭로해 부시 행정부의 노여움을 산 바 있다. 사실 테러와의 전쟁에 국정 수행의 ‘명운’을 걸다시피 한 부시 행정부로서는 이처럼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워 국가 기밀을 파헤쳐내는 뉴욕 타임스측의 처사에 배신감 내지는 적대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어찌보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범공화계는 미국 최고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가진 뉴욕 타임스가 초지일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논조를 펴온 데 대해 상당한 반감을 넘어서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까지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무장관까지 나서 법적 대응을 시사했는가 하면 6월 하순에는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이 뉴욕 타임스를 맹비난하는 결의안까지 통과시킨 것은 분명 도를 넘은, 지나친 처사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뉴욕 타임스 때려 중간선거 승리 노린다”

사실 문제의 뉴욕 타임스 기사를 꼼꼼히 읽어보면 부시 행정부의 주장대로 기사 때문에 대테러전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논거는 빈약하다. 뉴욕 타임스 켈러 주필은 6월25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독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두 개의 축 사이에서 고뇌 끝에 후자 쪽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켈러 주필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측은 기사 게재를 막기 위해 적극 움직였다. 대표해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부차관보는 테러범을 색출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국제 금융거래를 추적하는 것이 작업은 효과적일 뿐 아니라 합법적이며, 이런 내용을 노출할 경우 추적 작업이 중대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행정부측은 구체적인 증거로 2002년 인도네시아 휴양지인 발리 섬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탄 테러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알카에다 요원 리두안 이사무딘과 일명 함발리를 체포한 사실을 꼽았다. 국제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한 결과 알 카에다 요원으로 추측되던 한 인사와 금융거래를 유지하던 사람을 동남아 모처에서 찾아냈는데, 바로 그가 2003년 태국에서 검거한 함발리였다는 것이다.

 

 이같은 행정부측의 브리핑을 들은 뉴욕 타임스측은 수 주일에 걸쳐 전·현직 행정부 관리들은 물론 사계의 전문가와 금융기관 중역들의 견해를 두루 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부시 행정부의 국제 금융거래 추적은 법적 하자가 있으며, 설령 기사를 내보내도 부시 행정부의 우려대로 국제 금융기관들이 기존의 거래추적에 대한 공조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 또 기사 내용이 알려지면 테러리스트들이 금융 전략을 바꿀 것이라는 행정부의 주장도 별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이미 미국 재무부는 9·11 테러 이후 테러리스트들이 국제 금융거래에 발붙이지 못하게끔 만전을 기하겠다고 선포했었고, 그에 따른 조처를 착착 취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켈러 주필은 “제아무리 조심스레 취급한다고 해도 부시 행정부가 막대한 국제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고 있다는 특수한 현실은 공익에 관한 문제라고 간주해 기사 게재를 결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켈러 주필은 애초 뉴욕 타임스 파문이 확대되는 동안에도 언론에 나서기를 꺼려했지만, 요즘 태도를 바꿔 적극 공세로 나서고 있다. 범공화계의 타임스 때리기가 갈수록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CNN은 물론 비교적 진보적 성향의 CBS 방송, 공신력을 자랑하는 공영방송인 PBS, NPR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기사 게재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특히 그는 PBS의 유명한 인터뷰 진행자인 찰리 로스와의 회견에서는 “잘 알다시피 ‘뉴욕 타임스 때리기’는 공화당 지지 세력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주감”이라고 비판했다. 즉 올 가을 연방하원 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갈아치우는 선거를 앞두고 범공화계가 ‘뉴욕 타임스 때리기’를 일종의 보수 세력 결집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뉴욕 타임스 사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국가 안보와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9·11 테러 이후 무소불위의 힘을 키워온 부시 행정부의 처신은 문제가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조나선 털리 교수(법학)는 “부시 행정부가 뉴욕 타임스 등 언론의 폭로 기사에 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시스템이 위험스러울 정도로 무너졌음을 반증한다”라며 개탄했다. 특히 이번 뉴욕 타임스의 기사와 관련해 형사소추의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은 “모든 언론 종사자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것”이라며 언론 자유의 위축을 걱정했다.

니컬러스 레만 콜럼비아 언론대학원장을 비롯해 여섯 명의 미국 내 저명한 언론 대학원 원장들도 7월9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역사적으로 역대 정부는 종종 정치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당혹스런 내용을 언론이 보도하려고 하면 으레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우려를 표시해왔다”라면서 작금의 부시 행정부의 ‘뉴욕 타임스 때리기’ 공세에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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