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낭패’가 공 존하는 지구의 반쪽
  • 김세윤 (필름 2.0 객원기자) (cha@sisapress.com)
  • 승인 2006.07.28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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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11개국 여행기/자연과 고대 문명, 거룩하 고 황홀해…현지인들의 ‘아픈 속살’에 미안함 들기도

 
해외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밖에 가본 적 없는 주제에 감히 세계일주를 꿈꾸었다. 언제 가느냐, 과연 갈 수는 있는 거냐, 생각할 수록 참 허황된 꿈만 같아서 가방 한 번 싸보지 못한 채 지레 포기하고 눌러 앉은 게 십 수년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어쩌면 내 여행계획도 죽을 때까지 꿈으로만 남아있었을지 모른다. '죽기 전에 언젠가' 가보고 싶다던 세계여행이 '1년 안에 언젠가'로 별안간 구체화되기까지 그 구구절절 사연을 여기서 다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다. 그래도 입이 근질거려 살짝 귀뜸하자면 삼십 대 직장인의 권태와 서점에 즐비한 각종 여행기의 '펌프질',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심 부러워하고 닮고 싶은 삶을 살던 한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후 쓰나미처럼 밀려든 삶의 허무가 손 맞잡고 일으킨 심리적 쿠데타의 결과라고 해두자.

누구나 인생의 하프 타임을 꿈꾸게 마련이다. 어차피 환갑 이후는 연장전이고 서른까지가 전반전이라면 '또 하루 멀어져 가는' 서른 즈음에 나도 잠시 쉬어갈 순 없을까, 괜한 피로감에 비틀대는 건 자연스럽다 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도 아니면서 쉬지도 않고 후반전을 향해 냅다 달려나가야 하는 내 처지가 문득 처량해보였다. 참 폼나게 사는 인간들의 유유자적 라이프 스타일을 주제넘게 기웃거리게 된 것은 그때부터다. 방귀가 잦으면 뭐가 나온다더니, 막연한 동경과 철없는 공상에 빠져 살던 나는 급기야 그 오랜 동경이며 많은 공상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하고 만 것이다. '그래, 간다면 지금이다. 애 낳으면 최소 십 수년을 더 잊고 살아야 할 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기력이 더 쇠하기 전에, 간다면 지금이다!' 내 나이 서른 셋. 난생처음 내 인생의 원심력이 구심력을 이겨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려던 건 아니었다. 아니, 처음부터 라틴 아메리카만 여행하려던 건 아니었다. 말했다시피 내 꿈은 세계 일주였고 떠나기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그 꿈은 유효했다. 그러나 허락된 돈과 시간이 그렇게 방대한 루트를 용납하지 않았다. 유라시아 대륙횡단이냐 라틴 아메리카 종단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결단을 내린 건 마누라다.
"남미로 가자."
"왜?"
"특이하잖아."
그랬다. 그건 마치 속초 물곰탕이나 포항 과메기를 굳이 찾아가 맛보는 심보와 같다고 할만 했다. 갔다와서 남들한테 자랑하기 좋겠다는 얄팍한 기대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지 가서 오지게 고생하는 여행이 결단코 내 취향이 아니건만 우리는 순전히 남들 안 가본 특이한 여행지에 다녀온다는 설렘으로 라틴 아메리카 땅을 밟았다.

멕시코부터 브라질까지, 1백80일 동안 중남미 11개국을 바삐 돌았다. 아는 사람들에게 근황이나 알려야겠다는 순박한 의도로 블로그 열었다가 누구 염장지르냐는 핀잔 받기 바쁠만큼 그곳 경치는 과연 거룩하였다. 볼리비아 우유니(uyuni) 소금 사막이 보여준 거대한 자연의 데깔꼬마니는 제 아무리 묘사의 달인이 납신다 한들 외마디 감탄사밖에 내지르지 못할 초현실적 풍경이었다. 해발 3,300미터에 자리잡은 에콰도르 퀼로토아(quilotoa) 분화구를 따라 걷는 하이킹은 설사 알츠하이머병에 걸린다 해도 잊혀지지 않을 황홀한 기억으로 남았다. 티티카카(Titicaca) 호수와 이과수(Iguazu) 폭포, 페루 마추픽추(Machupichu)와 쿠바 아바나 말레꼰(Malecon) 해안도로는 과연 제 명성에 걸맞는 카리스마로 우리의 눈동자를 뒤흔들었다. 감히 성경 말씀을 인용하자면 라틴 아메리카는 그야말로 '보시기에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가시기에 좋은 땅은 결코 아니었다. 적잖은 고통도 감수해야만 했다. 스물 여섯 시간 논스톱 버스 여행은 그 중 가장 우아한 고통에 속할 정도다. 멕시코 뚤룸(Tulum)에서는 거짓말 조금 보태 참새만한 모기와 씨름하느라 밤잠 설치기 일쑤였고, 페루에서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걸인과 잡상인들을 뿌리치며 이들이 혹시 좀비는 아닐까 잠깐 진지하게 의심했으며, 칠레 국립공원 또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4박 5일 트래킹 와중에는 사람이 정말 이렇게 얼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 진작 부모님 앞으로 손톱이라도 깎아 보내지 않은 걸 잠시 후회할 뻔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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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가봐?' '팔자 좋네?' 수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질시를 한 몸에 받으며 형언할 수 없는 절경과 가늠할 수 없는 역사의 한 복판을 종단하고 돌아온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콜롬비아 정말 좋지요. 아르헨티나도 이쁘고. 브라질도 훌륭한데 사실 뭐 다 괜찮았어요. 위험 하진 않아요? 위험하죠. 위험한데 또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아요. 이쯤되면 내 모국어 실력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글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던 6개월의 떠돌이 생활을 묘사하는 보케불러리가 이렇게 빈약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들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애태우지 마라.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라.'(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공자님 말씀을 들먹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는 사람은 그동안 이 지구의 반쪽에게 너무 무지했던 자신을 살짝 부끄러워 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신비의 고대 문명,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배, 좌익 공산주의의 절정과 파국, 저개발의 제3세계쯤으로 요약, 암기해온 그들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라틴 국가 곳곳에 아직 치유하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치유하지 못할 지난 역사의 생채기가 보기 흉하게 남아있다. 흔히 말하는 저개발의 기억이며 믿기 힘든 절대빈곤의 참상이다.

사상 처음 원주민(서양인들이 인디오라고 부르는) 출신 대통령이 당선되는 역사적인 날 운 좋게 볼리비아에 머물렀는데, 그날 밤 나는 개표 방송을 지켜보다 감격해 눈물을 쏟아내고 마는 숙소 주인을 목격했다. 그 역시 원주민이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 근사한 경치에 감탄하며 히죽거린 나는 그 눈물로 씻겨나갈 그들의 회한을 짐작조차 할 수 없어 잠시 머쓱해졌다. 그렇게 남미는 낭만과 낭패가 공존하는 대륙이었다. 수시로 시야를 덮쳐오는 빈부격차의 물증을 애써 모른척 하지 않는 한, 마냥 낭만을 만끽하기엔 조금 미안한 여행지다.

그러나 남미는 스케일에 감탄하러 갔다가 디테일에 감동하고 오는 대륙이기도 하다. 도저히 웃음이 나올 수 없는 처지이면서도 끝내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의 가공할 낙천성에 감동받은 기억은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다. 미술, 음악, 춤, 문학, 그외 그들이 선보이는 현재진행형 라틴 문명은 숨이 막히도록 섬세한 디테일로 자주 이방인을 감동시킨다. 바로 그것이 이렇다 할 자연 경관 하나 보여주지 않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아바나를 갈수록 더 그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 여행 후 남는 게 왠지 모를 시기심이라면 남미 여행 후에 남는 건 더욱 왕성해진 호기심일 것이다. 체 게바라 말고도 나는 이 대륙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를 다녀온 사람들이 다들 이 대륙의 팬이 되는 모양이다. 좋은 축구 경기를 보았다고 해서 모두 그 팀의 팬이 되는 건 아니다. 좋은 경치를 보여주었다고 해서, 이국의 낭만을 물씬 풍겼다 해서 모두 그 나라의 팬이 되는 건 아니다. 사랑스러워야 한다. 덕분에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팬이 된다. 나는 기꺼이 라틴 아메리카의 팬이 되었고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 덕에 행복했으므로 이제는 그들이 행복해지길 바란다. 내 주제에 이런 기특한 깨달음을 얻다니. 오지 가서 오지게 고생하는 여행도 이만하면 할 만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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