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중소형 잠 룡’이 꿈틀댄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7.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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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주 천정배·성장주 유시민·테마주 강금실, 3인3색 대권 전략 구사…정세균·김혁규·진대제도 합류 가능

 
한가롭던 여권의 ‘대권 주식’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난 7월26일자로 천정배 장관이 복귀하면서다. 정동영 전 의장이 독일로 떠나면서 여권의 대권 주식 시장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김근태 독주 체제가 당분간 지속되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장관의 복귀로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금실·유시민·정세균 등 ‘잠룡’들의 행보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은 김근태 의장, 정동영 전 의장을 대형주로 비유하면 중소형주다. 지지율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고, 당내 지지 기반도 약하다. 하지만 두 대형주가 좀체 바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관심은 중소형주의 반등 가능성에 모아지고 있다. 한 당직자는 “중소형주가 치고 올라가면, 대형주도 쌍끌이로 올라갈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다.

아이러니컬하게도 7·26 재·보선 어닝시즌(실적 발표)도 중소형주에는 나쁘지 않았다. 예상대로 실적은 전패로 끝났다. 대형주가 또 한 번 기우뚱했다. 하지만 중소형주에는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당심을 업고,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

여권의 중소형주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대상은 ‘가치주 천정배’ 의원이다. 천의원을 가치주에 빗대는 것은 그가 가진 정치적 자산에 비해 저평가되어서이다. 유권자들이 그의 강점을 알게 되면 탄력을 받아 지지율이 급반등하리라는 게 측근들의 주장이다.

정확히 1년 전 입각 때와 비교해보면, 그는 대권주 시장에서 수직 상승했다. 2004년 그는 원내대표로 4대 개혁 입법을 진두지휘했다. 12월31일 자정까지 한나라당과 지리멸렬한 대결을 지속하다가 해를 넘겼다. 2005년 1월1일 그는 실패한 개혁주의자의 길을 걸어야 했다.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온통 상처뿐이었다. 당내 좌우 양쪽에서 협공을 받았다. 아무도 그를 더 이상 잠룡이니, 차기 대권주자로 보지 않았다. ‘고독한 천재’의 몰락으로 속단했다. 그 후 그는 정치적으로 묵언 수행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그를 배려했다. 법무부장관에 앉혀 기회를 주었다. 배려는 장관직에서 물러날 때도 계속되었다. 사실 천장관은 7월 초 경제·교육부총리 개각 때 동반사퇴하려고 했다. 그런 그를 노대통령이 만류했다는 후문이다. 문책 인사나 경질 인사로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천장관을 배려한 1인 개각이 뒤늦게 이루어진 것이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없다면 불가능한 인사다. 이런 배려로 천의원 복귀는 ‘대권주자 리턴즈’로 신문 정치면을 장식했다.

 
천의원 복귀와 함께 가치주로 반등하려는 ‘작전 세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관 직에서 물러나면서, 참모진들은 천의원의 대권 캠프나 마찬가지인 동북아전략연구원으로 헤쳐 모였다. 이 연구원에 참여하고 있는 한 측근은 “천정배 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참모진의 고민은 천정배 브랜드가 개혁인데, 문제는 개혁이 시장에서 먹힐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권자인 개미 군단을 끌어들이기에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개혁을 외면할 수도 없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측근들은 지역 기반인 호남(목포 출신)과 개혁 세력을 묶어내고, 플러스 알파로 중도 세력의 지지까지 이끌어내면 천정배 필승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일각에서 천정배 불가론으로 삼는 ‘호남 후보 한계론’은 오히려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된다고 본다. 2002년 광주가 개혁 후보인 영남 후보를 택했듯이, 이번에는 대구가 개혁적인 호남 후보를 택한다면, 노풍(盧風)에 버금가는 천풍(千風)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천의원이 부쩍 대구를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천정배 의원측은 차별화 포인트를 ‘유능한 개혁’으로 삼으려 한다. 개혁주의자는 무능하기 쉽고, 유능하면 실용주의자이기 쉬운데, 천의원은 유능하면서 개혁적이고, 거기다 현실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4대 개혁 입법 책임론이 제기되면, 오히려 그의 이런 진면목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참모들은 보고 있다.

나머지 잠룡들도 도약을 준비하는 단계다. 가치주인 천의원과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유시민 장관은 성장주라 할 만하다. 지금 당장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장관의 강점은 당을 떠나있지만, 굳건히 버티고 있는 그의 지지 세력(참정연)이다. ‘노빠보다 더한 유빠’라는 말처럼, 안티 세력만큼이나 강고하고 탄탄한 지지 세력이 그의 자산이다. 그래서 한 당직자는 “유시민은 전투력이 강한 실물 자산이 풍부하다”라고 평가했다.

보건복지부장관을 하면서 이미지 변신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각하는 순간까지 ‘하루라도 가시 돋친 말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사람이 유시민이다’는 조롱이 당 안에서 심했다. 입각한 뒤 헤어스타일을 ‘8대2 가르마’로 바꾸고, 화법이나 몸가짐까지 바꾸었다. ‘겸손 모드’로 이미지를 바꾸자, 가시 돋친 말도 이제는 때와 장소를 가려 할 말을 한다는 호의적인 평가로 바뀌었다. 예컨대 “협상해보기도 전에 미국 쪽이 협상 테이블을 엎어버렸다” “우리나라 제도를 놓고 미국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두고 특유의 입바른 목소리를 냈다. 예전과 달리 당에서 조롱 대신 칭찬이 따랐다. 한 정치 컨설턴트는 “싸가지 없는 좌충우돌 돈키호테에서 겸손한 정책전문가, 할 말을 하는 정책 전문가로 이미지 변신을 잘한 것 같다”라고 평했다.

 
당분간 유시민 장관측은 장관 직에 다 걸기를 최대 전략으로 꼽고 있다. 정치인으로서는 너무 많이 보여주어 되레 손실을 입었기에, 이제는 장관 직을 수행하며 실적을 내 주가를 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은 정책 현안에 대한 학습력,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에 대한 뚜렷한 의사 표현 등을 유장관의 장점으로 꼽는다고 한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강금실 전 장관은 조만간 행보를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가치주 천정배, 성장주 유시민과 비교하면 강 전 장관은 전형적인 테마주라 할 수 있다. 지지율 부침이 심했기 때문이다. 지지율 50%로 고공행진을 하다가, 한순간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유세 막바지에 보여준 72시간 불면 릴레이 유세는 반등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지방선거 이후 언론과 접촉을 피하고 있는 그녀지만,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정치 재개를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지난 7월25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전국 성인 남녀 7백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 전 장관(4.8%)은 대형주인 김근태(3.1%) 정동영(2.5%)을 제쳤다. 정치 한복판에 있는 이들보다 한발 비켜나 있는 그녀의 지지율이 높은 셈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그녀의 선거본부장을 맡은 김영춘 의원이 주도하는 ‘의제2015’라는 연구소 형태 모임을 강금실 캠프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한 당직자는 “개혁전략연구소를 함께 했던 김부겸 의원이 선진한국연대를 만들었듯, 김영춘 의원이 연구단체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들 외에도 잠룡으로 김혁규 의원·정세균 장관 · 진대제 전 장관 · 한명숙 총리 등이 거론된다. 정세균 산자부장관은 입각 때부터 이미 ‘관심 종목’에 이름이 올랐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잡음 없이 당을 이끌면서 친노직계 그룹은 “유시민 장관보다 더 주목해야 할 사람이 정세균 장관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유시민보다 정세균을 주목하라”

지지율이 크게 오르거나, 크게 떨어질 가능성 없어 보이는 정세균 장관은, 그래서 주가연계증권(ELS)에 비유할 만하다. 지금처럼 여권의 인기가 바닥일 때는 그의 통합 리더십이 힘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한 친노직계 의원의 분석이다. “다음 대선은 어차피 지각변동을 거쳐야 한다. 지각변동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그리고 고건을 아울러야 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게 통합의 리더십이다. 좌우와 ‘난닝구’(민주당)와 ‘빽바지’(개혁당)를 하나로 묶으려면 정세균의 통합 리더십이 빛을 발해야 한다.”

김혁규 의원은 김두관 전 최고위원이 당심을 잃고 떠난 빈자리를 공략해 영남권 대표 주자로 우뚝 선다는 복안이다. 한명숙 총리 역시 잠룡 대열에서 빼놓지 않고 거론되지만, 취임 100일 동안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강금실 전 장관과 함께 우량주로 평가받았던 진대제 전 장관은 학계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석좌 교수로 추대된 것이다. 당에서는 그의 정치 재개를 두고 전망이 엇갈린다. 차기 대열에 뛰어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열린우리당과 거리 두기를 통해 어느 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차기 정부에서 역할을 도모할 것이라고 예측 하기도 한다.

대권이라는 큰 장이 서면 열린우리당은 대형주 못지않게 중소형주가 주목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대형주인 김근태 정동영에게도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서 9룡이 나서 최후의 승자인 이회창씨가 힘을 받았듯이, 2007년 경선에서도 9룡·10룡이 경합을 벌여야 최후의 승자가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승자는 시가총액이 많은 대형주일 것이라는 게 김근태 의장·정동영 전 의장측의 희망섞인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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