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들도 삼성은 무서워한다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7.3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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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등사 사리 반환 소송에서 삼성 승소…법원 “옛날 그 절이 아니어서”

 
절에서 사리가 사라졌다. 사리는 삼성에 있다고 한다.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현등사(懸燈寺·주지 초격) 승려들이 사리를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은 지난해 8월. 현등사 혜문 스님은 “사리는 승려들에게 조상의 유골과 같다. 우리가 이병철 회장의 유골을 갖고 있으면 삼성이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현등사측 법률 대리인인 송상교 변호사는 “사리구에 ‘현등사’라는 명문이 있어 삼성문화재단측이 장물인지 모르고 취득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삼성문화재단측은 “고 이병철 회장이 구입했고, 1987년 그에게서 기증받았으므로 절차상 하자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 건은 현등사가 삼성문화재단측에 반환 소송을 제기하는 법정 다툼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재판에 변수가 생겼다. 현등사 삼층석탑에서 사리를 도굴했다는 서 아무개씨(45)가 나타난 것이다. 서씨는 조계종에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1980년께 현등사에서 석탑을 유압식 잭으로 들어 올려 안에 들어 있던 ‘복장 유물’을 도굴했으며, 이 가운데 사리구를 중간 판매상인 정 아무개씨에게 팔았다.” 서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회장이 사들였다 해도 현재 삼성이 소장한 사리는 훔친 물건, 다시 말해 ‘장물’이라는 얘기다.

사리 도굴범 나타나 ‘도굴품’ 인정

삼성은 도굴품을 거래해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1963년 ‘현풍 도굴 사건’ 때 이병철 당시 회장이 도굴된 금관을 사서 세탁하려고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회장의 형 병각씨는 1966년 장물취득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도굴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삼성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삼성문화재단의 한 관계자는 “우리 재단에 있는 문화재는 도자기와 몇몇 그림을 빼고는 모두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 유감스러운 선례를 남길 수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20일 현등사가 제기한 소송에 대한 서울서부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삼성의 손을 들어주었다. 원고인 현등사가 구 현등사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내려온 사찰이 아니라는 것이 주된 사유였다.

다음은 판결문의 일부분이다. “현등사는 본사가 아닌 말사로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대참화를 거치고, 이 사건 사리구가 봉안된 이후 숭유억불 정책을 편 조선 시대 4백여 년 동안을 사찰의 동일성을 유지한 채로 존속하였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가 … (중략) 해방 이후에도 불교 교단의 통폐합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사찰의 물적, 인적 요소에 커다란 변혁이 수없이 이루어져왔음은 공지의 사실인 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볼 때, 원고는 비록 구 현등사와 명칭은 같더라도 그와는 다른 별개의 권리 주체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므로….”

재판부의 판결에 원고인 현등사측은 “어이가 없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현등사측은 “현등사는 고려 시대 보조 국사가 중창한 후 폐사된 적 없이 유지돼왔다. 1829년 건물이 전소되었으나, 이듬해에 중수해 전쟁 때도 소실되지 않고 불법을 전파해왔다”라고 주장했다. 현등사의 동일성 여부가 쟁점이 될지는 현등사측 법률 대리인조차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송상교 변호사는 “동일성 여부는 중요 논점이 아니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재판부에서 석명하라는 요청 또한 받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의외의 판결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당초 다툼의 대상이 되리라고 예측했던 도굴품 진위와 선의 취득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계종측 “이토록 삼성 편들 줄 몰랐다”

이 판결에 대한불교 조계종은 즉각 반발했다. 한국 불교의 역사와 법통을 부정하는 일이라며 성명서를 냈다. 조계종의 한 고위 인사는 “재판부가 삼성을 의식하는 판결을 내릴 것을 걱정하기는 했지만 이토록 삼성 편에서 판결할지는 몰랐다.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라고 비난했다.

 
조계종에서 펄쩍 뛰는 것은 이 판결문을 근거로 하면 문화재를 도난당한다고 하더라도 원고 자격이 있는 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사찰 가운데는 전쟁 때 화재 피해를 당한 절이 많다. 사찰의 역사를 꼼꼼히 적어놓은 기록이 있는 절도 거의 없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과 일제 식민 지배 속에서 정통성을 잃지 않고 계승된 곳도 별로 다르지 않다. 재판부의 지적대로 말사(末寺·본사의 관리를 받거나 본사에서 갈라져나온 절)는 더욱 그러하다.

기자가 이번 판결대로라면 국내 사찰 대부분이 문화재가 도난당해도 소송할 근거가 없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 판결을 내린 부장판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다. 나는 이번 사건만 판결했을 뿐 그 다음은 내 소관 밖의 일이다.”

현등사측은 재판부가 삼성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소장에 피고의 이름을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이건희’로 적시했는데도 판결문에 피고가 ‘이사장 한용외’로 바뀐 부분을 들었다. 그런데 의아한 대목은 단순 실수인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판결문에서 피고의 이름이 ‘한용외’가 아니라 ‘한영외’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문화재단측에서도 “이사장은 이건희 회장이고 사장이 한용외씨다”라고 확인했다. 이에 담당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을 편파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정당한 판결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피고 이름은 문서에 있는 대로 적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사리 반환 소송 주도하는 현등사 혜문 스님

사리 반환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현등사 혜문 스님을 인터뷰했다. 혜문 스님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간사로 일본 도쿄 대학 도서관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을 주도하기도 했다.

소송을 벌이는 이유는?
‘아버지’ 유골을 찾는 것이다. 중이 부처님 사리를 찾는다는 정당성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삼성이 말하는 다른 의도는 없다.

삼성이 문화재 관리에 기여하는 측면도 많다.
삼성이 문화재를 잘 관리하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이를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닌가. 회장만 볼 수 있다면 그게 무슨 기여인가. 우리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사리는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지 재단 사람들도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삼성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1심에서 패했다. 항소할 계획인가?
재판부는 소유권 문제와 선의 취득 부분을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사건의 본질은 건드리지도 않고 삼성 편을 들어주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판사는 현장 검증에서도 리움 구경에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이번 판결은 한마디로 승려들과 조계종을 부정했다. 지금 현등사는 무엇인가? 현등사는 전통 사찰 보존법에 등록되어 있다. 가령 누군가가 불국사 다보탑을 훔쳐도 불국사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에 불교계가 어떻게 수긍하겠나. 월정사는 현재의 월정사가 아닌데 일본에서는 <조선왕조실록>을 돌려줬다. 일본도 주는데 삼성은 버티고 있다. 법에 앞서 양심의 문제다. 항소하겠다.

법원이 삼성을 의식한 판결을 했다고 주장했는데?
우리 머릿속에 삼성은 엄청난 권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사회에, 법원에 삼성이 공포심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삼성밖에 없는 것 같다. 조계종도 삼성을 상대로 해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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