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의 여우’ 잡아 한 풀자
  • 이용균 (경향신문 기자) ()
  • 승인 2006.08.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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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현역 최고 감독 김재박 '상한가‥ SK, 한국시리즈 첫 우승 위해 '적극 구애' 할 듯

 
‘사내로 태어났다면 세 가지는 꼭 해봐야 한다. 해군 제독,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야구 감독이다.’ 미국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세 가지 직업 모두 ‘만인지상’의 자리다. 손끝 하나로 부하들을 일사 분란하게 지휘한다.

야구 감독은 1군 엔트리 26명을 경기에 투입하고 제어 하는 것은 물론 선수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다. 감독의 성향에 따라 스타로 발돋움하는 선수와 2군을 헤매는 선수가 갈린다.

야구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은 화려한 홈런이나 투수의 호투일 수 있지만 감독의 작전 수행 능력 또한 중요하다. 요미우리 하라 다Tm노리 감독은 “전력이 50%라고 해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의 능력은 그 50%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고 감독은 누구일까. 삼성을 이끌고 있는 선동열 감독도 능력이 출중하다고 인정받지만 지금 가장 주목되고 있는 이는 현대 김재박 감독이다. 김재박 감독의 인기가 갈수록 치솟고 있다. 팬으로부터의 인기라기보다는 야구 관계자에게서 받는 인기다.

김재박은 김응룡 뒤 잇는 ‘우승 제조기’

김재박 감독은 올 시즌이 끝나면 2004년부터 시작한 현대와의 3년 계약이 끝난다. 선수로 따지면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셈. 우승을 노리는 팀들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김감독의 팀 운영 능력은 이미 검증되었다. 1996년 현대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한 김감독은 취임 첫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따낸 것을 시작으로 1998년, 2000년, 2003년, 2004년 네 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여덟 개 구단 현역 감독 중 최다 우승일 뿐만 아니라 해태·삼성을 거치며 통산 10회 우승을 차지한 삼성 김응용 사장의 뒤를 바로 잇는다.

1998년과 2000년 우승은 화려한 선수층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2003년과 2004년 우승은 김감독의 지략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진만·심정수 선수가 삼성으로 떠난 2005년의 경우 정규 시즌 7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김감독의 지도력이 의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전력 충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올 시즌 팀을 4강 안으로 끌어올리며 ‘역시 김재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감독은 올 12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됐다. 그러나 카타르로 떠날 때 여전히 현대 유니폼을 입고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벌써부터 김재박 감독을 둘러싼 소문이 무성해서다.

올 시즌이 끝나고 감독 계약이 끝나는 프로야구 팀은 모두 네 팀이다. SK는 조범현 감독과의 계약이 끝나고 LG는 이미 이순철 감독의 사퇴를 받아들여 양승호 감독대행 체제로 굴러가고 있다. 한화 또한 김인식 감독과 2년 계약이 끝난다. 현대도 올 시즌이 김재박 감독과의 마지막 해다.

일단 한화는 김인식 감독과의 재계약이 유력하다. 지난해 팀을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켰으며, 올해 또한 한화를 줄곧 상위권에 있게 한 공로를 인정해서다. 무엇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통해 인기가 한껏 올라간 김인식 감독 덕분에 대전구장을 찾는 팬들이 부쩍 늘었다. 2003년 홈 평균 관중이 1천9백16명에 불과했던 한화는 김인식 감독 부임 후인 2004년에는 평균 관중이 3천4백66명으로 무려 81%나 늘었다.

김재박 감독을 둘러싼 소문이 가장 무성하게 나오는 팀은 SK와 LG다. SK는 조범현 감독이 취임 첫해인 2003년 만년 꼴찌나 다름없던 SK를 한국시리즈까지 진출시키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2004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2년간 계약을 연장했고 다시 2005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SK는 하루바삐 우승을 해야 하는 처지다. 프로야구 여덟 개 구단 중 유일하게 우승을 경험하지 못한 팀이다. 구단 고위층으로부터의 우승에 대한 압력이 무척이나 심하다. 조감독은 지난해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패한 뒤 에이스 김원형을 출전시키지 않은 이유에 “플레이오프 이후를 고려했다. 김원형을 써버리면 우승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SK는 우승 압력이 심하다. 따라서 시즌 종료 뒤 감독 교체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시즌도중 감독 교체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최근 구단은 “시즌 도중 감독 교체는 없다”라고 못박았다. 오히려 이러한 발언은 외부 감독 영입에 더욱 무게가 실리게 한다. 우승 경험으로만 따진다면 김재박 감독만한 카드는 없다.

LG 또한 양승호 감독대행이 내년에 감독으로 계약할 가능성은 낮다. LG는 1994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진출도 2002년이 마지막이다. ‘신바람 LG’로 통하던 팀 색채도 엷어졌다. 우승 목표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마케팅을 위해서도 김재박 감독은 딱이다. 김재박 감독은 LG의 전신인 MBC 청룡의 유격수로 맹활약했다. 1990년 LG 첫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다. 김재박 카드는 떠나간 관중을 모으는 데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김재박 감독은 올 시즌 초반 LG 이순철 감독의 서승화 기용 방법과 관련한 발언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김감독은 “나라면 서승화를 저렇게 안 쓸 텐데”라고 말했고 이감독은 이에 “남의 선수 운용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라며 발끈했다. 김감독의 이런 발언은 ‘내년 LG 감독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LG 차기 감독으로 양상문씨 거론돼

그러나 일단 김재박 감독 영입은 LG보다는 SK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LG의 한 관계자는 “김재박 감독이 1992년 태평양으로 이적할 때 구단주와 마찰이 있었다. LG 복귀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고 이종남 전 스포츠서울 이사의 저서 <인천야구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김재박 감독은 1991년 말 LG에서 은퇴한 뒤 코치 요구를 받았을 때 강하게 반발하며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LG 구본무 구단주는 선수의 뜻을 존중해 흔쾌히 태평양으로 트레이드했다”라는 것이다. 당시 구단주의 결단 덕분에 현금 없이 ‘무상 트레이드’라는 희한한 형태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일단 김재박 감독의 SK행에 더 큰 힘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다. LG 차기 감독으로는 지난해까지 롯데 감독을 맡았던 양상문 감독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현대가 김재박 감독에게 구애할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현대의 관중 동원 능력은 여덟 개 구단 가운데 최하 수준이다. 김감독은 좀더 ‘큰물’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소문은 무성하지만 실제 이루어지기까지는 거쳐야 할 관문이 많다. 지난해 롯데는 양상문 감독의 유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알려졌지만 마지막 순간에 강병철 감독이 선임되었다. 소문에 따르면 마지막 최고위층 결재 과정에서 복수 후보를 올렸는데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강병철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부산상고 동문이다.

어쨌든 김재박 감독의 가세로 인해 올겨울 FA(자유계약신분) 시장은 선수 만큼이나 감독 시장도 뜨거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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