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변하는 '14일의 유배'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8.0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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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선택] 서당 학습

 
방학이 되면 전업 주부인 애들 엄마는 폭삭 늙어버리곤 했다.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달라 붙어 앉아 게임 삼매경에 빠지거나, 케이블 텔레비전을 켜놓고 빈둥대는 아이들과 일대 전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세끼 밥을 꼬박 꼬박 해대는 것도 큰 고역이었다.

그런 집사람에게 몇 년째 탈출구가 되어준 곳이 바로 서당이다. 방학만 되면 우리 아이들은 2주 동안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있는 벽계서당으로 ‘유배’를 당한다(아이들의 표현이다). 그곳에는 컴퓨터와 휴대전화, 그리고 패스트 푸드가 없다. 부모가 전화를 해도 여간 긴한 용무가 아니면 바꿔주지 않는다. 일요일에 면회를 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권장 사항은 아니다. 아이들은 밤10시에 자고 아침6시에 일어나며, 선생님이 직접 기르신 농산물로 만든 밥과 반찬을 먹으며 생활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컴퓨터와 휴대전화 그리고 패스트푸드와 청량음료에 깊이 빠져 있었는지 절감하면서 금단 현상을 참아낸다.

서당 교습법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검증된 방법이다. 평준화 교육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다. 영특한 코흘리개는 <소학>을 읽는데 머리 나쁜 떠꺼머리 총각은 <동몽선습>이나 떠듬떠듬 읽고 있는 게 바로 낯익은 서당의 풍경이다. 한 공간에 모여서 글을 읽지만 아이들은 철저히 능력에 따라 자기 진도를 나간다. 몸을 앞뒤로 흔들며 목이 쉬도록 글을 읽는다. 그날 읽어야 할 분량을 완전히 외우지 못하면 저녁 밥을 먹고서도 쉬지 못하고 계속 공부해야 한다. 어학을 공부할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명 난, 크게 소리내어 읽는 통암기법이다. 운율을 붙여서 몸을 흔들며 글을 읽는 것은 숱한 천재를 길러낸 저 유명한 유태인의 경전 학습법과 꼭 닮았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이같은 학습법을 낯설고 힘들어하지만 나중에는 익숙해진다. 매일 매일 하루 분량을 외우며 작은 성취감을 갖고,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워 뗄 때는 큰 기쁨을 느낀다. 그렇게 <사자소학> <추고> <동몽선습> <격몽요결> <소학>의 순으로 책을 떼어나가면 어느덧 <논어>와 <대학> 같은 원전에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2주가 지나고 다소곳이 손을 모아 인사하며 꼬박꼬박 존대말을 쓰는 아이들을 만나면 부모들은 얘들이 정말 우리 아이들인가 싶어 감격한다. 집에 돌아가면 약발이 그렇게 길지 않다는 걸 곧 알게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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