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칙하게 버무린 괴짜 판타지
  • 김형석(<스크린> 기자) ()
  • 승인 2006.08.04 16: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평] <다세포 소녀> 감독:이재용 주연:김옥빈·박진우·이 켠·유 건

 
2006년 여름 극장가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 유치찬란하고 난데없고 황당한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B급달궁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인터넷에 연재했던 만화 <다세포소녀>를 이재용 감독이 ‘이감독’이라는 예명(?)으로 영화화한 <다세포소녀>는, 인터넷 소설을 영화로 엮어낸 <엽기적인 그녀>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다세포소녀>는 <엽기적인 그녀>보다 더 막 나가고 불량스러운, 그러면서도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다.

<다세포소녀>는 잘 짜여진 이야기보다는 알록달록한 캐릭터를, 진중한 주제의식보다는 얼토당토 않는 시츄에이션을, 찌릿한 감동보다는 대책 없는 조롱을 즐긴다. 그러면 이 영화가 쓰레기냐고? 이런 영화에도 진정성이라는 게 존재하냐고? 일단 의심을 접고, 그 가닥이 잡히지 않는 스토리를 한 번 요약해보자. 종교에 따라 반을 나누는 무쓸모고등학교의 무종교반. 어떤 아이들은 발랄하다. 스위스에서 온 꽃미남 안소니(박진우), 잘 나가는 두 녀석 테리(유건)과 우스(이민혁). 은밀한 관계를 즐기는 회장(이용주)과 부회장(남호정) 커플, 아이들을 이끄는 반장(박혜원), 애교 컨셉트의 도라지 소녀(김별). 몇몇 아이들은 어둡기 그지없다. 무쓸모고등학교 유일의 숫총각인 외눈박이(이켠), 외눈박이의 동생이자 여장남자인 두눈박이(이은성), 그리고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 이 소녀의 등엔 실제로 ‘가난인형’이 항상 업혀 있으며 집엔 피라미드 조직원이며 지지리 궁상인 엄마(임예진)가 있다.

족히 열 명이 넘는 캐릭터들이 펼치는 엽기발랄한 영화 <다세포소녀>는, 기성세대가 청소년 세대에게 가지는 걱정과 근심을 확대재생산하면서 그 모순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자유롭게 섹스하고 원조교제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들 사이엔 심각한 왕따가 있고, 동성애나 SM 관계 또한 자연스럽다. 그리고 여기엔 항상 철없는 어른들이 연루된다. 회장과 화끈한 인터넷 채팅을 즐기던 상대방은 알고 보니 아빠였고, 소녀는 가난 때문에 원조교제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왕칼언니(이원종)는 크로스드레서, 쉽게 말하면 세라복만 입으면 흥분하는 특수 취향을 지녔다. 전과목을 소화하는 미스터리 담임(이재용)은 아이들에게 자신을 때려달라는 마조히스트다.

시종일관 엽기 발랄…‘영양 만점 불량 식품’ 같은 영화

일간지 사회면에서 항상 심각하게만 다뤄지는 학원 문제나 청소년 문화를, <다세포소녀>는 핑크빛 판타지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입시지옥이나 학원구타 같은 묵직한 화두를 비웃듯 외면하고, 무한정의 자유가 주어진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엔 엄연한 현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육체’이며, 그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건 ‘가난’이다(그래서 외눈박이와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왕따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한참 사랑하고 싶은 시기를 지나고 있으며, 짝사랑과 삼각관계는 일상다반사이며, 어른들이 주입하는 숭고한 가치보다는 그들에겐 나름대로의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재용 감독은 끝까지, 졸업식 장면까지, 단 한 오라기의 진지함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음담패설은 너무나 명랑하며, 다뤄서는 안 될 한계점은 잊은 지 오래며, 노래방 컨셉의 뮤지컬 장면은 영화를 활기차게 만든다. 교장 선생이 알고 보니 이무기(김수미)였고, 남학생들의 양기로 이무기를 용으로 승천시킨다는 해피엔딩(!) 또한 ‘므흣’하며, 과연 무쓸모고등학교의 그 아이들이 졸업 후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심이나 걱정 따윈 없다.

이 영화는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리얼 드라마도 아니고, 섹슈얼 컨셉트의 틴에이저 에로영화도 아니며,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더욱 아니다. 발칙한 상상력과 과장된 현실감각, 양식화된 스타일과 괴짜 판타지가 만난 ‘영양만점 불량식품’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이 영화, 무진장 독특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