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같은 국고보조금을 법정 용도 외에 썼다고?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8.0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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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관위, ‘민노당, 지역위원회 인건비로 사용’ 의심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논란에 휩싸였다. 고질적인 정파 갈등이 아니라 돈 문제이다. 선관위로부터 국고 보조금을 법정 용도가 아닌 곳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받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국회 진출 이후 국고보조금이 대폭 증가해, 한 해 평균 20억원 상당을 받았다. 지난해에도 보조금으로 20억3천만원을 받았다. 열린우리당(1백18억원)이나 한나라당(1백14억원)에 비하면 상당히 적지만 빈한한 민주노동당 처지에서는 적지 않은 액수다. 올해 민노당에 책정된 국고보조금은 30억4천만원이다. 전체 민노당 한 해 예산(1백50억~1백70억원) 가운데 18~20%를 차지한다. 

최근 대전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제보를 받았다. 민주노동당 관계자의 내부 고발이었다. 핵심 내용은 민주노동당이 국고보조금 일부를 ‘지역위원회’(당원협의회) 인건비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조금을 지역위원회 인건비로 사용할 수 없다. 제보는 증빙 서류까지 갖추었고, 아주 구체적이었다. 대전시 선관위는 이 제보 내용을 중앙선관위에 보고했고, 중앙선관위 지시에 따라 조사에 착수했다. 중앙선관위는 대전뿐 아니라 강원도, 울산 등 다른 지역도 실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를 받고 조사에 나선 대전시 선관위 관계자는 “예전으로 치면 지구당에 해당하는 지역위원회 인건비에 사용되었다”라고 말했다. 강원도 선관위 관계자도 “관련 조사를 끝내고 중앙선관위에 보고했다. 강원 지역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고, 다른 지역도 조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위법 액수가 상당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중앙 선관위 관계자는 “관련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 예단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만 조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정당 회계 보고도 실사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고보조금, 법정 용도 외에 사용하면 삭감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세금, 이른바 혈세로 지급된다. 그래서 용도를 제한하고, 지급 절차도 엄격하다. 이를 위반할 경우 감액과 집행 잔액의 반환·강제 징수 등 엄격한 조처가 따른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국고보조금은 인건비, 사무용 비품 및 소모품비, 사무소 설치·운영비, 공공요금, 정책 개발비, 당원 교육 훈련비, 조직 활동비, 선전비 등으로 용도가 제한되어 있다.

보조금의 총액도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100분의 50은 중앙당, 100분의 30은 정책연구소, 100분의 10은 시도당, 100분의 10은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인건비는 중앙당(1천명 이내)과 시·도당(1백명 이내) 유급 사무직원에게만 지급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시·도당에 해당하지 않은 지역위원회 상근자에게도 국고보조금 일를 인건비로 썼다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정당법에는 보조금을 법정 용도 외에 사용하면, 위반 액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차후 보조금 지급에서 감액한다. 대전시 선관위 관계자는 “최종 결정은 중앙선관위에서 내리겠지만, 감액 처분 대상이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위반 액수의 두 배를 감액받는다”라고 밝혔다.

중앙선관위는 이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고, 중앙당에서 직접 문서를 챙겨 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의 조사 결과에 따른 최종 결정이 나와야 정확한 법령 위반 여부나 감액 처분 액수가 정해지겠지만, 벌써부터 민노당 안에서는 단순 경고설부터 국고보조금 수억원 감액설까지 다양한 얘기가 돌고 있다. 

당의 공식 창구인 민노당 김선동 사무총장은 “선관위와 얘기가 잘 되고 있다.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조사가 끝나야 알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민노당, 지난해도 5천만원 이상 삭감당해

민주노동당은 지난해에도 2004년 정당 회계 보고와 관련해 유급 직원 수 초과, 정기 당대회 시 기념품 제공 등으로 5천3백여 만원을 삭감 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회계 책임자가 고발당해 벌금 2백만원을 선고받았다. 당시 한나라당 삭감액(3천6백여 만원)보다 많아, 당내에서 논란이 뜨거웠다.

민노당이 국고보조금 일부를 인건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완전히 떨쳐 버리려면, 근보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지난 2년간 유지해온 중앙당이 당비를 걷어 지역위원회에 교부하는 방식에서, 지역위원회가 직접 당비를 걷고 독자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당 지도부는 8월 말에 중앙위원회를 열어 이같은 변화 방식을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서울의 한 지역위원회의 당직자는 “자력갱생은 민노당 조직의 근간인 지역위원회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다”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열대야보다 더 뜨거운 대논쟁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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