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시들했던 추리소설의 ‘귀환’
  • 방재희 (번역가 추리작가협회 회원) ()
  • 승인 2006.08.1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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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이후 인기 급상승…고전까지 재출간

 
올여름 서점가에는 유난히 장르 소설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평소에는 자기 계발서나 순문학밖에 안 읽는 사람이라도 요즘 같은 휴가 때 배낭에 찔러넣을 ‘가벼운’ 책이나 ‘엔터테인먼트 소설’ 부근을 배회하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유별나다. 가히 ‘장르 소설 쓰나미’에 가깝다. 한국의 장르 문학 시장이 비로소 제 위성 궤도를 돌기 시작한 것 같아 반갑다.

장르 소설 붐의 기원은 물론 <다빈치 코드>이다. 2004년에 <다빈치 코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장르 소설을 보지 않던 사람들도 “<다빈치 코드> 같은 거 또 없어요?”하면서 서점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장르 문학이 활성화한 계기다. 추리소설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전에는 판매 부진을 염려해 찍고 싶어도 못 찍던 출판사들이 대거 명작들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예전에 조용히 출간된 책들도 재발견되고 있다. 그래서 제법 풍족한 물량이 서점가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지금처럼 추리소설이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것은 드문 일이다. 한마디로 ‘추리소설’을 추리소설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적 상황’이 있었다. 장르 문학 시장 자체가 열악해서, ‘추리 독자’는 존재하지 않고 열광적인 소수의 ‘추리 마니아’만 있는 상황에서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면 ‘마니아만 보는 책’으로 여겨져 오히려 일반 대중의 외면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리소설’이라는 말 대신 ‘장편소설’이라고 포장하기 일쑤였다. 톰 클랜시 테크노 스릴러 소설, 스티븐 킹 공포 소설, 로빈 쿡 의학 소설 정도가 자신의 장르를 떳떳하게 밝히고 성공했다고 할까. 일반 독자에게 추리소설은 여전히 ‘홈즈와 김성종’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졌고, 세련된 성인 독자라면 마땅히 외면해야 할 책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달라진 듯하다. 근래 출간된 추리소설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다빈치 코드> 이래 그와 유사한 독자층을 겨냥한 ‘팩션’ 소설들이 많다는 점이다. 허구보다는 실화가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진짜일지도 몰라”하는 기분이 들면 아무래도 내용에 더 집중한다. 팩션에 대한 시장의 평가도 나쁘지 않다. 팩션 붐으로 최근에는 외국 팩션 소설뿐만 아니라 <훈민정음 암살사건> <원행>처럼 한국형 팩션을 표방하는 책들도 잇달아 출간되었다.

독자 늘어나자 절판된 소설까지 복간

두 번째, 과거의 고전들이 귀환했다는 점이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명작의 반열에 선 추리소설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수십 년간 쌓여온 명작들 중에서도 재미있는 것들부터 선별해 번역 출간하므로 최소한 재미는 보장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에야 번역 출간된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이다. 이 작품은 1977년작으로, 일본에서 수많은 상을 탔다. 여전히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로 꼽힌다. 그 밖에 <13계단>(다카노 가즈아키·황금가지 펴냄)이라든가 <고양이는 알고 있다>(니키 에tM코·시공사 펴냄) 등 일본의 대표적 추리문학상인 에도가와 란포 상을 탄 작품들이 연달아 번역 출간되고 있다. 2004년부터 꾸준히 번역·출간 중인 패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 1990년대 작품이다.

이렇게 과거 명작들이 잇달아 출간되는 것은 한국의 출판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추리 문학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몇몇 출판사가 자신의 컬렉션으로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고전 출간은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클럽이나 ‘행복한 책읽기’의 SF총서 등 장르 소설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는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르 소설이 붐을 이루면서 요즘 인기 있는 추리소설을 보면 최근작이 아니라 구간인 경우도 많다. 동서미스터리북스나 해문의 추리소설처럼 추리소설 애독자들이 탐독해온 명작 중에 최근 들어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도 많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페터 회·마음산책 펴냄>처럼 절판되었다가 찾는 독자가 많아지자 새로 출간된 작품도 드물지 않다. 이런 현상은 그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추리소설들이, 추리소설을 찾는 일반 독자들이 많아지자 비로소 진열대 위로 올라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1. <옥문도>(요코미조 세이시·시공사 펴냄)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로 유명한 소년 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가 나오는 일본 추리소설이다. 긴다이치 코스케는 소설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로 극화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드문 추리소설의 주인공이다. 저자 요코미조 세이시는 에도가와 란포와 함께 일본 추리 문학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명성에 걸맞게 아름답고 정교하다. 최근에 같은 작가가 쓴 <팔묘촌>도 번역 출간되었다. 일관된 분위기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옥문도>가 마음에 들었던 분들은 함께 보아도 좋다.

2. <딸기 쇼트케이크 살인 사건> <초코릿칩 쿠키 살인사건>(조앤 플루크·해문 펴냄)
추리소설에는 ‘코지 미스터리’라고 있다. 추리적인 요소는 좋아하지만, 피가 튀고 잔인하고 끔찍하고 으스스한 것은 싫어하는 독자를 위한, 말랑말랑하고 가벼운 추리소설을 말한다. 근래 나온 ‘코지 미스터리’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다. 레시피(요리법)까지 들어 있는 추리소설이라니(물론 레시피는 본문과 별 관계가 없어서 안 읽고 그냥 건너뛰게 되지만 발랄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한몫한다). 조앤 플루크가 이 시리즈를 계속 출간했다고 하니, 이어지는 번역 출간도 기대해볼 만하다.

3. 스카페타 시리즈(패트리샤 콘웰·노블하우스 펴냄)
노블하우스는 패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를 차례로 번역 출간하고 있다. 첫 작품 <법의관>부터 시작해서, <소설가의 죽음> <하트잭> <사형수의 지문> <시체 농장> <카인의 아들> <악마의 경전> <죽음의 닥터> <카인의 딸>, 그리고 <흑색 수배>까지. 정통 탐정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스카페타 시리즈를 강추한다. <법의관>은 여검시관 스카페타가 검시를 통해 범인을 추적하는 정통 추리물이다. 작가는 실제로 부검을 수백 회나 참관했고 미국 연방수사국(FBI) 교육을 받은 적도 있다. 그래서인지 현실감이 상당하다. 정통 추리물의 분위기를 원하는 독자라면 만족할 만하다.

 
4. <망량의 상자> <우부메의 여름>(고코쿠 나스히코·손안의책 펴냄)
잔인하고 무서워서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는 책을 원하는 독자 사이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는 작품이다. 후속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공포나 괴기소설에 가깝기는 한데, 이 작품을 읽은 사람들이 다음 출간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할만큼 힘을 가졌다. 일본에서는 유령이나 심령 현상, UFO 따위도 미스터리로 불린다.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에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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