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배우고 귀로 깨닫고…
  • 김민욱 인턴기자 ()
  • 승인 2006.08.2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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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100일 민심 대장정 동행 취재기

 
조선 막사발처럼 담백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100일 민심 대장정이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정치부 기자들을 비롯해 많은 기자들이 그의 민심 대장정을 찾아가 취재하고 있다. 회사로 돌아간 기자들이 쏟아낸 기사는 하나같이 ‘학비어천가’ 일색이다. 무엇이 기사들을 칭찬 일색으로 만들었을까? 민심 대장정의 원칙을 알아보았다.

첫 번째는 ‘많이 만난다’이다. 지난 8월14일, 숙박 예정지였던 경남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 척곡마을에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10분이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마을 회관 앞에는 이장을 포함해 15명의 지역 주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 전 지사는 자정이 넘는 시각까지 지역 주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번 100일 민심 대장정의 목적도 이런 만남을 위해서였다.

이튿날은 광복절이었는데도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일정은 쉼이 없었다. 이동하는 버스나 택시 안에서는 기사나 승객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이순신 장군 사당인 제승당 참배를 위해 찾은 한산도에서도 관광객이나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이날 하루 간담회만도 통영 서호시장 상인회, 원동물산 직원, 수협조합원 등 세 건이었다. 만남의 계층도 다양하다. 농민, 어민은 물론이고 공장 노동자, 상인에서 지역 예술․문화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났다.

정치인은 안 만나고 민박 고수

손 전 지사가 사람을 만날 때는 원칙이 있다. ‘말하기보다 듣는다’는 것이다. 8월15일 밤 9시, 숙소였던 통영시 산양읍 미남리 차홍기 어촌계장의 집에서 지역 어민들과의 조촐한 간담회가 열렸다. 지역민들은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정과 관련한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천혜의 관광 자원을 갖고 있는 지역임에도 개발이 제한되어 숙박업이나 유흥업을 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주를 이뤘다. 공원 지역 내에서는 조어 활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지시로 만들어놓은 유료 낚시터마저 놀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기자들에게도 귀를 기울인다. 8월14일에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월간 객석>의 윤석화 대표가 경남 함안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손 전 지사였다. 윤석화 대표는 미혼모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손 전 지사는 수첩을 펴고는 윤 대표의 이야기를 적었다. 자신의 주장을 받아준 손 전 지사에 대해 윤 대표는 차기는 물론 그 다음번까지 그를 지지하겠다고 화답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지만 가급적 ‘정치인은 피한다’는 것이 민심 대장정의 또 다른 원칙이다. 8월15일 저녁, 수협 조합장들과의 간담회를 위해 손 전 지사가 이동한 뒤 급하게 그를 따르던 수행원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를 받는 수행원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협 조합장들을 만나러 간 자리에 경남도당 관계자 등이 참석해 있자 손 전 지사가 한마디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인지 평균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다른 간담회에 비해 이날 간담회는 짧게 끝났다.

사실 손 전 지사를 찾아오는 정치인들은 많다. 기자가 동행했을 때만 해도 김명주 국회의원(경남 통영․고성), 이학렬 고성군수를 비롯해 한나라당 소속 시․도 의원 다수가 손 전 지사를 찾았다. 손 전 지사는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까지는 막지 않는다. 그러나 직접 찾아가서 만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민심을 듣기 위함이지 당심을 들으려는 대장정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손 전 지사는 ‘꼼꼼히 기록한다’. 8월15일, 굴 가공 공장 작업을 마치고 공장 직원들과의 간담회 시간. 술이 몇 순배 돌고 공장 직원들이 이런저런 애로 사항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손 전 지사는 주섬주섬 배낭에서 수첩과 펜을 꺼낸다. 수첩은 민심 대장정을 떠나는 순간부터 손 전 지사가 배낭에 항상 휴대하는 품목이다. 간담회나 만남이 있을 때마다 그는 수첩을 꺼내 들고 대화 내용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손 전 지사는 수첩의 내용을 바탕으로 일기를 작성에 그의 홈페이지(www.hq.or.kr)에 올리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때, 손 전 지사는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민심 대장정을 시작한 6월30일, 손 전 지사는 수원역에서 전남 장성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후 그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버스, 기차,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고성 읍내의 한 해장국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고성에서 통영으로 이동한 광복절 아침에도 손 전 지사는 시외버스를 탔다.

군중 속에 파묻혀 다니며 손 전 지사는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려고 한다’. 몇 명의 수행원이 그를 따르고 있지만 도움을 거부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매표다. 8월15일 고성에서 통영으로 가는 버스, 통영에서 한산도로 가는 왕복 배표, 한산도 제승당 입장권을 모두 직접 구입했다. 최근 그의 배낭 품목 중에 효자손이 추가된 것도 등을 긁는 일을 직접 하기 위해서이다. 손 전 지사는 “혼자 다니다 보니”라며 부인이 동행하지 않는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이동 원칙이라면 ‘되도록 신세를 진다’는 것은 숙박 원칙이다.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 척곡마을 회관(8월14일), 통영시 산양읍 미남리 차홍기 어촌계장 집(8월15일), 거제도 백병원 게스트하우스(8월16일). 기자가 동행한 사흘 동안 손 전 지사가 묵었던 장소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숙박비를 지불하지 않는 곳을 이용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마을 회관이 주를 이루고 일반 가정집에서 잠을 청하는 때도 많다.

손 전 지사를 맞이하는 곳에서는 대접이 여간 극진한 것이 아니다. 전북 고창의 한 마을은 마을 회관 전체를 도색하고 도배했다. 전남 장성에서는 손 전 지사가 혹여 병이라도 걸릴까 마을 전체 방역을 실시했고 그가 묵었던 마을회관 앞에서 마을 청년회장이 혹여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처럼 테러를 당할까 봐 새벽 3시까지 경계를 섰다고 한다.

 
손 전 지사가 신세를 지는 대상은 힘 있고 부유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애써 ‘소외된 곳을 찾는다’. 민심 대장정을 진행하는 동안 손 전 지사는 대도시를 피하고 있다. 소외받고 있는 농민들이나 어민들의 이야기를 우선 듣겠다는 것이 그의 의지이다. 방문한 지역의 당 위원회나 관청도 방문하지 않는다. 마을회관이나 농민, 어민의 숙소에서 잠을 자는 것도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겠다는 뜻이다.

일단 폐를 끼친 다음, 손 전 지사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보답한다. 8월14일 오전, 손 전 지사가 찾은 곳은 경남 함안의 파프리카 농장이었다. 유리 온실이어서 오전 10시만 되어도 내부 온도가 46℃를 넘기 때문에 이 농장에서 고용한 인부들은 아침과 늦은 오후에 작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손 전 지사는 오전 10시부터 이곳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농장주가 “이제 사진도 웬만큼 찍은 것 같으니 그만하고 쉬시죠”라고 말해도 손 전 지사는 “예. 하던 고랑만 마저 하고요”라며 2시간30분을 작업했다.

일할 때의 원칙은 되도록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기자들도 손 전 지사를 찾아왔다가 으레 작업에 투입되곤 한다. 김명주 국회의원은 통영의 원동물산에서 손 전 지사와 같이 굴 해동․양념․포장 작업을 했다. 얼음 공장에서는 강근식 통영시의원이 함께 했으며, 8월15일 새벽 농약 살포 작업을 할 때에는 <시사저널> 기자들도 뛰어들었다.

평범한 사람들도 민심 대장정에 동참해 일하고 있다. 강원도 수해 복구 현장에서는 인터넷으로만 60여 명의 자원 봉사자가 찾아와 손 전 지사와 함께 제방 쌓기 작업을 하기도 했다. 당에서 온 자원 봉사자들까지 합쳐 총 1백50명분의 점심 식사를 대접한 것도 중국 요리점을 운영하는 한 사장님이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오랜 친구인 도예가 현암은 그의 민심 대장정을 ‘두타행(頭陀行)’이라 명명했다. ‘인간의 모든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이 바로 두타행의 의미다. ‘여의도식 정치’를 벗어나 민심 수련을 쌓고 있는 그가 어떤 깨달음을 얻고 올지,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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