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구비 옆의 장관
  • 정희상 전문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6.08.25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일의 선택] 보성 녹차밭

 
각종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여행지로 자리매김한 보성 녹차밭. 보성다원 하면 흔히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대한다업을 떠올린다. 벨벳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진 녹차밭, 병풍처럼 둘러싼 삼나무 숲, 곳곳에 사진 찍기 좋은 곳을 알리는 표지판과 지자체의 대대적인 단장 및 홍보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연출된 아름다움 뒤에 있는 여행의 참맛을 체험하고자 한다면 굳이 북적대는 유명 차밭을 찾을 일이 아니다.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에서부터 회천면 율포해수욕장에 이르는 12km 구간의 아흔아홉 구비 봇재 양옆은 전망좋은 녹차밭이 장관을 이룬다. 봇재 전망대와 그 아래 마을에서 보는 녹차밭 풍경도 판이하다. 길은 봇재 바로 밑 비탈을 따라 내려와 영천리 양동마을에서 영천마을, 그리고 남도 판소리의 성지라 불리는 도강재 마을까지 이어진다. 저수지를 끼고 도는 이 길은 <서편제>의 소릿길이기도 하다. 길 양옆 마을들에서는 기계로 딴 대규모 차밭의 시음차보다는 수작업을 하는 농민들의 땀과 정성이 밴 차를 만날 수 있다.

녹차밭 가운데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6년 전 귀농한 이재성씨(44)의 하루는 녹차밭 이랑에서 시작해 땀으로 끝난다. 고향 지킴이 이재성씨와 50여 농가가 오래 전부터 가꿔온 녹차밭에는 관광객도 그럴 듯한 표지판도 없다. 그저 시골 아낙들의 차 다리는 손길과 마을에서 직접 담근 녹차 된장 등 사람 내음 물씬 나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도회지 사람들에게 흔히 녹차밭은 아름다운 장관으로, 다도는 일상과 거리를 둔 숭고한 예술로 여겨진다. 그러나 남도의 한이 서린 이 판소리길에서 차 재배와 다도는 일상이고 땀이며, 정성이다. 녹차 농민의 일상은 그래서 숭고하다. 아름다움 뒤에 숨은 역설의 풍경은 이렇게 말한다. 늘 소년처럼 살라고.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