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도 ‘로비의 바다’에서 허우적
  • 고제규 기자 · 김회권 인턴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8.2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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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권 따내려고 업체들 ‘혈투’…검증 심사도 ‘부실’ 의혹투성이

 
‘상품권 인증 심사 과정에서 각종 특혜 및 비리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외압도 있었다. 문화관광부(문광부) 장관은 외압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노사모’> 관련 인사 M씨, 국회의원들에 대해 진실을 밝혀라.’ 문화관광부장관에게 ‘로비의 바다’에 빠진 경품용 상품권 의혹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투서의 내용이다. 그런데 투서는 최근에 작성된 것이 아니다. 2005년 6월5일자다. 당시 문광부 홈페이지에는 상품권 인증이나 지정과 관련한 이런 투서가 빗발쳤다.

영문 이니셜로 등장하는 ‘M’씨는 누가 보더라도 명계남씨를 지칭한 것이다. 명씨는 8월21일 자신의 연루설을 유포한 누리꾼을 처벌해달라고 검찰에 고발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바다이야기와 관련되었다는 소문을 처음 들었던 때가 지난 1월이라고 밝혔다. 자신은 몰랐겠지만, 업계에서 그는 지난해부터 이니셜로 거론되었다. 그것도 바다이야기가 아니라, 경품용 상품권과 관련해서다.

경품용 상품권 발행이 ‘돈 버는 괴물’로 비쳐지면서, 관련 업계에서 치열한 로비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발행 업체로 선정되면 돈을 찍는 조폐공사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었다. 실제로 5천원 상품권 한 장당 신권으로 교환하면 발행 업체는 수수료 50~60원을 챙긴다. 인쇄 비용을 빼면 장당 20~30원이 발행 업체에 떨어진다. 푼돈 같지만, 6천만 장이 유통되었기에 합치면 수익이 최대 1천8백억원에 달한다. 돈을 찍어낸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셈이다.

문광부, 상품권 도입 때부터 유착 의혹받아

이 때문에 상품권 발행 업체를 처음으로 인증한 지난해 3월28일을 전후로 로비와 역로비가 치열했다. 인증제를 시행했다가 이를 취소하고 다시 지정제로 바꾸면서 그해 8월까지 업계는 로비의 바다에 빠졌다. 이 기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문광부는 경품용 상품권 도입부터 업계와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초 문광부는 2004년 7월 경품용 상품권 자체를 폐지하려고 했다. 게임장에서만 유통되는 이른바 ‘딱지 상품권’을 뿌리 뽑기 위해서다. 그러나 성인오락실 업주 단체인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한컴산)가 반발했다. 한컴산은 상품권을 폐지하면 혼란이 초래된다며, 문광부가 차라리 경품용 상품권을 선정해달라고 했다.

그해 12월, 문광부는 업계 주장과 똑같이 인증제를 도입한다고 고시했다. 상품권 폐지 정책이 정반대로 상품권 공식화 정책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돌연변이 과정을 거치면서 ‘돈 버는 괴물’이 등장했다. 한 상품권 업자는 “한컴산이 민간 기구만 아니라면, 문광부가 선정 심사까지 맡겼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품권 인증제가 도입되면서, 업계는 선정되면 대박이고, 탈락하면 쪽박이라고 받아들였다.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다. 이 과정에서 몇몇 브로커가 명계남씨나 국회의원 이름을 거론하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로비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관련 상임위원인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집중 표적이 되었다. 여권의 한 보좌관은 “우리는 관련 상임위도 아닌데, 지역 구민이라며 상품권 발행 업체가 되도록 도와달라는 민원이 들어오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때 신청했던 업체들의 등기 이사 명단을 살펴보면 정치권 출신 인사들이 눈에 띈다. ㅆ사의 ㄱ이사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중앙위원을 역임했고, ㅎ사 ㄱ이사는 민주당 시의원을 지냈다. 소문처럼 최근에 그만둔 보좌관이나 당직자들이 등기 이사로 재직한 경우는 없었다.
문광부는 지난해 3월28일 22개 발행 업체를 발표했다. 당초 발표 예정일은 3월31일이었다. 발표가 앞당겨진 것도 치열한 로비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3월28일 문광부와 열린우리당의 당정협의회가 잡혀 있었는데, 이 때문에 예정일보다 서둘러 발표했다는 것이 문광부 쪽 설명이다. 당정 협의를 거치면서 심사 결과가 업자들에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21일 문화관광위 회의록을 보면, 정동채 장관도 이를 시인했다. 같은 당 이경숙 의원의 질의에 정장관은 “의원님들 관심이 많은 까닭인지는 몰라도 일부 (심사 결과가) 새어나가기도 해서 서둘러 발표했던 것은 사실입니다”라고 답변했다.

발표 이후 후폭풍은 거셌다. 탈락 업체들이 대거 반발했다. 이들은 국회 문광위원실을 돌아다니며 민원을 제기했다. 여야 의원을 가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모든 문광위원이 제보를 받았다고 보면 된다. 이 문제로 문광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안 한 보좌관은 게으르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보좌관도 “탈락 업체는 자기들도 딱지 상품권 업자인데, 선정된 업체도 똑같은 딱지 상품권 업자라며 심사 백지화를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선정된 업체는 업체들대로 의원실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탈락 업체의 흑색선전이다. 유언비어다”라고 항변했다. 문광위 의원들은 문광부에 심사 자료를 요청했다. 실제로 자료를 받아보니 한눈에 보아도 엉망이었다. 예컨대 한 업체의 심사 채점표를 보면, 문화·관광 산업 기여도(30점 만점) 항목에 심사위원이 자필로 ‘샘플 가맹점 통화시 부정적 답변, 가맹점 비율 의심’이라고 해놓고, 점수는 30점 만점을 주었다. 일부 채점표는 나중에 고쳐지기도 했다.

부실 심사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던 박찬숙 한나라당 의원은 문광부에 심사위원 명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문광부는 공개를 거부했다. 공개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심사위원을 위촉했기에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고 문광부는 버텼다. 문제가 불거진 지금도 문광부는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탈락한 업체들 대부분 문 닫아

문광부는 검증 심사위원회 실사를 거친 뒤 22개 사를 전부 취소시켰다. 검증 결과 선정된 업체들이 모두 허위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부는 아예 선정 제도를 바꾸었다. 인증제를 지정제로 바꾼 것이다. 자의적인 심사를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이는 인증 심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게임산업개발원은 자체 심사 대신 서울보증보험의 추천을 받으면 발행 업체로 지정했다. 그런데 지정 과정에서 허위로 자료를 제출해취소된 업체들이 다시 선정되었다. 허위 자료를 제출하면 2년 동안 심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인증제 시행 당시 공고 원칙이 무색해졌다. 게임산업개발원은 법무법인의 자문을 근거로 제도 자체가 바뀌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로비의 힘으로 보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현재 19개 사가 발행 업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증제 때 선정되었다가 지금은 상품권 발행을 접은 회사들은 어떨까? 지난 8월22일 서울 지역에 소재한 회사들을 확인 해보았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ㄱ사. 우편함에는 서너 달 전부터 쌓인 우편물이 가득했다. 문은 잠겨 있었고, 단전·단수 경고문도 붙어 있었다. 건물 경비원은 “서너 달 전부터 사람들이 사라졌다. 중간에 법원에서 가압류 하러 찾아온 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강남구에 위치한 ㅎ사도 문을 닫았다. 이 건물 경비원은 “지난해만 해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층을 통째로 썼다. 아주 잘되었는데, 지난 4월 문을 닫았다”라고 말했다. 발행 업체로 선정되면 대박을 잡고, 탈락하면 쪽박을 찬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업체들은 그만큼 도박에 가까운 일대 혈투를 벌였던 셈이다.

정부는 내년 4월28일까지 유예 기간을 두고, 그 이후 경품용 상품권을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의 폐지 정책으로 돌아간 것이다. 상품권 발행을 둘러싼 비리가 곪아 터지기에 지난 1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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