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밀림 속 아랍인이 헤즈볼라 돈줄이라고?
  • 부에노스 아이레스 · 손정수 ()
  • 승인 2006.08.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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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미 아랍인이 헤즈볼라 지원 주장 미국, 강력 주장…“엄청난 수자원 노린 꼼수” 주장도

 
남아메리카 대륙 한복판에 ‘트리플레 프론테라(Triple Frontera)'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다. 브라질의 남서쪽·아르헨티나의 북동쪽·파라과이의 남쪽이 만나는 3국 접경 지역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이과수 폭포로 유명하지만, 지역 대부분이 밀림으로 덮인 오지로 국제 사회에 그 존재가 언급되는 일은 드물었다.

트리플레 프론테라라는 이름이 외교 무대에 등장한 것은 지난 9·11 테러 이후다. 최근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때 이 지역은 다시 한번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도대체 이 남미의 밀림 지대와 중동전쟁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트리플레 프론테라 지역에 사는 주민은 3개국을 합쳐 47만명에 이른다. 그 중 최소 5%에 상당하는 주민들이 아랍계 이슬람 신도들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쪽 지역은 40여 년 전 부터 정착하기 시작한 레바논과 시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많다. 그런데 최근 아르헨티나 쪽 트리플레 프론테라 지역에 사는 아랍계 주민들이 헤즈볼라에 자금을 송금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정부가 유엔의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병 요청을 거부한 이유도 이 ‘트리플레 프론테라’ 지역 문제가 컸다.

인구 수로만 따지면 아랍계가 이 지역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급증한 아랍계 이주민들이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푸에르토 이과수,’ 브라질에 가까운 지역의 ‘포스 데 이과수', 파라과이와 가까운 ’시우다드 델 에스테' 등을 중심으로 아랍계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의 정치 중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중앙정부의 통치력에 한계가 있다. 이를 틈타 아랍계 테러 조직이 트리플레 프론테라에서 활동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분석이다.

2001년 9월11일 미국 무역센터 폭파 이후 미국 의회와 국방부·정보 당국은 이 지역에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비롯한 아랍 극단 투쟁 조직 및 알 카에다 요원들이 출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심지어 이곳이 아랍 게릴라 조직의 훈련장 혹은 남미 기지라는 주장도 있었다. 한때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는 펜타곤이 수립한 대테러 조직 기습 전략에 남미의 트리플레 프론테라를 공격 목표로 넣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강경파들의 주장에 따르면 트리플레 프론테라->콜롬비아->베네수엘라->멕시코->미국으로 이어지는 루트가 아랍 게릴라의 침투 경로라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의혹일 뿐, 정작 미국 정부는 이 지역에서 아직 한 명의 게릴라도 적발해내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곳이 설사 테러 기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아랍 게릴라의 돈줄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최근 파라과이 정부가 트리플레 프론테라 주민 한 명이 헤즈볼라 혹은 하마스와 연관된 아랍 조직에 거액을 송금했다고 발표해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트리플레 프론테라는 남미에서 아랍 출신 이주민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현상을 대변한다. 아랍계 이주민들은 브라질·아르헨티나 정부의 대중동 정책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8월 중순, 양국 정부는 유엔이 요청한 레바논 주둔 평화유지군 파병을 거부했다. 미국은 파병 압력을 넣었지만 각국 정부는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야 했다. 브라질은 대선이 2006년 10월에 아르헨티나는 2007년 10월에 있다. 괜히 분쟁 지역에 끼어들었다가 예민한 아랍계와 유대계 유권자들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있다.

중동과 남미 사이의 지리적 거리는 멀지만, 정치적 거리는 멀지 않다. 특히 아르헨티나보다 브라질 국민들이 레바논 전쟁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8월6일 상파울루와 포스 데 이과수 시에서는 브라질 시민 수 천명이 레바논 국기를 흔들며 거리를 메우고 행진했다. 행진 가운데에는 레바논에서 희생된 친척이나 전쟁으로 희생된 레바논 시민들의 사진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도 보였다. 포스 데 이과수·상파울루를 포함한 브라질 남부 지역은 시리아·레바논 사람들의 영향력이 막강한 곳이다.  

중동과 남미의 ‘정치적 거리’는 가까워

아르헨티나 정부도 조심스럽다. 지난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이, 1994년에는 아르헨티나 유대인 상조회(AMIA)가 폭파되었다. 아랍 게릴라의 소행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명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아랍계 시민들의 시위가 있었다. 한편 유대계 이주민들은 시내 중심가에 ‘울음의 벽’을 세우고 이스라엘 전쟁 난민 돕기 모금 운동을 벌였지만 아랍계에 비해 별 반향이 없었다.

 
이런저런 국내 사정 때문에 브라질·아르헨티나 양국은 비밀 합의를 하여 미국의 파병 압력을 거절했다. 대신 브라질 정부는 미국의 다른 요구를 수락했다. 트리플레 프론테라 지역을 감시하게 될 지역정보센터(CRI)를 8월 중순 출범한 것이다. 9·11 사태 직후 2002년, 미국은 트리플레 프론테라를 장악하기 위해 인접 국가들이 공동 통제 기구를 설립할 것을 요구했다. 4년이 지나 브라질의 주도로 기구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브라질이 ‘총대’를 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7월1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8개국 정상회담(G8)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룰라 다 실바 대통령에게 트리플레 프론테라 지역을 제대로 통제하라며 따지듯이 요구한 것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목표로 삼고 있는 브라질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압력이었다.

트리플레 프론테라를 지배하게 될 지역정보센터 참가국은 ‘3+1’ 구성을 따르고 있다. 직접 이해 당사자인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 이외에 미국이 포함된 것이다. 참가국 동수의 정보원 혹은 경찰 요원이 참여해 국경 지대 통제에 공동적 전략을 구축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미국 정보 당국의 입김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트리플레 프론테라 지역에 집착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지역 전문가들은 미국이 헤즈볼라 자금줄 차단·알 카에다 박멸 등을 주장하지만 진짜 목적은 자트리플레 프론테라 지역의 풍부한 수자원에 있다고 본다. 이과수 폭로로 상징되는 트리플레 프론테라는 세계 최대 저수량을 자랑하는 과리니 지하 담수대(지하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 최대 수력 댐이라는 이타이푸 수력 댐도 이 지역에 위치해 있다. 미래에 ‘물 전쟁’은 ‘석유 전쟁’ 못지않게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 국가 전략 중 하나다. 남미의 알짜 수자원 지역을 아랍계 주민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 정부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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