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세력, 기초부터 다시 세우자”
  • 이숙이 기자 (sookyiya@sisapress.com)
  • 승인 2006.08.28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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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당 통렬히 비판한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 인터뷰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이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2백자 원고지 50여 장에 이르는 장문에서 그는 ‘여당이 혁명하듯이 정치를 해왔다’라는 반성과 함께 진보개혁 세력의 몰락을 막으려면 열린우리당이 기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신중파’로 알려진 김의원이 왜 ‘릴레이 토론’까지 제안하며 선도투에 나서게 되었는지, 8월24일 국회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5·31 지방선거 참패가 도화선이 되었나?
지난해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올해 초 전당대회에서도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해 사전 경고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 탓에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나섰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5·31 지방선거는 예상보다 더한 참패로 끝났고, 이 상황에서 땜질식 처방을 하기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두 달 정도 호흡을 고른 끝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어떤 작업을 했나?
주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면서 느낀 점은 여론조사에 나타나는 것보다도 본질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소리가 좀 나더라도 우리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고 시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덮어버려서 그 안에서 문제를 더 키우는 식의 조심성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기 반성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제 제기의 성격을 띤 글이라고 보면 된다.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는 방식이 최선인가?
지금까지 해볼 만큼 다 해봤다. 대통령이나 측근들과의 대화, 비공개 회의석상에서, 비공식적 의사 전달, 이런 방법들을 다 해봤다. 또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열린우리당뿐 아니라 개혁 성향을 가진 국민 모두가 자기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재활의 해답을 제시해가는, 그런 용광로 같은 자기 정제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개적인 글쓰기를 하게 된 것이다.

20대의 보수화나 40대의 생활인화 등을 통해 개혁 성향을 가진 세력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닌가?
그것이 시대적 흐름으로서 (개혁 세력 약화의) 한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환경을 인정하고, 개혁 세력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개혁 세력이 수구성을 띠면 사회 변화의 흐름에 동떨어져서 도태되는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본질적인 위기감이 있다.

열린우리당의 문제로 “혁명하듯이 정치를 해왔다”라고 지적했는데,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나?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뒤 ‘이제 우리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과도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의석만 과반이 됐지 사회적 주도권 싸움 측면에서는 여전히 소수파이고 약한 권력 기반에 있는 여당이 의제 설정부터 그 의제를 관철시키는 방식까지 지혜롭지 못했다. 이를테면 4대 개혁 입법은 어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상식적 숙제였다. 그런 것들을 사회적 동의를 구하면서 서서히 풀어나가면 수월했을 텐데 우리는 4대 입법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상징적인 전선부터 만들어버렸다.

정열만 앞섰지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해놓지 못한 상황, 그래서 무능한 정권이라는 평을 얻었고, 그것이 지지 기반 붕괴로 이어졌다는 얘기인가?
정당과 대통령은 결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열정이 앞서서 그런 문제를 앞세우고 밀어붙여 봤지만 실제로는 관철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개혁 세력은 ‘니들 한 게 뭐야’하고 실망하여 돌아서고, 보수 세력에게는 ‘이 놈들은 끊임없이 이념적 문제를 앞세워서 사회를 분열과 혼란으로 몰아가려고 한다’는 빌미를 주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동의받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와중에 우리당의 핵심 지지 세력인 중산층과 서민의 삶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선거 결과가 참패로 나타났다. 여권은 이념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문제에 더 주력했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보안법이나 과거사법 문제를 추진했어야 쉽게 풀릴 수 있었다.

당이 이런 시행착오를 겪게 된 핵심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리더십의 문제인가? 의원들의 문제인가?
복합적이다. 하지만 당의 리더십에 더 비판받아 마땅한 지점이 있다. 당 지도부는 한편에서는 의원들의 열정을 적절히 조절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청와대와 관계에서 당의 의제를 관철해내는 리더십이 꼭 필요했는데 거기에 실패했다.

당과 원내를 이원화한 부분도 성급했다고 지적했던데, 그러면 되돌려야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사실은 나도 같이 비판받아 마땅한 과도한 이상주의에 빠져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실험을 제대로 추진할 만한 실력과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정치는 현실적인 기반 위에서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정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기간당원 문제야 ‘종이 당원’ 등 구체적인 문제가 드러났는데, 이원화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밖에서는 잘 모른다.
당이 먼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노선과 정책에 대한 당원들의 공유가 이뤄진 후 그 바탕 위에서 원내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당의 정체성이라는)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이원화가 되니까 원내도 어떤 지향없이 우왕좌왕하고 그러다 보니 정부가 하자는 대로 끌려가곤 했다. 결국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불행은 기초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쫓겨서 창당을 하고 정치 일정에 휩쓸리면서 중심 없이 흘러온 데 있다고 본다. 따라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기초로 돌아가야 한다.

당의 기초를 만드는 과정에서 당이 분열될 가능성은 없나? 열린우리당은 그 어느 당보다 소속 의원들의 이념 스펙트럼이 넓은데.
마음을 터놓고 접점을 찾다 보면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정당의 존재나 국회의원의 성향이 지지 기반이나 지지자들의 구속을 받는 측면이 큰데, 그런 면에서는 다른 당보다 열린우리당의 균질성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겠지만 다수파의 중심이 제대로 선다면 양쪽 극단은 관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은 구심점조차 불분명하다.

당의 문제도 있지만, 대통령이 ‘국보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식으로 이념 논쟁을 주도한 측면이 크다.
지금까지는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애써 대통령과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한편으로는 여당이니까 문제를 안에서 조용하게 해결해야지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국민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여긴 측면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그런 경향이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도 관리 중심으로 가겠다고 했지만, 의제 설정, 문제 제기 이런 것을 당에서 주도해나가야 한다. 관계의 역전이 이뤄지지 않으면 당은 재활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끝까지 국정의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는데, 계속 그렇게 된다면 당과 대통령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고 서로에게 불행한 양상이 벌어질 것이다.

 
오히려 대통령이 탈당해주는 것이 좋지 않은가?

서로 합의점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선이다. 대통령도 당도 우리가 시작했던 바람직한 정당 만들기 실험에서 무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서로 좀 불편하고 여론의 비판을 받는다고 해서 내치고 갈라서기를 먼저 시도하기보다는 똑같은 책임과 반성을 공유하면서 함께 가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처음 국민이 보여주었던 지지에 보답하고 우리가 추구했던 원형에 더 다가가는 길이라고 본다.

문제는 대통령이 이 상황을 당처럼 심각하게 보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위기라는 것은 인정하리라고 본다. 다만 너무 위기라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본질을 보자는 생각이 더 강한 것 같다. 그 점에서는 오히려 나의 문제 제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진중한 자세는 필요하다고 보는데, 다만 그 진중함이 ‘여론의 질타에 오불관언하는 자세로 우리의 가치를 지키자’ 그런 식이라면 정당으로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대통령은 지금의 위기가 언론이 만들어낸 ‘과도한 위기’라고 보는 듯한데.
부분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더 증폭시키고 사람들을 그 방향으로 몰고 가는 환각 효과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본질로 보면 우리 국민이 그리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국민이 조선·동아의 오도에 의해서만 여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삶이 어려워지고, 앞날에 대한 희망과 꿈이 퇴색하면서 ‘ 저놈들은 우리를 대변해줄 거다. 우리의 삶을 개선해줄 것이다’라고 했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변한 것이지, 보수 언론의 몰아치기에 의해 이렇게 된 것은 부분적이라고 본다.

민생 현장에 가고, 서민 중심으로 정책을 운용하도록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던가?
잘 안 되더라. 대통령은 ‘대안도 없이 현장에 가서 나보고 쇼하라고 하는 것은 못하겠다. 좋은 대안을 가지고 가서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갈 용의가 있다’라고 하던데, 결과적으로 그런 노력을 거의 안 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현장에 나가 국민의 삶과 부닥칠 때 나오는 효과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대통령이 서민들의 삶이 고달픈 걸 안다’라는 공감을 확보하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함께 이겨보자 하는 리더십이 생기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제로 국정 운영의 우선 순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사실 머리로는 ‘내가 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국정의 우선 순위에 있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우리 정부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나가는 데 국정의 우선 순위가 있었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 보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나는 거기까지도 기대하면서 대통령의 대민 접촉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두 가지 다 안 된 셈이다.

그런 대통령의, 좋게 말하면 원칙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이 남은 임기 동안 바뀔 수 있다고 보는가?
다행히 지난해부터 양극화 해소 문제를 국정의 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그러나 양극화 해소와 충돌이 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추진하겠다고 하고 있고, 결과적으로는 한·미 FTA가 우선이 되는, 말과 행동이 따로 가는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여전히 국민의 삶이 뒷전으로 밀리는 형국이다.

노대통령이 민생을 뒷전에 두는 듯한 양상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대통령이 고민은 하는데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대통령은 나라의 먼 미래를 위해 더 큰 과제에 집착할 수 있다. 한·미 FTA도 그런 충정의 발로라고 본다. 문제는 그런 대통령의 과제 선택에 ‘단계’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중요한 과제라도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의 요구를 강요하면 위기가 온다. ‘단계의 비약’이 문제다.

노대통령은 최근 ‘보수 언론이 정권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정권 창출 투쟁에 나섰다’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과 각을 세우는 노대통령에 대해 당 안에서도 찬반 양론이 있는데, 어느 쪽인가?
대통령이 오보를 지적하고 소송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없어져야 할 원수’처럼 대하고 전투와 대결의 논리로만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뿐 아니라 각종 정책을 추진할 때도 자기 가치는 분명히 하되 방식은 유연하고 좀더 많은 사람의 동의를 얻는 쪽을 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종환 시인의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시가 있다. 우리나라 고건축의 추녀 끝 곡선미가 다른 나라 것에 비해 아름다우면서도 힘있게 마무리되는 것은, 하나의 직선을 구부려서 곡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은 직선들을 촘촘하게 이어 붙여서 어긋남이 눈에 띄지 않는 하나의 큰 곡선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개개인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전체의 조화를 이루어내는 그런 인내가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참여정부 386에 대한 비판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여당이 ‘혁명하듯이’ 정치를 한 것도 386 정치인들이 학생운동 하던 방식에 젖어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386 출신이 대통령 주변과 여당에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386들은 학생운동을 할 때 선도적 투쟁 같은 것은 배격하고 철저히 대중과 함께 가는 대중 노선을 추구했다. 오히려 지금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386 세대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않은 ‘어설픈 386’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김의원의 문제 제기를 놓고 ‘릴레이 토론’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어떤 방식이었으면 하는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작게는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부터, 크게는 개혁 세력 전체를 통틀어 자기 의견을 표명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식이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아직은 제2, 제3의 김영춘이 안 나오고 있다.
이미 한두 분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바다이야기’가 워낙 커서 주춤하는 것 같다.

‘의제 2015’라는 연구 모임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같은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것인가?
그렇다. 지난해 말부터 준비하다가 비대위원 맡고 전당대회 출마하고 서울시장 선거 치르느라 잠시 중단했었다. 의원들이 참여하면 반갑게 같이 할 생각이고, 외부 지식인 그룹, 소장파 경제인들도 동참할 것이다.

강금실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았었는데, 강 전 장관도 침여하는가?
같이 하면 좋겠는데, 강금실 대통령 만들기 캠프 아니냐는 오해가 있더라. 천정배 장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함께 하고 싶은데, 역시 본질을 이탈할 염려가 있다. 그래서 그 분들과는 따로 갈 생각이다. 다만 이런 사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용광로에서 자기를 집어던지면 결과적으로 에센스가 추출되리라고 본다. 원석으로 있으면 뭐 하나. 용광로를 거쳐 철광석이 되어야지. 대신 그 과정에서 불에 몸을 녹이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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