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마족의 비극을 아십니까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6.09.0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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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정부·군에 탄압받는 소수민족…한국 거주 난민들 “자치 도와달라”
 
“방글라데시를 탈출하기 직전인 1999년 치타공(chittagong) 산악 지대 카드라처리(Khadrachari) 시에서 시민 집회가 열렸다. 경찰들은 집회에 참석한 우리를 공격했고 내 눈앞에서 두 명이 죽었다. 그런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2000년 한국으로 도피해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 로넬 자카마니 씨(38)는 자신이 고향을 떠난 이유를 이렇게 답했다.

지난 8월27일 일요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 여섯 명이 사진전을 벌였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팸플릿을 나눠주며 자국의 정치 상황을 설명했다. 줌마인 연대 한국지부(www.jpnk.org) 회원들이다. 이날 선전전에는 한국 인권·국제 단체 회원들 10여 명도 함께 했다. 국제연대 시민단체 ‘경계를 넘어’ 회원인 조영민씨(34)는 “방글라데시 정부와 군대에서 고통받는 줌마족 문제가 심각하다. 아직 한국 사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라 선전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 정치 난민 판정을 받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 중에는 한국과 가까운 동남아시아 계열 난민도 많다. 미얀마 민족민주동맹(NLD)은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소개된(<시사저널> 제812호 참조) 유명한 반정부 조직이다. NLD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줌마인 연대 한국지부 회원들은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정치 난민 중 다수를 차지한다. 법무부 난민국적과 통계에 따르면 2006년 7월 현재 방글라데시 출신 난민은 12명으로 미얀마(15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방글라데시 난민의 대부분은 줌마족들이다.

‘줌마’란 산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줌마족들은 방글라데시 동남쪽에 툭 튀어나온 치타공 산악 지대에 살고 있다. 치타공 산악 지대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방글라데시·인도·미얀마 세 나라의 접경 지역이다. 비록 해발 9백m가 넘는 고지대이지만 방글라데시 국토 대부분이 여름 우기 때 물에 잠겨 수해를 입는 것을 고려하면, 이 지역은 상대적으로 농업에 유리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치타공 산악 지대에는 챠크마·마르마·트리퓨라·탄창갸·미로·루샤이·큐미·챡·컁·바움·팡콰·링 12개 토속 원주민 부족이 살고 있는데 이 열두 부족을 통틀어 줌마족이라고 부른다. 줌마족들은 방글라데시 주류인 뱅갈리족과 언어·문화·종교·역사가 크게 다르다. 줌마족은 대부분 불교 신도들이며 소수가 힌두교도다. 하지만 뱅갈리족은 대부분 모슬렘들이다.
줌마족의 수난사는 이 지역 나라들의 탄생 과정과 같이한다. 줌마족은 치타공 산악 지대에서 오랫동안 자치권을 유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인도에서 독립한 파키스탄이 1963년 이 땅을 직접 통치하면서 수난이 시작되었다. 파키스탄이 이 지역에 건설한 수력 발전소 때문에 농지 40%가 수몰되고 최소 10만여 명의 줌마족이 이웃 인도 등으로 쫓겨났다.

 
20년간 줌마족 2천5백여 명 학살돼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에서 독립될 때 줌마인들은 방글라데시 주류인 뱅갈리족을 도와 파키스탄에 저항해 싸웠다. 그러나 9개월에 걸친 내전 끝에 1971년 12월 독립국가 방글라데시가 출범한 이후 뱅갈리족은 되레 줌마족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는 국토 면적은 비록 적지만 인구밀도는 높아 나라 전체 인구가 1억명이 넘고 대부분 뱅갈리족이다. 반면 방글라데시 국토의 10분의 1이 넘는 치타공 산악 지대의 줌마족 인구는 65만명에 불과하다. 1970년대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 땅에 뱅갈리족 이주를 유도했고, 현재 뱅갈리족 50만명이 살고 있다. 뱅갈리족 정착촌 건설 과정에서 숱한 폭력 행위가 벌어졌다.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따르면 치타공 산악 지대 주민들은 집단 학살·강제 구금·고문에 시달리고 있으며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방글라데시 군대에 의해 사망한 줌마족 주민은 최소 2천5백여 명에 이른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군사 지배에 저항하는 줌마족은 게릴라 조직을 만들어 싸웠다. 1997년 줌마족 무장단체 PCJSS는 1997년 12월 평화협정을 맺었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 치타공 산악 지대의 정치 상황은 마치 이스라엘의 지배 속에 있는 팔레스타인과 같다. 겉으로는 줌마족의 자치가 이루어진 듯하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인권은 방치되고 있다. 방글라데시 군대는 독립파 게릴라 혹은 테러리스트를 체포한다는 이유로 민간인 마을에 침입해 폭행·방화를 일삼는 경우가 많다. 재한 줌마인 연대 회원들은 “최근까지도 줌마인 여성들에 대한 집단 성폭행과 줌마인 마을 방화 행위가 이어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마치 온건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강경파 하마스가 대립하듯이, 줌마족 내부 안에서도 노선 투쟁 갈등이 있다. 재한 줌마인 연대 회원들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방글라데시 군대가 철수할 것, 뱅갈리족 정착민들이 귀환할 것, 치타공 지역의 완전한 자치를 보장할 것. 그러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에 바라는 염원만큼이나, 이 요구는 실현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방글라데시 정부의 차별과 폭압을 피해 탈출한 줌마인들은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 흩어져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경부터 줌마인 연대 한국 지부가 만들어져 활동 중이다. 사무실은 경기도에 있다.
최근 한국에 거주하는 줌마족들이 난민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치타공 산악 지대의 랑카마티가 고향인 로넬 자카마니 씨는 2004년 대한민국 법무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는 자신의 큰아버지와 삼촌도 방글라데시 군대 때문에 죽었다고 말했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다고 특별히 생계 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강제 추방을 면할 수 있다는 점은 큰 힘이 된다. 줌마족 난민들은 대부분 경기도 일대 회사와 공장에서 일하지만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 명절 등에 서울 중심가나 서울 한남동에 있는 방글라데시 대사관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인다. 자카마니 씨는 “한국이 일본에서 독립했듯이 우리도 완전한 자치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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