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국물에 당귀 한 조각 넣었을 뿐인데…
  • 이영미(대중예술 평론가) ()
  • 승인 2006.09.0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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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의 선택] 칼국수
 
어마어마한 집에서 칼국수 먹는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했던 그 정치인은 아직도 칼국수를 즐기는지 모르겠다. 칼국수가 여름 음식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한창 더울 때에는 칼국수 근처에도 가기 싫다. 아침저녁으로 가을 냄새가 살랑거리는 요즘 오히려 칼국수가 그리워진다.

칼국수는 간단한 음식이라, 결국 국물 맛과 면발, 두 가지로만 승부하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멸치가 많이 나는 곳 출신인 그 정치인은, 칼국수 국물로 멸치나 조개 국물이 최고라고 생각할 것이나, 육고기가 좋아하는 나는 닭 국물 칼국수를 좋아한다. 특히 여름에는 싱싱한 조개가 많지 않고, 같은 육고기 국물이라도 사골 국물보다 얕은 맛이 월등하게 좋은 닭고기 특유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토막 낸 닭고기를 푹 삶아서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칼국수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이면 그만이니, 설명하기도 싱겁다. 최근에 알아낸 비법 하나를 공개한다. 닭고기 국물에서 닭 냄새를 현격하게 줄이는 방법이다. 육고기의 달착지근한 맛은 즐기면서도 닭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써볼 만하다. 당귀를 아주 조금, 한 조각 정도만 넣고 함께 끓이는 것이다(많이 넣으면 한약 냄새가 너무 난다.).

내 집에 당귀가 한 포기 있는데, 이파리를 한두 장 뜯어넣고 끓이면 뿌리보다 냄새가 독하지 않아서 좋다. 끓이다가 약 냄새가 너무 심하다 싶으면 건져 내버리면 된다. 흔히 허브를 생선이나 육류의 냄새 제거에 쓴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의 허브인 깻잎, 쑥, 당귀 등 한약재도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채썬 애호박과 파, 마늘을 넉넉히 넣으면 완성된다. 호박을 볶아 고명으로 얹기도 하는데, 그냥 넣는 것이 기름내가 없어 깔끔한 맛이 난다. 취향에 따라 양파나 당근을 넣는 사람도 있으나, 맛이 싸구려 분식집 칼국수처럼 들척지근해져서 나는 싫어한다. 저녁때 칼국수로 땀 한 번 쭉 빼고 나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초가을 바람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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