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축구 제대로 즐기자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9.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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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 중심 프리미어·세리에A·프리메라 리그 ‘열배 재미있게 보는 핵심 포인트’ 총정리

 
“축구 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에 혁명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움베르토 에코(이탈리아)는 말했다. 많은 남성들이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기자 또한 그렇다.
유럽 축구 팬들은 국가 대항전보다 클럽 축구에 더 큰 환호성을 지른다. 마라도나가 있는가? 지단이 전성기인가? 이런 변수에 의해 국가대표팀의 전력은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명문 클럽은 항상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 국적에 상관없이 가장 뛰어난 선수를 데려오기 때문이다. 클럽 팀은 1년 내내 함께 훈련해서 정교한 조직력을 선보인다. 선수층이 두터워 상대 팀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게다가 클럽 간에 얽히고 설킨 사연도 구구절절해 클럽 간 숙명의 대결이 이어진다.

바야흐로 축구 시즌이다. 9월10일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가 개막했다. 이로써 영국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등 유럽 축구 3대 리그가 2006~2007 시즌 레이스를 시작했다. 지난 9월13일에는 ‘꿈의 향연’이라 불리는 유럽 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리그도 시작되었다. 유럽 15개국 리그의 최강 32개 클럽만이 축제에 초대되었다. 9월15일에는 챔피언스 리그보다 한 단계 낮은 UEFA컵대회가 막을 올렸다.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가지고 이들 경기를 지켜보면 수준 높은 유럽 축구를 훨씬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이탈리아 축구 마피아, 유벤투스와 AC밀란

이번 시즌부터 KBS SKY스포츠에서 이탈리아 세리에A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이제 국내 안방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된 세리에A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이탈리아인처럼 매력을 멋지게 표현해내는 사람들은 없다. 그들은 머리에 어떤 왁스를 바를 것인지 한참을 고민한다. 그리고 벨트와 양말의 색깔을 조화시키느라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기도 한다. 그 덕에 아르마니·구찌·프라다·페라리·베스파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생겼다.
이탈리아인들의 헌신적인 탐미주의를 축구장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의 창조적인 플레이는 실종되었다. 철저히 전술에 의존한다. 카테나치오로 불리는 빗장 수비, 골키퍼 앞에 수비수 한 명을 더 두는 스위퍼 시스템 등 거의 모든 수비 전술이 이탈리아에서 발원했다.
이탈리아 수비 축구. 이 때문에 골이 안 터져 지루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의 특성을 이해하면 시스템 축구의 오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세리에A에서는 양쪽 측면을 돌파한 후 크로스를 골로 연결하는 방법을 즐겨 쓰지 않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잉글랜드에서는 대충 세게 차놓고 달리는 무식한 축구를 한다”라고 조롱한다.

대신 이탈리아 축구는 중원을 장악해서 골 기회를 만드는 스타일을 선호한다. 화력을 중앙에 두텁게 집중해 수비를 강화하고 점수를 내는 것이다. 때문에 골 능력이 탁월한 세계적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즐비하다. 로베르토 바조·지네딘 지단·델 피에로·프란체스코 토티·카카…. 이탈리아 축구는 박진감과 경쾌함이 떨어지지만 섬세하고 세련된 멋을 추구한다.

이번 시즌 세리에A의 가장 큰 특징은 유벤투스가 빠진 채 진행된다는 것. 유벤투스는 승부 조작 스캔들 때문에 세리에B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유벤투스 투린은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한다. 유벤투스의 별명은 올드 레이디(Old Lady). 유벤투스는 흑백 스트라이프 유니폼처럼 단조로운 스타일의 경기를 한다. 소유주였던 지아니 아넬리는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재키 케네디 등과 어울리던 멋쟁이였다.

유벤투스는 피아트(FIAT)의 소유주이자 이탈리아 주식 거래액의 상당 지분을 가지고 있는 아넬리(Agnelli) 가()의 장난감 같은 존재이다. 오래된 이탈리아 농담 중에 “이탈리아 수상의 임무는 아넬리 가계의 문고리를 닦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유벤투스는 정치권의 모든 지원을 받으며 세계 최고 명문 구단으로 군림했다. 1897년 창설된 이래 유벤투스는 세리에A 29회,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을 일구며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다.
1990년대 초 ‘클린핸즈’ 수사 후 아넬리 가는 정치권의 보호막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피아트는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유벤투스의 독점적 지위도 깨졌다. 그러자 경쟁자가 나타났다. 과두 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AC밀란이다. 베를루스코니는 피닌베스트라는 이탈리아 최대의 미디어 그룹의 총수다. 그는 1986년 축구단을 인수하면서부터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인수 직후 그는 바그너의 ‘발퀴레의 비행’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선수들을 헬리콥터에 실어 스타디움에 입장시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를 총리 자리로 이끈 것도 축구였다. AC밀란의 서포터 수백만명이 당원이 되어 선거전에 나섰다. 그는 선거에서 “우리는 이탈리아를 AC밀란처럼 만들 것이다”라고 외쳤다.

 
사실 심판 두 명 중 한 명이 유벤투스나 AC밀란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이탈리아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다. 유벤투스와 AC 밀란이 우승컵을 놓고 다투는 경기가 열리면 심판은 우연처럼 보이는 페널티킥을 만들어냈다. 승부 조작의 주범이자 유벤투스의 단장이었던 루치아노 모지는 라이벌 AC밀란에 대항하기 위해 승부 조작을 저질렀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시즌 세리에A에서 눈여겨볼 팀은 ‘만년 3위’ 인터밀란이다. 구단의 성격부터 특이하다. 인터밀란은 ‘안티 AC밀란, 안티 베를루스코니, 안티 부시, 안티 아메리카’를 지향한다. 체 게바라를 추앙한다고 말하며 공산주의 단체에 가입한 선수들도 있다. 2004년 인터밀란은 멕시코 반군 조직이자 반세계화 혁명 게릴라인 ‘사파티스타’에 기부금을 전달해 화제가 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마시모 모라티 인터밀란 구단주와 사파티스타는 자선 축구 경기를 갖는다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구단의 주인이 석유 재벌이라는 점이다.

라이벌 AC밀란이 -8점에서 시즌을 시작하고 유벤투스는 아예 없다. 인터밀란이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더구나 유벤투스가 강등되면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파트리크 비에라가 인터밀란의 옷을 입었다. 즐라탄은 대성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공격 자원, 비에라는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다. 또 첼시 소속이었던 스트라이커 에르난 크레스포와 이탈리아 대표팀의 왼쪽 윙백 파비오 그로소는 월척급 선수들이다. 게다가 스트라이커인 브라질 출신의 아드리아누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다만 공격수 간의 조합이 문제다. 챔피언스 리그 1차전 스포르팅 리스본과의 첫 경기에서 인터밀란은 0-1로 패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호나우두가 인터밀란행을 바라고 있다. 만약 성사된다면 인터밀란은 세리에A와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동시에 노려볼 만한 전력을 갖추게 된다.

박지성의 맨유, 정상탈환 가능한가?

개막을 앞두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매 시즌 20골 이상을 보증하는 판 니스텔로이(레알 마드리드)의 공백을 걱정했다. 토튼햄에서 마이클 캐릭을 데려온 것 이외에는 뚜렷한 전력 보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맨유가 염원하던 페르난도 토레스와 오언 하그리브스의 영입에는 실패했다.
걱정과 달리 맨유는 개막전 이후 전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는 독일월드컵을 통해 한 단계 성장했다. 이제 그에게는 항상 두 명의 마크맨이 필요하다. 루이 사아가 골 사냥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왼발의 전설’ 라이언 긱스의 회춘이다. 그는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눈부신 활약으로 맨유의 4연승을 이끌고 있다. 긱스는 네 경기에서 두 골을 뽑아내며 프리미어 리그 8월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앞으로 징계에 묶여 있던 ‘에이스’ 웨인 루니와 잉글랜드 대표팀의 간판 미드필더 폴 스콜스가 돌아온다. 맨유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 특히 게리 네빌·미카엘 실베스트레·리오 퍼디낸드·위스 브라운 등 수비진의 조화가 떨어진다. 첼시를 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매년 이적 시장에서 최대어를 쓸어담고 있는 첼시는 엄청난 재력을 앞세워 ‘득점 기계’ 안드리 솁첸코와 ‘독일의 영웅’ 미하엘 발라크를 새로 영입했다. 여기에 기존 멤버의 컨디션도 최상이다. 드로그바(3골)와 램퍼드(2골)는 매 경기 환상적인 조합을 만들어내고 있다. 도무지 첼시의 약점이 보이지 않는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첼시는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맨유에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이 있다. 첼시를 제외한 라이벌 아스날과 리버풀이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전통의 강호’ 아스날은 아직 1승도 따내지 못하며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티에리 앙리 등 간판 선수들이 아직 제 기량이 아니다. 어려울 때 팀을 추스르는 데니스 베르캄프의 은퇴가 못내 아쉽다. 리버풀 역시 시즌을 어렵게 시작했다. 1승1무1패. 맨유는 경쟁자들이 주춤거릴 때 승점을 벌려야 한다. 

지구 방위대의 운명은?
스타만을 수집해 ‘지구 방위대’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 레알은 세 시즌 동안 트로피 하나 건지지 못하고 쓸쓸한 날을 보냈다. 지난 시즌 홈 경기장에서 열린 라이벌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 경기에서는 0-3으로 대패했다. 홈 팬들이 바르셀로나 선수들을 응원할 정도로 레알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레알은 유벤투스에서 파비오 카펠 감독을 모셔왔다. 그는 세계 최고의 ‘우승 청부사’. 이탈리아 세리에A 우승 7회, 스페인 리그 우승 1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2년에 한 번꼴로 메이저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레알의 스타 선수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감독이다. 이런 감독은 흔치 않다. 몇 해 전 거스 히딩크는 레알에서 쓰디쓴 아픔을 겪었다. 카펠로 감독은 선수들에게 살인적인 훈련을 강요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레알의 스타 선수인 카펠로가 전술·체력 훈련을 잘 소화할 것인지…. 올 시즌 프리메라 리가의 관전 포인트다.

레알은 수비에서 고질적인 병을 앓아왔다. 호나우두·라울·베컴·지단 등 스타 플레이어들이 골을 넣기는 했지만 수비에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곤 했다. 카펠로는 유벤투스의 애제자인 파비오 칸나바로를 데려왔다. 그는 주장으로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고 수비진을 조율하는 데 세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호베르투 카를루스-칸나바로-세르히오 라모스-시시뉴로 이어지는 포백 라인은 어느 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여기에 유벤투스에서 온 수비형 미드필더인 에메르송이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레알의 지상 과제는 바르셀로나 타도다. 그러나 드림팀 바르셀로나는 업그레이드되었다. 호나우지뉴, 리오넬 메시, 사무엘 에투로 이어지는 공격진은 바르셀로나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올해는 수비진이 더 큰 자랑거리가 될 것 같다. 바르셀로나는 유벤투스에서 릴리앙 튀랑과 잔루카 참브로타를 영입하며 환상적인 수비 라인을 완성했다. 지오반니 반브롱코스트-카를로스 푸욜-튀랑-참브로타. 호나우두와 판 니스텔로이의 레알 공격진이 바르셀로나 수비진을 뚫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수비진이 스페인에서 원수가 되어 만났다는 것도 재미있다.

지난 9월14일 레알은 프랑스 리옹과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전반에만 2골을 허용한 끝에 0-2로 패하고 말았다. 슈팅 수 17-8, 유효슈팅 수 13-2에서 보듯이 완패였다. 아직은 카펠로 스타일 옷이 아직 레알 선수들의 몸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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