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순신’을 애타게 기다리다
  • 이문재 (시인) ()
  • 승인 2006.09.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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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책]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충격적인 문제점과 결과 제시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의 독자는 분명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측근, 그리고 외교통상부 협상 실무팀이다. 한·미 FTA를 ‘폭주족’처럼 추진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100부 한정판으로 찍었어야 마땅한데,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전혀 사정이 달라진다. 이 책은 100부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전국민의 8할, 그러니까 3천8백만명이 읽어야 (구입하라는 것이 아니고) 한다.

나는 경제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국제정치학이나 외교 관련 서적을 체계적으로 읽어본 적도 없기 때문에 이 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은 서평이 아니다. 그렇다고 ‘냉정한’ 신간 안내도 아니다. 이 글은 한·미 FTA가 뭔가 미심쩍다는 막연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국민의 한 사람이 내놓은 독후감이다.

내가 4인 가족 기준으로 연 수입이 6천만원 미만에 해당하는 ‘양(羊)떼(‘늑대’는 미국이다)’에 속하지 않았다면,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을 것이다. 지식인(‘자신과 무관한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인 척하며 혀를 끌끌 찼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우석훈 박사는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조정실 등에 근무하며 수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 협상에 참여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같은 기구에서 새로 만든 제도에 대한 한국의 대처 방안을 만들거나 협상 방안을 마련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저자는 현재 생태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관료와 생태학자, 경제학과 생태학은 물과 기름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지만, 이 책에서는 놀라운 상승 효과를 나타낸다. 저자의 체험과 사유에서 우러나온 분석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이다.

“연봉 6천만원 이하면 이민을 떠나라”

책의 결론은 한마디로 이렇다. ‘한·미 FTA가 이대로 진행된다면, 4인 가족 기준으로 연봉 6천만원 미만에 해당하는 한국인은 이민을 떠나라!’ 실로 충격적이지 않은가. 저자는 한·미 FTA가 등장한 배경을 하나하나 되짚은 다음, 노무현 정부의 ‘닫힌 구조’를 지적한다. 한·미 FTA는 황우석 사태와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결국 한·미 FTA의 핵심은 경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철학일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 ‘새로운 이순신’을 애타게 기다린다.

 
저자는 한·미 FTA 협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한국 정부가 협상력이 부족한 것보다 한국 경제를 모르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보다 경제팀이 허약하다는 것이다. 이민을 가라는 결론이 충격적이라면, 현 정부의 사태 인식과 시스템, 그리고 협상력의 ‘실상’과 마주하면 분노를 넘어 허탈해진다.

그렇다면 실낱같은 희망, 즉 새로운 이순신은 누구인가? 협상안에 노동시장 개방과 관련된 조항을 단 한 줄이라도 집어넣는 공무원이 있다면 그가 바로 이순신이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미국 노동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면, 미국은 한국 경제의 붕괴를 방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기 대선 주자나 남북한의 경제적 통합도 이순신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믿을 만한 이순신은 국민이다. 스위스가 그랬듯이 한·미 FTA를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이다.

전국민의 8할이 ‘늑대 앞의 양’ 신세가 된다면, 그것은 전쟁보다 더한,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이 걸린 미증유의 국면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조차 한·미 FTA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가인가? 제발 대통령과 협상팀이 이 책을 검증하고 적절한 답을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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