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발길질에 발가벗는 설악산
  • 문정우 대기자 (mjw21@sisapress.com)
  • 승인 2006.09.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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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10월 주말에 새벽부터 5만여 인파 몰려 몸살”

 
춥지도 덥지도 않아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단풍까지 들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추석을 낀 10월 연휴에는 사람들이 산으로 산으로 몰려든다. 지난해 연휴에는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 가장 많은 인파인 1만5천명이 대청봉 정상을 밟았다. 대청봉이 그 정도니 외설악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설악산은 하루 종일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이야 즐거울지 몰라도 산은 몸살을 앓는다. 요즘 설악산이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에 얼마나 망가졌는지 알리고 다니느라 바쁜 사람이 있다. 설악녹색연합 대표 박그림씨(59). 그는 1992년부터 산양을 비롯한 설악산의 야생을 보호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는 조사차 설악산에 들어설 때면 항상 생식을 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어찌나 오래 설악산을 헤매고 다녔는지 쇄골이 다 내려앉았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그의 독백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여기 실린 사진도 모두 그가 흘린 땀의 결실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40년 넘게 설악산을 다녔다. 교통 사정이 나빠 서울 마장동 터미널에서 첫차를 타려면 인근 여관에서 하룻밤을 쭈그리고 자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 시절에는 산속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면 반가워서 뛰어가곤 했지만 이제는 피하고 본다. 하긴 피할 곳도 없지만….

1992년 설악산 입장객 수가 3백만명을 넘어선 이래 그 수는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10월에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다. 지난해 10월 주말에 외설악 탐방로에 하루 5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외설악 탐방로의 1일 수용 가능 인원은 1만5천명이라는 연구 보고가 있다. 산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 되었다.

4백만명에 가까운 탐방객 중 40만명 정도는 대청봉에 오른다. 지난해 10월 연휴 대청봉에 이르는 가장 짧은 코스인 오색매표소를 지나는 길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밤 1시가 되면 벌써 전국의 산악회 버스들이 속속 매표소 앞 주차장에 도착해 등산객들을 토해놓는다. 무박 산행객들이다. 일출 두 시간 전에야 입장할 수 있다는 규정은 사문화된 지 오래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측에서는 밤 1시30분이면 문을 열고 관광객을 들여보낸다. 규정을 지키려고 하자 관광객이 합세해 철문을 밀어 넘어뜨리고 난입한 일도 있었다.
매표소를 지난 사람들은 좁은 등산로를 꽉 메우고 어깨를 부딪치면서 전진하기 시작한다. 새벽 3시께가 되면 오색매표소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길에 도회지의 자동차 행렬 같은 긴 불꽃 띠가 그려진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대청봉이 불바다가 된다.

중청대피소는 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한다. 대피소를 보면 일행들에게 “저기 매점이 있다. 빨리 와”라고 소리친다. 탈진한 등산객의 신음 소리, 일행을 부르는 소리, 라면 달라고 외치는 소리가 범벅이 되어 대피소는 소란하기 짝이 없다. 산양은 2백m 밖에서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감지해내는 민감한 동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생맹’ 양산하는 대피소…산양 70~80여 마리뿐

 
중청대피소에서 허기를 달랜 등산객들은 쏜살같이 천불동 계곡을 향해 쏟아져 내려간다. 그들이 지나간 길에는 돌로 눌러놓은 종이들이 하얗게 흩어져 있다. 처진 일행에게 어디로 간다고 알리는 메모지들이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간신히 산에 오른 그들은 설악의 무엇을 보고 내려가는 것일까. 그들은 가장 빠르게 정상을 정복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도심에서 실적을 올리려고 기를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사람들은 동해안의 산과 해변도 모두 일시적인 욕망의 대상으로만 본다. 도회식 사랑법이다.

10월 연휴 직전에는 수학여행 철이다. 전국의 1천3백여 개 중·고등학교에서 8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려온다. 수백 명씩 단체로 오니 울산바위조차 못 보고 비선대 정도나 보고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설악산에는 일곱 군데의 대피소가 있다.

대피소는 말 그대로 산을 오르내릴 때 기상 이변이나 급박한 상황에서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러나 설악산의 대피소는 여관이자 레스토랑이다. 조리된 음식과 술을 팔고 담요를 빌려주고 있어 산을 빈 몸으로 올라도 된다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준다. 사람이 산을 찾는 까닭은 자연과 친해지기 위해서다. 자연과 친해지려면 그 두려움도 알아야 한다. 두려움에 대비해 무거운 배낭을 꾸리는 것이다. 편의점이요, 매점 역할을 하는 대피소는 사람들을 생맹(생태 장님)으로 만든다.

사람이 이렇게 밀려드니 내설악·외설악의 거의 모든 등산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특히 주등산로인 천불동 계곡과 오색 등산로는 깊이가 2m 이상 깎이고, 폭이 20m 이상 늘어난 곳도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모두 9억원을 들여 대청봉 훼손지에 산 밑의 강바닥 흙을 퍼다가 깔았지만 밑 빠진 독 물 붓기이다.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의 지난해 10월 연휴 때 모습. 밤새 대청봉에 오른 이들 가운데는 왜 등산로에 가로등이 없느냐, 휴대폰은 어째서 터지지 않느냐고 화내는 사람도 있었다. 올해는 단풍이 일찍 들어 더 많은 사람이 몰릴 것이다.
양양군에서는 훼손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오색-대청 간 4.73km에 자동 2선식 곤돌라를 설치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연 35만명 가량이 이 곤돌라를 타고 대청봉 정상을 밟게 될 것이다. 양양군에서는 그렇게 되면 등산로의 훼손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결국 등산로 위에 케이블카만 하나 더 놓는 꼴이 되어 대청봉의 부담은 더욱 커질 것이다. 후손에게 길이 물려줄 산이야 어찌 되든 당장의 돈벌이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가장 불쌍한 것은 벌거벗은 산이고, 그 다음은 침묵하는 산이다. 몇 년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자들과 설악산에 올랐다가 “이 산은 왜 이리 조용하냐”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적이 있다. 심사위원의 그 한마디로 설악산의 문화유산 지정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1960년대 말까지 설악산에는 표범을 비롯해 반달가슴곰·꽃사슴·사향노루·양 등이 떼 지어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이 와도 짐승 발자국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1968년만 해도 산양이 1천~1천5백 마리 살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겨우 70~80마리 정도만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서식지가 자꾸 사람에게 침범을 당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만 해놓으면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도대체 개체 수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들은 무얼 먹으며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아무것도 조사한 것이 없다. 조사를 해야 대책도 세울 것 아닌가.

 
언젠가 설악산을 살리려면 100년간은 입산 통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더니,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까지 미친 사람 취급을 하는 거였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기어들어와 속초를 망치려 하느냐, 가족을 가만두지 않겠다 라는 등의 협박 전화도 심심찮게 걸려왔다. 하지만 100년을 통제해도 스스로 회복할까 말까 할 정도로 설악산의 훼손은 심각하다. 지금 당장 입산 예약제라도 실시해야 한다.

1일 입산객 수를 산이 감당할 수 있는 선으로 제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산에 오는 사람, 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리산에서 성장한 국내 유명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산의 쓰레기를 치우겠다며 등반대를 조직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어머니의 산은 죽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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