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잡으면 대권 잡는다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6.09.25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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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의 중심이자 표심의 중심으로 '대선 캐스팅 보트' 장악

 
이념을 묻는 질문은 세 가지로 나누었다. 자신의 이념과 현 정부의 이념, 그리고 차기 정부의 이념을 10점 척도로 물었다. 매우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면 0점, 아주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면 10점을 답하라고 했다. 주관적인 이념 평가 방식이다.

자신의 이념을 묻는 질문에 열 명 가운데 다섯 명(48.5%)이 중도적이라고 답했다. 20.7%가 진보적이라고 답했고, 28.9%가 보수적이라고 답했다. 현 정부의 이념을 묻는 질문에는 44.3%가 진보적이라고 평가했고, 29.4%가 중도적이라고 답변했다. 14.2%만이 보수적이라고 보았다.

자신이 매긴 이념 점수의 평균을 내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눈에 띈다. 평균은 5.2점. 중도에 가까웠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20대와 30대는 똑같이 평균 4.8점으로 상대적으로 진보에 가까웠고, 50대 평균은 5.7점, 60세 이상 평균은 6.1점으로 보수에 좀더 가까웠다.

그렇다면 지난 대통령선거 때 캐스팅 보트를 쥐었던 40대의 평균 이념 점수는? 정확하게 전체 평균인 5.2점과 똑같았다. 이념의 균형추가 40대라는 점이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40대의 ‘재발견’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2년 대선처럼 차기 대통령선거 역시 40대 표심이 당락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 정창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20대와 30대, 그리고 50대와 60대의 여론 흐름은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40대는 가변적이다. 40대 표심이 승부처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40대는 역대 대선에서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40대의 투표율은 무려 85.8%였다. 20대 투표율(47.5%), 30대 투표율(68.9%)에 비해 훨씬 높았다(KBS 출구조사). 당시 40대 표심은 박빙으로 나뉘었다. 노무현 후보가 47.4%를 얻었고, 이회창 후보가 48.7%를 얻었다. 노후보가 40대에서 1.3% 뒤졌지만, 내용적으로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2002년 때 40대는 1953~1962년생. 베이비 붐(1955~1963년생) 세대와 거의 일치했다. 386 세대(1960~1962년생)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전후 세대가 대부분인 당시 40대는 개혁과 변화보다는 안정 성향을 띠기 마련이었다. 그런 40대가 이회창 후보와 비슷하게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20·30세대의 눈에 띄는 지지에 40대의 이같은 숨은 지지가 보태져 노후보의 승리가 가능했다.

40대, 진보적인 차기 정부 원해

시간이 흘렀다. 이제 40대는 386 세대가 주력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이념 점수를 진보보다 중도(5.2점)에 가깝게 매겼다. 현 정부에 대해서 모든 세대 가운데 40대가 가장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다(3.4점). 이는 일종의 실망감이 표출된 답변이다. 열린우리당의 재집권 가능성을 40대가 가장 낮게(6.2%) 보았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40대는 진보 세력과 현 정부에 완전히 등을 돌린 셈이다.

이를 두고 386 세대가 보수화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자신이 386 세대인 열린우리당 김형주 의원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김의원은 “내 또래 40대는 혼란스럽다. 경제적인 삶이 어려워 개혁에 무관심해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관계 있는 아파트 정책 등 구체적인 정책을 물어보면 40대는 개혁 지향적이다”라고 말했다. 김의원은 오히려 ‘(개혁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았다.

 
한나라당의 박형준 의원 역시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박의원은 “자신의 이념을 중도라고 답한 이들은 다중적이다. 분배(진보)보다 성장(보수)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복지사회에 대한 욕구도 크다”라고 말했다. 박의원은 또한 노무현식 개혁에 대한 반감 때문에 주관적인 중도 그룹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박의원은 이를 ‘메신저 거부 현상’으로 보았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거부 현상이 40대를 비롯한 유권자를 중도층으로 옮아가게 했지, 한나라당 주류가 보듯이 보수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이 이를 보수 강화로 오판하면, 한나라당에 대한 메신저 거부 현상이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박의원은 염려했다.

물론 반대 해석도 있다. 열린우리당 안영근 의원은 “진보는 민주노동당에 맡기고, 여당은 이제 민심에 따라 안정적인 중도 정책을 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영남권 의원들도 ‘중도=보수화’로 보고, 당 지도부에 우향우 행보를 더 강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능한 진보·부패한 보수에 염증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원하는 차기 정부의 이념은 어떨까? 38.6%가 중도적인 정부를 원했다. 다음으로 34.2%가 진보적이기를, 20.1%는 보수적이기를 바랐다. 중도적인 정부를 많이 원했지만, 진보적인 정부에 대한 욕구 역시 높았다. 뉴라이트 전국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유석춘 교수(연세대)는 의외로 받아들였다. “지난 10년간 진보적인 정부가 실패해서, 차기는 보수적인 정부가 대안으로 꼽힐 줄 알았다. 진보보다 보수가 밀렸다는 것은 여전히 보수를 대안 세력으로 보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차기 정부 이념 점수의 평균은 4.5점이었다. 현 정부(4점)보다는 다소 중도적이기를 원했지만, 차기 정부 역시 개혁 지향적이기를 바란 것이다. 그런데 40대가 차기 정부에 매긴 이념 점수의 평균도 똑같은 4.5점이었다. 40대가 이념의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을 중도로 자리 매김하고, 진보적인 열린우리당의 재집권 가능성은 가장 낮게 보는 40대가 여전히 진보적인 차기 정부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김형준 교수(국민대)는 386 세대의 세대 효과와 40대라는 연령 효과의 결합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즉 386 세대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과거에 비해 가운데로 이동했지만(연령 효과), 개혁 지향적인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세대 효과)는 것이다. 김교수는 “386 세대만을 따로 분석한 적이 있는데 58%가 중도였다. 위치는 가운데인데, 나아갈 방향을 물으면 개혁과 진보라고 답했다”라고 말했다. 조사를 맡은 김지연 미디어리서치 본부장도 “현 개혁 세력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만, 진보적인 가치에 대한 평가는 좋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40대는 ‘무능한 진보’와 ‘부패한 보수’에 대한 염증 때문에 가운데로 이동한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유능한 진보’를 갈망하고 있다. 차기 대선 역시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범여권이 유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섣부른 예단이다. 지난해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차기 대권 주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진보적인지 물었더니, 예상외의 결과가 나왔다. 한나라당 이명박 전 시장이 정동영 전 의장에 이어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꼽혔다. 유권자의 표심은 때론 종잡을 수 없다. 특히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40대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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