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임 정당’ 만들기 최고 산파는 ‘대연정’
  • 김능구 (이윈컴 대표) ()
  • 승인 2006.09.2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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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구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 폴리뉴스 대표. 정치 컨설팅 회사 ‘이윈컴’ 대표)

 
17대 대선의 핵심 포인트가 정계 개편과 연정론임을 부정할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군사 정권 이후 들어선 역대 민간 정권은 모두 ‘연합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집권에 성공한 연정론은 ‘대연정론’이었다는 점이다.

3당 합당으로 정권을 잡은 문민 정부인 김영삼(YS) 정권은 노태우(TK 수구 보수)+김종필(충청 수구보수)+김영삼(PK+중도개혁)의 연합이었고, 국민의 정부인 김대중(DJ) 정권은 김대중(호남+중도개혁)+김종필(충청 수구보수)+박태준(TK 수구보수 일부)의 연합이었다.

YS의 PK 정권이 호남을 포위한 영남-충청연합 정권(반(反)호남)이었다면, DJ의 호남 정권은 반대로 영남을 포위한 호남-충청연합 정권(반 영남 서부 벨트)이었다는 차이만 있었을 뿐 집권전략의 본질은 똑같았다.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론’도 이들의 집권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을 계승한 노무현 정권 역시 호남-충청 연합 정권(서부 벨트 연합)이었다. 다만 DJ 정권과의 차이는 내세운 ‘얼굴’이 호남이 아니라 PK라는 점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호남 통합’은 아니었다.

이런 '연합 정권'은 군정 시대 종식 이후 출현한 민간 정부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관권, 금권을 바탕으로 지역과 계층을 초월한 전국적인 군사 정권에서는 야당을 분열시켜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여당의 단일 정당 집권이 가능했지만, 일개 지역만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 정당’은 여타 세력과 연합하지 않으면 집권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제 내년이면 네 번째 민간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여전히 단일 정당으로는 집권이 불가능하다. 연합 정권이 아니면 어느 정치 세력도 집권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호남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양분되어 있어 정계개편론은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지금 드러나는 정계개편론을 보면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모두 ‘연합 정권’을 바라고 있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대연정’을 꿈꾸고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에서 거론되는 정계개편론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을 위시한 친노파들의 ‘영호남 통합 대연정론’과, 김근태계 등 재야파와 고건파가 추구하는 ‘반 한나라 민주 개혁 세력 연합론’이 있다. 이 두 입장이 달라 보이지만 결국 ‘정동영-김근태’를 후보로 내세워서는 불임 정당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외부 선장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고, 그 대상이 ‘노무현-이명박’ 또는 ‘노무현-손학규’ 등 한나라당과 연합론이냐, 아니면 열린우리당-민주당의 통합을 기반으로 한 고건 신당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른바 노무현-이명박 연대나 노무현-손학규 연대는 제2의 대연정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호남 민주당은 반 개혁적이어서 함께할 수 없다고 분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해놓고 이제는 다시 ‘우리는 형제이며 한 뿌리’라며 ‘도로 민주당’을 만들어 호남 후보 고건을 내세우자는 주장 역시 실상은 대연정론이다.

정계 개편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이 바라는 최대 기대치는 분열하지 않으면서 이명박 전 시장, 손학규 전 지사, 고건 전 총리 등 대권주자와 민주당을 통합해 '범여권세력'을 구축하는 것일 것이다. 여당의 정계 개편 울타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는 순전히 ‘여당의 전략과 민심’에 달려 있다.

한나라당 역시 대연정론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노대통령의 ‘대연정 러브콜’에 박근혜 전 대표는 ‘노’라고 외면했지만, 내부에서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아까워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최근 한나라당은 범보수(우파) 연합론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 대상은 이념에서는 뉴라이트와의 연합을 성사시키고 지역에서는 민주당과 통합을 성사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연합론은 연정과는 맥락이 다르다. 이들과의 연합이 시끌벅적하기는 하지만 별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세력은 원래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이어서 이들과 연합한다고 한다고 해서 지지율에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뉴라이트와 연합을 하든 안하든 보수 세력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대연정은 호남지역에 기반을 둔 민주당과의 연합이다. 두 번의 집권을 놓친 한나라당은 ‘호남 없이는 집권 없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연합 대상인 민주당은 군사 정권과 싸워온 50년 전통 민주 야당임을 자부하고 있다. 이들로서는 반 공화당, 반 민정당, 반 한나라당이 사실상 존재 이유였다. 이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결코 한 배를 탈 수 없는 적대 세력인 셈이다. 게다가 지역적으로도 호남 배타 세력의 원조가 다름 아닌 영남 세력인 한나라당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과거 민자당식의 ‘3당 합당’을 모색하려 하고 있다. 민정당 대신 한나라당, 통일민주당 대신 민주당, JP대신 JP의 복심이라는 심대평 대표의 국민중심당이 ‘신3당 합당’인 한나라당발(發) 대연정을 모색하고 있다. 이 구상이 실현 가능성이 크게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당의 변신 때문이다. 민주당은 민주세력에서 보수 세력으로 정체성을 바꾸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이 단지 표 합산 차원이 아닌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정책연합론을 펴면서 ‘보수세력 민주당’으로 노선 변경을 하고 있기에 범보수 연합의 동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민주당과의 ‘한·민 통합’과는 별개로, DJ와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박정희 유신 정권과는 악연이었지만, DJ의 집권은 바로 박정희 세력(김종필, 박태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DJP 집권의 역사를 역이용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으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고 있는 민주당은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은 단지 비싼 값의 짝 찾기를 넘어 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민주당의 목표는 열린우리당도, 한나라당도 아닌 민주당 중심의 제3 신당이다. 열린우리당 탈당파와 한나라당 탈당파를 엮고, 여기에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해 번듯한 ‘가임 정당’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정계개편론은 대연정론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대연정론에 입각한 정계개편론은 기존의 정당 체제를 스스로 부정하는 데 있다는 점이다. 전혀 정체성이 다른 두 정치 세력이 하나의 정당으로 만나 대선을 치루고 집권을 하려면 정당의 높은 담벼락을 허물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최근 각 당에서 나오는 오픈 프라이머리다.

자기 당원들로 대선 후보를 뽑는 것이 아니라 비당원 100%로 대선 후보를 뽑겠다는 것은 결국 정당 체제 해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오픈 프라이머리는 기존 당원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소지가 상당히 크다. 앞으로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당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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